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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들, 서독에 가다
 광부들, 서독에 가다
 
 1963-65년은 박정희가 정치 혼란에 휘말리면서도 방향감각을 놓치지 않고 국가의 진로를 대외지향으로 확실하게 잡은 시기였다. 서독에 광 원·간호사 파견, 남미이민, 월남파병, 원양어장개척, '현대건설'의 해외진출, 한일국교정상화, 수출입국 정책이 모두 이 기간에 추진되었다. 국토분단으로 반쪽을 잃은 한국은 해외로, 세계로 나아가서 드넓은 민 족의 활동공간을 확보하게 된다. 조선조이후 사라졌던 우리 민족의 야성과 해양정신이 되살아나는 계기를 잡은 것이다.
 
 이기홍은 이승만정부시절에 부흥부(경제기획원의 전신)의 기획국장 으로 있으면서 경제개발계획 수립에 참여하였다. 그는 1962년3월 서독 주재 한국대사관에 경제기획원 주재관으로 파견되었다. 당시 군사정부 는 해외에 인력을 수출하기 위하여 여러나라의 한국 대사관에 훈령을 내려놓고 있었다. 이기홍 주재관(뒤에 경제기획원 차관보 역임)과 김태경(한국 테크노 벤처 사장)보좌관은 루르 탄광지대에 주목했다.
 
 이곳에 서는 '가스트 아바이터(손님일꾼)'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터키, 스페인, 일본 광부들이 일하고 있었다. 이기홍은 체구가 작은 일본광부가 일할 수 있다면 한국광부들도 못할 게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더구나 일본광부들은 본국에서 경제사정이 호전되자 재독노동에 흥미를 잃고 돌아가는 추세였다.
 
 이기홍 주재관은 루르 지방의 탄광회사들을 방문하여 생각을 떠 보 았다. 회사들은 한국 광부들을 받아들이겠다면서도 노동청의 허가가 있 어야 한다고 했다. 이, 김 두 사람은 노동청의 케퍼비츠 노동정책국장 을 찾아갔다.
 
 독일어에 능통한 김태경 사무관이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가난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부지런합니다. 우리 광부들 은 또군복무 경험이 있어 잘 훈련되고 단체생활에 익숙합니다.'.
 
 케피비츠 국장의 표정이 동정적으로 변하더니 선뜻 수락했다. 이기 홍은 의기양양하게 한국 대사관으로 돌아와 대사에게 보고했다.
 
 <대사는 왜 그런 일을 하고 다니느냐고 버럭 역정을 냈다. 노무자 들이 독일에 오면 골치가 아프다는 것이다. 당시는 단 1불의 외화도 벌어야 한다고 박의장의 진두지휘하에 온 국민이 총력을 경주하고 있 었다. 박의장이 혁명정부 지도자로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불쌍해보였고 고독해 보였다. 나는 경제기 획원에 이 사안을 보고하고 추진키로 했다>(이기홍 회고록 '경제 근대 화의 숨은 이야기').
 
 1963년 여름 김종필 전 정보부장이 '타의반 자의반'의 외유 도중 서독을 방문했다. 그는 중앙정보부 소속으로서 한국대사관에 파견나와 있던 육사 8기 동기생인 윤흥정 참사관 및 김태경 사무관과 함께 루르 지방의 한 탄광 막장까지 들어가 보았다. 대사관으로 돌아온 김종필은 '본국에서 수속을 빨리 해주지 않아 광부들 도착이 늦어지고 있다'는 김태경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서울의 박의장에게전화를 걸었 다.
 
 김종필이 '서독이 우리 광부 000명을 받아들이겠다는데 국내에서 제때에일을 처리하지 않고 있으니 각하께서 선처해주십시오'란 요지의 건의를 했다. 김태경이 옆에서 듣고 있으니 박의장은 '000명이 아니고 000명이야'라고 바로잡아주는 것이 이 일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며 칠 뒤 최고회의 이후락 공보실장 명의의 문서가 서독 대사관으로 날아 왔다. '의장의 명에 의하여 연말까지 광부들의 파독이 가능해지도록 할 것이니 준비하라'는 요지였다.
 
 1963년8월8일 경제기획원장 원용석은 '우리나라 노동자 1,500명을 루르 탄광지대에 파견키로 서독정부와 합의되어 우선 1차로 500명을 뽑아 연내에 파견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기획원은 수일내로 전국에 공모공고를 내겠다면서 근무조건을 공개했다.
 
 ·3년 동안 탄광에 근무하는 한편 기술훈련을 받는다 ·월급은 162 달러50센트(650독일 마르크) ·중학졸업 이상의 학력소지자로서 20세 이상 30세 미만.
 
 파독 광부모집 원서 접수 첫날인 8월16일 하루에만도 4천 명이 원 서를 가지고 갔다. 실제 지원자수는 2,800여 명인데 1,600여 명이 신 체조건으로 실격했고 나머지 1,200명 가운데 약500명은 광산에 근무한 적도 없으면서 허위경력증명서를 붙였다가 들통이 났다. 대졸 및 고졸 학력자가 태반이었다. 1차 시험을 거쳐 9월28일에 최종합격자 367명의 이름이 발표되었다. 신문들은 사법시험 합격자를 발표하듯이 사회면에 합격자 이름을 실었다.
 
 조선일보는 이기양기자를 서독 두이스부르크에 특파하여 '한국 광 부들을 기다리는 서독 광산촌'을 소개했다. 기사 제목들은 외국에 나 간다는 것 자체가 특권이었던 시절의 독자들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었다.
 
 <호텔 부럽지 않은 숙소 / 방마다 독서실에 오락시설까지 갖추어 / 돈과맥주와 아가씨와 / 이주년가 땐 파리에서 데이트도 / 지하 800m 서 콜라가 수도처럼 / 라인강변 처녀, 동양총각 좋아 / 민간외교 역할, 코리아 자랑해야>.
 
 학력이 높아 '인테리 광부들' '신사광부들'로 불린 우리광부들은 파독에 앞서 20일간의 강훈련에 들어갔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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