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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최초 해명
 박정희의 최초 해명
 
 제5대 대통령 선거의 최대 쟁점이었던 박정희 후보의 사상문제를 제 기했던 야당측은 대선 패배후 6대 국회의원 선거운동기간중에도 계속 포문을 열었다. 1963년11월6일, 윤보선 민정당대표최고위원은 '이번 총 선거는 대통령 선거의 연장전'이라면서 대선때 벌어졌던 사상논쟁에 대 해 '머지 않아 태도를 밝히겠다. 사상논쟁과 관련해 내가 할 이야기는 다했으며 이제는 박씨가 아니라고 했던 사실까지 확증이 드러났으니 박 씨가 그 사실을 해명하든지 국민에게 사과해야할 것'이라고 했다.
 
 박정희는 11월9일 오후, 여수 교동에서 연설 직전 기자들에게 '대통 령 선거때 모 야당후보가 나를 여순반란사건 관련자라고 말하고 중앙의 어떤 신문사를 매수, '삐라'를 뿌려 나를 빨갱이로 몬 일이 있으므로 내가 직접 이곳에서 해명하겠다'고 전제한 뒤 연단에 올라가 자신의 입으로 이렇게 해명했다.
 
 <친애하는 여수시민 그리고 군민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 들을 이렇게 뵙게 된 것을 대단히 감개무량하게 생각합니다. 오늘같은 그 말썽있던 그 여수시에 본인이 직접 와서 시민 여러분들을 이렇게 접하기때문에 거기에 대한 이야기를 몇 마디 하고자 합니다.
 
 소위 말하는 여수 순천 반란사건이 났을 당시에 본인은 육군 소령의 계급으로서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여기 주둔하고 있던 당시 14연대가 반란 을 일바셨을 때(일으켰을 때), 그때 그 연대 주모자는 여러분들이 지금 도 기억하고 계실 줄 압니다마는, 김지회라는 육군중위가 소위 좌익계 열의 선동을 받아가지고 14연대내에서 반란을 일바셨습니다(일으켰습니 다). 내일같이 그 부대가 제주도 토벌로 출발하기 그 전날밤에 반란을 일바셨던(일으켰던) 것입니다.
 
 에-, 여기에 반란 사건이 발발하자마자 중앙에서는 당시 육군 총사 령관으로 있던 송호성 장군이 직접 현지에 나와서 이 토벌부대를 지휘 하기 위해서 떠나면서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본인을 불러서 '자네가 나 의 작전참모로서 같이 수행하라'하는 이러한 명령을 받고, 송호성 장군 하고 같이 비행기를 타고 광주 비행장에 도착해서 당분간 작전참모로 근무를 했습니다.
 
 그 이후에 송호성 장군이 갈리고, 원용덕 장군이 또한 사령관으로 와서 근무할 때에도 본인은 그 밑에서 작전참모로 근무를 했습니다.
 
 그 이후 중앙의 명령에 의해서 육군 총사령부에 다시 들어간 이후에 우리 육군 내부에서, 우리 육군뿐만 아니라, 아- 그때- 전군에 있었던 일입니다마는, 우리 군 내부에도 좌익 계열에서 상당히 침투를 해 가지 고, 군의 적화를 위해서 여러 가지 그런 움직임이 보인다, 이 군 내부 의 좌익분자를 전부 제거해야 되겠다. 소위 말하는 숙군문제가 일어났 습니다.
 
 그때에, 그때는 과거에 해방후에 자기 어떤 친구가 좌익에 조금 관 여를 했다든지, 또는 자기 형제들 중에 누가 좌익에 관련한 사람이 있 었다든지, 또 자기가 직접 그런 좌익을 하지 않았지마는 자기 어떤 친척 중에 그런 일이 있었다든지 그야말로 사돈의 팔촌 중에서 그런 무엇이 있었다 하더라도 전부 검열을 받아 가지고, 특히 어떤 사람이 개인적인 사감을 가지고 이러한 모략을 했을 때에는 전부 일단 검거가 되고 체포가 되어서 여기에 대한 준엄한 조사를 받았던 것입니다.
 
 불행히도 본인의 형제 중 한 분이 해방 이후에 이러한 좌익계열에서 약간 관계했던 그런 형제가 한 분 있었습니다. 그 연줄로 말미암아 본 인에대해서도 아무 것의 형이 그랬으니까 본인도 거기에 관계 있을 것 이다 이래 가지고 당시 본인도 육군 수사기관의 체포영장을 받아서 들 어가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약 두 달 동안 여기에 대한 여러 가지 조사를 받은 결과, 본인 자신 은 아무런 혐의가 없다는 판명이 되어서, 무사히 되어서 나와 가지고, 그 뒤에 육군에서 다시 근무를 했고, 5·16 직전에 육군 소장계급까지 본인은 진급을 했습니다.>.
 
 박정희의 이 연설은 공개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해명한 유일한 육성 자료이다. 박정희는 이 설명에서 자신이 무기징역 선고를 받은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박정희 총재가 연설을 마치고 떠난 이틀 뒤 같은 장소 에서 지원유세를 하게 된 윤보선은 또다시 박정희의 사상편력을 거론했 다.이날 윤보선은 연설을 통해 '내가 알기로는 박정희씨 형 한 분(박상 희-주)이 대구 10·1 폭동사건의 주모자의 한 사람으로 총살을 당했고, 국내에서 발행하는 모 영자신문에 박씨의 다른 형 하나는 현재 북한 괴 뢰 정권 밑에서 정보관계 실무자로 활동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고 주장했다. 운씨의 이같은 주장은 최근까지 일부 사람들이 사실로 믿고 있을 정도로 전파력이 강했다.
 
 박정희는 호남유세 도중 추가원조문제로 상경했다가 11일 오전 군산 행 특별열차를 타기 전 기자들로부터 윤보선의 발언을 전해 들은 뒤'그 사람, 이번에는 고발해야겠어'라고 하면서 '나는 오형제였소. 그 중 삼 형제는 고향에서 죽고 형제만 남았는데 나하고 맏형인 동희형이 고향에 생존해 계시오'라며 손가락을 꼽아가면서 해명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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