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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에 약점 잡혔던 미국
 JP에 약점 잡혔던 미국
 
 미 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낸 도널드 S 맥도널드는 '미국과 한국 관 계 - 해방에서 자주까지'란 책에서 흥미로운 언급을 하고 있다.
 
 <(1963년 가을) 정치격동의 와중에 한국 전문가들은 워싱턴의 각 종 성명에서 박정희에 대한 미국의 시각이 월남의 고 딘 디엠에 대한 시각과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노골적인 반미운동은 공 화당의 핵심 선거전략이었다. 박정희도 야당을 외세에 아부하는 사대 주의자라고 비난했다.>.
 
 고 딘 디엠은 6대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중인 1963년11월1일 미국 이 간여한 군부 쿠데타를 만나 동생과 함께 피살되었다. 미국은 박정희와 고 딘 디엠이 다 같이 위험한 반미 민족주의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4년 전 출간된 월남전 당시의 미 국방장관 맥나마라의 회고록 에 따르면 미국정부가 고 딘 디엠을 제거하기로 결심한 이유 중의 하 나는 고 딘 디엠의 자주노선이었다고 한다. 미국 정보기관은 고 딘 디엠이 정보기관장인동생을 통해서 호지명의 월맹과 비밀접촉을 기도 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남북 월남의 두 민족주의자들이 미국 몰래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미국 권부에선 강하게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 국무부 안에서 고 딘 디엠 제거를 가장 강력하게 밀어붙인 사 람은 극동담당 차관보 로저 힐스맨 2세였다. 2차 세계 대전 때 게릴 라전에 참여한 적도 있는 힐스맨은 월남뿐 아니라 한국도 맡고 있었 다. 그가 고 딘 디엠 제거를 추진하고 있던 1963년 가을, 그의 앞으 로 박정희와 김종필의 '위험한 사상성향'에 대한 보고서가 주한 미국 대사관 등지로부터 많이 올라왔다. 힐즈맨의 머리 속에는 월남의 고 딘 디엠 - 고 딘 누 형제와 박-김이 한 쌍의 골치거리로 입력되어 있 었을 가능성이 있다.
 
 소련과 대결하여 자유세계를 지켜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이런 동서의 세력 균형을 깰 수 있는 민족주의자들의 모험이 달가울 수가 없었다.더구나 월남과 한국 같은 분단국가에서 이념을 넘어 민족문제 에 접근한다는 것은 지도자의 목숨이 걸리는 중대사가 되던 냉전시대 였다. 박정희와 김종필은 출신 배경이나 성격은 대조적이었으나 자주 노선에 대한 신념과 논리는 똑 같았다. 미국에선 김종필이 더 위험한 민족주의자이고 박정희는 그런 색채를 띠고 있으나 실용적인 지도자 라고 보고 있었다. 이무렵 나온 박정희의 '국가와 혁명과 나'를 읽어 보면 박정희는 자주노선에 대해 김종필보다 더 깊고 근원적인 인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국토분단의 책임도 미국에 묻고 있다.
 
 '이것(국토분단)은 물론 미국의 단독 행위가 아닌 것을 모르는 바 아니나 적어도 그 일단의 책임이 그 사람들에게 있는 것만은 사실이 다.'.
 
 박정희는 한국 전쟁 때 미국이 도와준 것도 '한국의 방위만을 위 해 치러졌다고 볼 수는 없다. 미국을 비롯한 자유진영의 평화와 태평 양지구 방위정책에 직결되기 때문이었다'고 썼다. 박정희의 미국에 대한 태도는 상식처럼되어 있던 무조건적인 혈맹론과는 거리가 있 다. 그는 미국에 대한 고마움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따질 것은 따지 겠다는 자세이다. '국가와혁명과 나'에서 박정희는 미국에 대한 일종 의 자주선언을 한다.
 
 <첫째, 미국은 서구식 민주주의가 우리 실정에는 알맞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백보를 양보하여 하나의 민족사회가 현대 자본주의 제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제 요건이 갖추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자주국가인 이상 무조건 동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 다. 사회전반이 균형되지 못한 우리 현실에 민주제도의 실현을 기대 한다는 것은 연륜을 무시하고 (아이가) 성인이 되기를 바라는 어리석 은 어버이의 심리와 같다.
 
 둘째, 경제원조나 민주주의의 이상을 통한 한국 사회의 일률적인 미국화를 기대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셋째, 군사·경제면에 걸친 미국의 원조는 이왕에 줄 바에야 우리 의 뜻에 맞도록 하여 달라는 것이다.>.
 
 박정희는 자신의 책에서 미국의 대한원조가 소비재에 치우쳐 있고 공장시설이나 기계류에 대한 배려가 적은 것에 대하여 집요하게 불만 을 털어놓았다. 박정희는 1959년도 미국의 대한원조가 시설부문에 22% 만 배정되고 나머지는 원자재와 소비재 공급으로 충당된 것을 지적하 면서 '우리가 요망하는 공업생산 시설에 대하여 얼마나 인색하고 되 려 원하지도 않은 소비재 분야에만 적극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 비판했다. 미국으로선 박정희의 이런 태도가 기분 나빴을 것이 다. 주는것을 고분고분 받지 않고 이것 달라, 저것 달라 하고 깐깐하 게 요구하는 지도자를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 보기 힘들기도 했다.
 
 김종필 총리의 증언에 따르면 미국으로선 박정희 - 김종필 콤비의 존재가 찜찜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고 한다. 김종필 정보부장은 5·16 직후 정권을 잡아보니 엄청난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았다는 것이 다. '미국측 정보기관이 장면 정부 가지고는 안되겠다고 해서 장면총리의 미국인 측근과 연관을 갖고 한국군과 연계하여 쿠데타 계획을 꾸미고 있었음을 밝혀냈다'고 한다. 김종필 부장은 주한 미국 대사관 측과 합의하여 두 미국인을 추방시키는 대신 관련 수사 기록을 없애 버리고 이 사건을 덮어버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비브 참사관과 내 가 이 문제를 마무리 지었다'는 것이다.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미국 측은 자신들의 약점을 잡은 30대 청년장교 김종필을 더욱 경계하게 되었을 것이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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