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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조문
 케네디 조문
 
 11월2일 조선일보 등 모든 신문은 월남의 군사 쿠데타가 성공 하여 고 딘 디엠 정권이 무너지고 고 딘 디엠과 동생 고 딘 누는 자 살했다고 보도했다. 5.16쿠데타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우리 언론은 월남의 이 쿠데타에 대해서는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고 상당히 호의 적인 반응이었다. 민주주의라는 외래 이념에 완전히 설득당한 우리 지식인들은 외국에서 발생한 사건에도 민주라는 잣대로 가치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고 딘 디엠 정권은 비민주적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쿠데타로 등장 한 군부보다는 더 민족적이었다. 월남의 보통사람들에게 상당한 인 기를 누리고 있었던 고 딘 디엠이란 민족적 지도자가 사라지자 월남 은 쿠데타의 연속 사태에 휘말려들면서 정치적인 구심점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월남내 공산게릴라와의 전투를 미군이 주로 맡게 되었다. 미국은 민주주의 수호란 명분으로 반 고 딘 디엠 쿠데타를 지원했으나 그 대가로써 월남전을 미국의 전쟁으로 떠맡게 되었다.
 
 고 딘 디엠 형제는 과연 언론에 보도된 대로 자살했는가. 형제 는 사이공시내 남쪽의 중국인 거주 지역내 한 성당에 숨어있다가 쿠 데타군에게 항복의사를 전한 뒤 대기하고 있었다. 쿠데타 지도자 민 장군은 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지프 차 두 대와 호송차를 보냈다. 두 사람은 두 손이 뒤로 묶인 채 호송차에 쳐넣어졌다. 호송차가 합참 본부에 도착하여 문이 열렸을 때 두사람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총상 과 난자된 상처가 나 있었다. 쿠데타 주모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돈 장군이 쿠데타 지휘자 민 장군에게 따졌다.
 
 '이들이 왜 죽었소?' '그게 어떻단 말인가.'.
 
 민 장군은 수개월 후 한 미국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고 딘 디엠은 서민들 속에서 너무 인기가 있었다. 살려둘 수가 없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고 딘 디엠 형제가 자살했다는 허위 보고를 받 았을 때 '카톨릭 교도가 어떻게 자살할 수 있을까'하고 의심했다고 한다.고 딘 디엠 제거 작전의 사령탑 역할을 한 로즈 힐스맨 차관보 는 '이것이 마지막이구나 하는 절망감으로 자살했을 것이다'고 했 다. 맥스웰 테일러 대통령 군사고문은 '두 손이 등뒤로 묶인 상태에 서 어떻게 총과 칼로 자살을 할수 있었을까'하고 고개를 갸웃둥했다.
 
 나중에 고 딘 디엠 형제의 죽음에 대해 그 진실을 알았을 때 케 네디 대통령은 양심의 가책을 받고 고뇌에 빠졌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 모택동의 발언이다. 그는 1965년 미국기자 에드가 스노에 게 '호지명과 나는 고 딘 디엠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딘 디엠이 죽은 뒤 갑자기 평화라도 왔단 말인가'라고 했다.
 
 고 딘 디엠이 비명에 간 후 20여일째 되는 1963년 11월 22일 주 미 한국 대사 김정렬은 유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워싱턴에 온 김 용식 외무장관과 최규하 대통령보좌관을 승용차에 태워 뉴욕으로 달 리고 있었다. 점심 때가 되어 휴게소에 들른 일행은 식사를 시작했 다. 갑자기 종업원이 소리쳤다.
 
 '대통령이 총에 맞았다! 대통령이 총에 맞았다!'.
 
 김정렬 일행은 황급히 차로 돌아가 라디오를 켰다. 장송곡이 들 리고 케네디대통령이 텍사스주 댈라스를 방문중 피격되어 조금 전에 사망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일행은 서둘러 뉴욕으 로 달리면서 라디오 방송을 계속 청취했다.
 
 드골 프랑스 대통령, 이케다 일본 수상이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 식에 참석하러 오기로 했다는 뉴스도 흘러 나왔다. 김대사는 외무장 관 일행을 뉴욕에 데려다 준 다음 비행기편으로 워싱턴으로 돌아왔 다. 대사관에 가니 이미 백악관으로부터 통지가 와 있었다. 모든 외 교사절은 백악관으로 모여달라는 내용이었다. 서울에서는 김현철 내 각수반이 장례식에 참석하러 올 것이라는 연락이 왔다. 김정렬 대사 는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가원수급이 오는데 혈맹인 한국에서 최고지도자가 오지 않는다는 것은 결례라고 판단되었다. 물론 제6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 와 있어 박정희 의장이 나라를 비우기가 어려우리라는 것은 이해가 되었다.
 
 김대사는 윤석헌공사, 송정범공사, 이범석-홍성철-박건참사관,윤 승국 무관 등을 불러 '박의장의 참석 여부의 타당성에 대해 회의를 하고 의견을 모아다오'라고 지시했다.
 
 15분쯤 뒤 윤공사가 오더니 '대사께서 당장 박의장께 전화를 거 셔셔 장례식에 직접 오시도록 하십시오'라고 건의했다. 김대사가 시 간을 계산해보니 서울은 새벽 4시쯤이었다. 국가원수를 깨운다는 것 이 걸렸지만 급한 일이라 다른 방도가 없었다. 국제전화교환대에 전화신청을 하니 15분만에 장충동 의장공관의 경호병이 나왔다.
 
 '나는 미국대사인데 지금 긴급한 일로 대통령(권한대행)께 말씀 드릴 일이 있소' '지금 주무시고 계십니다. 전화통화가 어렵습니다. 저로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김대사는 경호병과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문득 박의장의 부관 김성구대위가 생각났다. 김대위를 찾아 용건을 말하니 박 의장을 바꾸어주는 것이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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