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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지리
 어부지리
 
 수출 드라이브 정책의 사령탑이었던 박충훈상공장관은 자신의 회고 록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수입대체란 해외에서 수입하는 물건을 국내에서 만들어 쓰자, 그렇 게 하여 외화를 아끼자는 것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자급자족하고 자립 경제를 건설하자는 게 그럴 듯하지만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다. 철강 공업을 예로 들자면 막대한 투자로 건설한 공장이 수출산업으로서 국 제 경쟁력이 없으면 지탱해 나갈 수가 없다는 게 뻔한 이치다.
 
 그런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은 국내에서 국제시세보다도 훨씬 비싼데도 울 며 겨자먹기로 사 써야 한다. 수출이 안되면 외화를 벌 수 없고 외화 가 없으면 필요한 물건을 사 올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저개발상태를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수출지향적인 경제는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데 비하여 수입대체형은 방어적이고 소극적이다. 수출제일주의라는 것 은 자유기업, 시장경제의 원칙과 자유민주주의 창달에도 기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출 정책을 취함으로써 물건을 만들 때 세계 시장에서 다른 나라 제품들과 경쟁하여 이겨야 한다는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 었다. 수입대체 정책을 폈다면 국내 시장과 국내 소비자만 생각해서 적당히 만들었을 것인데 우리는 처음부터 국제경쟁을 생각하면서 자신 들을 혹사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을 만든 것이다.
 
 이것이 한 국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능력 한계 끝까지 스스로를 밀어붙이도록 했던것이다. 수출정책은 또 정부와 기업인들이 세계시장뿐 아니라 국 제관계나 문화의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었다. 자연히 나라 가 개방체제로 변해갔고 이런 흐름에서는정치적 탄압에도 한계가 생기 지 않을 수 없었다. 경제의 개방화는 정치의개방화를 결과할 수밖에 없게되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당선자는 1963년11월26일의 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공화당을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권력구조를 짜기 시작했다. 박 정희총재는 김종필을 당의장으로 임명, 원내 요직의 인선을 맡겼다.김 종필 의장은 자신의 외유중 공화당을 끌고 가느라고 고생했던 정구영 전 총재를 국회의장으로 추천할 생각이었다.
 
 12월1일 김종필은 정구영을 만나 '국회의장직을 맡아주십시오'라고 청했다. 사흘 뒤 박정희도 정구영을 불러 국회의장직을 부탁했다. 이 자리에서 정구영은 박정희 당선자에게 싫은 말을 했다는 것이다.
 
 '정부·국회·당의 개편에 대해서는 박의장께서 김종필 의장, 그리 고 사무처의 김동환 오학진 신윤창, 그리고 이후락 이렇게 군출신 다 섯사람들 하고만 의논하시는데 군정연장의 냄새가 납니다. 정 어쩔 수 없다면 쇼라도 좀 하십시오.' '쇼가 뭡니까.'.
 
 '민간 출신 정치인들을 불러 의논한다면서 별실에 연금하고 군출신 들끼리 결정한 뒤 민간인 누구도 참석했다고 발표하면 될 것 아닙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신문의 오보를 보고 자꾸 그러시는군요.'.
 
 박정희는 청와대를 나서는 정구영을 따라나오면서 '국회의 조직문제 를 구상해 주십시오. 최고회의에서 인계할 인원이 약200명 됩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김종필 당의장이 정구영을 보자고 그러더니 이런 말 을 하더란 것이다.
 
 '윤치영씨가 선생님과 맞서서 국회의장을 희망하고 있지만 그분을 지지하는 사람은 10여 명밖에 없고 압도적으로 선생님이 물망에 오르고 있습니다. 윤치영씨는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다른 요직에 취임하기로 내 정되었습니다. 내일 공식으로 발표됩니다.'.
 
 12월7일 오후 공화당은 국회의장에 이효상, 부의장에 장경순, 원내 총무에 김용태, 부총무에 최치환 예춘호, 법제·사법위원장에 백남억 의원을 지명하는 등 국회요직의 인선 결과를 발표했다.
 
 그때 57세이던 이효상은 대구고보(경북고의 전신)와 동경제대를 나 와 대륜중학교 교장, 경북대 문리대 학장을 지내다가 4·19 혁명 이후 제5대 총선에서 참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산악회 운동 도 하고 시도 짓고 능금 과수원도 운영하는 등 다양한 인생경험을 한그 는 '한솔'이란 아호에 어울리는 중용인으로 평가되었다.
 
 17명의 국회 요직인사 가운데 50대는 이효상, 김유택(52세·재경위 원장), 백남억(50세)뿐이고 40대가 8명, 30대가 여섯 명이었다. 60대 이상은 아무도 없었다. 조선일보는 인사평에서 '반 김종필파의 승리'라 고 보도했다.
 
 정구영은 박정희와 김종필이 자신에게 말 한 마디 없이 국회의장 지 명을 바꾼 데 대하여 섭섭했지만 침묵해버렸다. 국회의장직을 놓고 윤 치영과 정구영이 경합하자 박정희는 제3자를 선택한 것이다. 당시 공화 당원내총무김용태에 따르면 박정희가 '이거 혼선이 생겼는데 어떻게 했 으면 좋겠느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답했다는 것이다.
 
 '제가 원내총무로 내정되니까 두세 번 저를 찾아오시어 문공위원장 을 한번 맡았으면 하시던 이효상 의원이 계신데 참의원 경험도 있고 하 니 어떠실는지요.'.
 
 12월8일 박정희는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던 전 주미대 사 정일권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일권이 '당선을 축하드립니다'고 하자 박의장은 정감 있는 말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정형! 공부는 그만하시고 돌아오셔서 일 하나 를 꼭맡아 주셔야겠습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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