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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3년10월15일 오전, 투표를 마친 박정희 부부는 두 대의 승용차 편으로 경주로 달렸다. 이후락최고회의 공보실장, 박종규경호대장, 지홍창 주치의, 신동관경호관이 수행했다. 일행은 경주 불국사 관광호텔에 들었다. 이 운명의 밤 윤보선은 미국 정보기관 요원의 집에서, 그리고 박정 희는 민족사의 영광이 서린 불국사근처에서 국민의 심판을 기다렸다.
 
 박정희 부부는 110호실, 이후락 실장은 103호실에 들었다. 110호실에 서는 개표 중계 라디오 방송소리가 새나왔다. 103호실에서는 이실장에게 개표결과를 알리는 전화 벨 소리가 자주 울렸다. 개표 직전까지도 박 정희의 낙승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초저녁 투표함의 뚜껑이 열리면서 의외의 드라마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윤보선 후보가 앞서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16일 새벽3시 현재 윤보선은 서울 경기 강원 충북 충남에서 박정희를 크게 앞섰다.
 
 박정희는 전북 전남 경북 경남 제주에서 윤보선을 압도했다. 부산은 막상막하. 남북으로 표의 흐름이 극명하게 갈린 것이다. 윤보선은 약 82 만표, 박정희는 약80만 표. 2만 표이던 표차는 계속 벌어져 한때는 23만 표의 격차를 이루었다.
 
 불국사 관광호텔 110호실에선 라디오 소리도 멎었다. 박정희는 책장 을 넘기다가 잠에 들었다고 전해진다. 육영수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바 깥으로 들고 나와 심각한 표정으로 개표방송을 들었다. 다음날 아침 박 정희는 이후락 실장, 주치의 지홍창 등 수행원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함 께 했다. 박의장은 '간밤에 개표중 사고는 없었는가'라고 물었다. 이실 장은 '개표는 순조롭지만 표차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말 했다. 그때 윤보선은 약7만 표 차이로 박정희를 앞서고 있었다. 박정희 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공명선거란 집권자가 떨어져도 좋다는 마음의 준비와 결심이 있어야 지. 사실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
 
 이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또 다른 인물은 민기식육군참모총장 이었다. 그는 선거에 군부가 개입하는 것은 저지시켰으나 육군본부와 논 산훈련소에서만은 지휘관이 장병들을 상대로 박정희 홍보를 하도록 했다. 16일 새벽 박정희의 패색이 짙어진다고 판단한 민기식은 책상정리를 하면서 형무소에 들어가 입을 옷도 준비시켰다고 한다. 민기식은 육군본 부와 논산을 제외하고는 군인들이 몰려사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윤보선 후보의 표가 박정희보다 더 많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군인들이 처음으로 소신껏 투표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역앞 에비슨 회관안에 있던 공화당사는 공황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기획상황실에서 전화기 19대를 통해서 개표상황을 집계하던 20여 명의 당원들은 15일 자정을 넘기면서 윤보선이 본격적으로 앞서나가자 연필과전화통을 집어던지고는 안절부절 못했다. 이들을 지휘하던 김용태 (공화당 원내총무 역임)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5·16 전야 광명인쇄소에서 김종필 이낙선(상공부장관 역임)과 함께 혁명공약을 인쇄하는 일을 감독했던 김용태는 운전기사를 시켜서 권총을 가져오게 했다고 한다. 선거에서의 패배는 자신이 목숨을 걸었던 5·16 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을 뜻한다고 생각한 그는 에비슨관 뒷동산의 아카 시아 숲에서 자결할 궁리를 했다는 것이다. 15일 밤에는 사람들로 붐비 던 공화당사도 박정희가 질 것 같은 분위기로 돌자 어느새 자취를 감추 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 썰렁해지기 시작했다.
 
 일부 당원들은 컴컴한 방 구석에 모여 '이러면 진다. 중앙선관위에 전 화를 걸어 개표를 중단시키자'고 합의했다. '김형욱정보부장의 지시이다. 개표를 중단시키자'라고 떠드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을 단호하게 눌러버 린사람이 김용태였다고 전한다. 그는 '그런 무모한 짓이 어디 있어! 조 용히 기다려 봐!'라고 호통을 쳤다. 제 자리로 돌아간 당원들은 입버릇 처럼 되어 있던 '절대다수'니 '65%지지'니 하는 소리는 아예 팽개치고 '그저 한 표라도 더 나와야 할텐데'하면서 발버둥치는 모습들이었다고 한다.
 
 16일 오전부터 개표 진척도가 늦었던 전라도 경상도의 투표함이 본격 적으로 열리고 박정희 표가 쏟아지면서 박정희, 윤보선의 표차는 좁혀지 기 시작했다. 16일 오후가 되면서 박정희 후보의 신승이란 전망이 나오 기 시작했다. 16일 저녁부터는 박정희가 역전성의 대세를 확실하게 잡았 다. 17일 새벽 4시 현재 박정희는 윤보선에 대해 약9만2천 표 차이로 앞 서고 있었다. 박정희를 경주까지 수행했던 한 측근은 '10월16일 새벽을 넘기는 일은 5·16 새벽 한강을 넘어서는 일보다 더 어려웠고 지리했다' 고 말했다.
 
 중앙선관위는 17일 오후 3시에 전국 개표를 모두 끝냈다. 5대 대통령 선거의 투표율은 84.9%, 유효투표율은 91.3%, 박정희는 4,702,640표를 얻어 4,546,614표를 얻은 윤보선을 156,026표 차이로 눌러 제5대 대통령 에 당선되었다. 서울 경기 강원 충청 지역에서 크게 패배한 박정희는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에서의 압승으로 이를 만회했던 것이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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