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환향
경주에서 대통령 당선을 확인한 박정희는 10월17일 밤을 대구에서 보 낸 뒤 승용차편으로 고향인 경북 선산으로 향했다. 구미읍 상모동에서 차 를 내린 박정희 의장은 금호산 기슭 온수골 마루턱에 자리잡은 선영으로 올라갔다. 길가에 늘어선 주민들에게 박의장은 '어떻게 알고들 나왔습니 까. 이제는 얼굴을 통 몰라보겠군요'라면서 일일이 손을 잡고 인사를 했다. 한 아낙네는 '선산에 인물이 났네'라고 소리를 질렀고 한 할머니는 '임금이 왕림하신다는 말을 듣고 이웃에서 왔습니다'라면서 허리를 깊게 굽혔다.
생가로 돌아오니 전형적인 농사꾼 모습의 큰 형 박동희옹이 기다리고 있다가 대통령이 된 동생의 절을 받았다.
'형님 왜 그렇게 늙으셨습니까.' '나이를 먹으니 늙을 수밖에. 그런데 이번 선거를 보니 농촌사람들은 정치를 잘 한다고 하는데 도시에서는 반대가 많아. 월급 가지고는 쌀값이 비싸 살기가 어려운 모양이지.' '앞으로 힘껏 일해보겠습니다.'.
형제가 근 한 시간 대화를 나누는 사이 박의장의 생가에는 마을 사람 들이 몰려와 막걸리 파티장으로 변했다.
10월23일 오후 1시10분 김포공항. 김종필 전 공화당 창당준비위원장도 화려하게 귀국했다. 도쿄발 서북항공사편 여객기가 도착하기 전부터 공항 에는 약 300명의 출영객으로 붐볐다. JP와는 인간적으로 의기투합하는 사 이인 김두한은 아버지 김좌진 장군에게 추서된 건국공로훈장을 가슴에 달 고 나왔다. 여덟 달 만에 돌아온 김종필은 흰 목도리에 검은 코트를 입었 다. 아내(박영옥)가 맏딸 예리와 장남 진을 데리고 기내안으로 먼저 들어 가 남편을 맞았다.
김종필은 승강대를 따라 내려와 공화당 의장 윤치영과 얼싸안았다. 연 단에 오른 그는 준비된 첫 마디를 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구주보다는 미국이, 미국보다는 아시아가, 아시 아보다는 세계가 더 크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으며, 우리 대한민국을 지 배할 나라도 대한민국이 지배할 나라도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왔습니 다.'.
김종필은 가족과 함께 중형 새나라 승용차편으로 장충동 의장공관으로 달렸다. 그는 처삼촌 박정희에게 인사를 올린 다음 오후 3시 신당동 자택 에 도착했다.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김종필은 '이번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를 당선시켜주신 국민들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한다'고 했다. 그는 '박의 장과 만나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흰 머리가 늘었습니다란 말만 했다'면서 '앞으로 중요한 많은 문제들이 남아 있는데 그때마다 국 민들께서 이번처럼 올바른 판단으로 해결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 내 박영옥은 둘러싼 기자들에게 '이제 그만 점심 좀 먹게 해주세요'라고 사정하다시피했다.
김종필은 귀국하자마자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귀국한 지 사흘 째 되는 10월25일 오전 그는 앙숙 사이인 사뮤엘 버거 주한미국대사를 방 문하여 한 시간 동안 요담했다. 오후엔 이대부속 병원에 입원중인 김동하 전 최고위원(5·16당시 예비역 해병소장)을 찾아갔다. 반김종필 운동을 주동했다가 쿠데타 음모 혐의로 구속 재판을 받고 풀려난 김동하와 만나 고 나온 김종필은 '서로 괴롭혔던 과거를 씻고 새 출발에 합심하자는 이 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김종필은 10월29일엔 자신이 만든 공화당에 평당원으로 복당했다. 그 직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종필은 고향인 부여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 마할 것이라고 밝힌 뒤 도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가로막는 일체의 봉건적 유제와 식민지적 잔재를 일소하기 위하여 젊은 세대는 총궐기하여야 한다.' '나는 일체의 낡은 권위에 도전하는 새로운 개척자의 기수가 되겠다.'.
김종필은 11월4일엔 고려대 총학생회가 주최한 학술사상 대강연회에 나가 '우리의 민족주의는 반공을 기둥으로 삼고 자유민주주의를 배경으로 하여 자립경제와 강력한 지도력을 확립하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종필이 학생들로부터 박수를 받은 대목이 있었다.
'혁명 이후 일을 하다가 의욕과잉으로 망명 아닌 망명 생활을 하다 돌 아오니 주위에서는 좀 쉬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휴식은 죽은 뒤에 썩도록 하겠다고 대답합니다.'.
김종필은 11월8일엔 조선일보에 '한국의 근대화와 새 지도세력'이란 제하의 기고문을 싣고 자신의 역사관과 정치철학, 그리고 비전을 밝혔다. 그는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근대화의 포부를 설명했다.
<한국의 모든 문제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다가 한국에서 죽을 우리들이 해결하여야 한다. 특히 새로운 역사의식에 눈을 뜬 젊은 새 세대에 의하여 한국의 문제들은 해결되어야 한다. 한국의 근대화를 추진시킬 이념과 세력이 있어야 한다. 민족적 민주주의와 민족적 지도세력이 그것이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도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