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에게 내린 밀명
1964년 1월1일에 발표된 박정희 대통령 신년사의 신문 제목은 '부지런히 일합시다'였다. 그 내용도 온통 '일'과 관계되는 단어 들로 채워졌다. '능률 있는 정치' '행정의 능률' '성실한 일꾼' '일하는 정부' '일하는 국민' 등등. 최두선 국무총리의 신년사 제목도 '민족력량을 결집하자'였다.
정부가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안정을 책임진 김종필 공화당 의장은 1월1일자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인구는 혁명후 벌써 2백만이나 늘어났고 국민들의 불만 배출구가 어디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재건국민운동에 기대했으나 관청 하나만 더 만든 셈이 되었다'고 했다.
-경제정책에서도 계획경제에서 자유경제로 후퇴가 있었다고 지적되고 있는데··· '자유경제체제를 기초로 하여 경제계획을 필요로 하는 부분은 계획적으로 하고 나머지는 정부간섭을 지양하는 혼합경제로 나아 가겠다.'.
-근대화를 위해선 국내 자본 형성이 중요하지 않는가.
'말은 쉽지만 민족자본 형성은 어려운 것이다. 농민에게 더 이상 내핍을 요구할 수도 없고···여기에 한일문제가 관련되는 것 이다.'.
기자는 '결국 근대화의 열쇠는 일본 자본의 도입에 있음을 시 사했다'고 평했다. 김종필은 야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백지에다 우리가 원하는대로, 국민이 원하는대로 그림을 그 려야겠는데 (문제는) 누가 그 백지를 빼앗아 가거나 먹칠을 할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이다.'.
김종필 의장은 1월2일 아침 민정당 대표최고위원인 윤보선의 자택을 찾아갔다. 박정희 대통령이 전하는 세단차 한대를 전달 했다.
'몸도 불편하시고 할텐데 외출하실 때는 승용차를 타셔야 할 게 아닙니까. 차 한 대를 놓고 갑니다.'.
윤보선은 다음날 이 차를 돌려보냈다.
1월4일 신문들의 사회면 머리 기사는 '제2 지남호(102t.제동 산업) 침몰-남태평양 사모아서 참치잡다가-승무원 17명 행방불명' 이란 기사였다. 7일자 신문엔 속보가 실렸는데 23명 중 두 사람 이 살아났다는 것이었다. 배가 파도를 맞아 침몰하자 선원들은 모두 바다에 뛰어들어 고기잡이용 유리 공으로 뗏목을 만들었다.
거기에 매달려 표류하던중 선장은 수평선 너머에 섬이 보이자 수영에 자신 있는 선원 네명을 자원으로 뽑아 섬을 향해 헤엄쳐 가도록 했다. 그 가운데 두명이 10시간 이상 헤엄친 끝에 섬에 도착했다는 기사였다. 원양어장 개척과 해운선원들의 해외취업이 본격화되면서 이런 선박 조난과 선원 떼죽음 기사는 반복된다.
박정희 대통령은 1월10일 국회에 나와 연두 교서를 발표했 다. 그는 '정치인의 책임은 모든 동포가 다 먹고 살 수 있는 방 도를 강구하는 것이다'고 정의한 다음 '우리가 극복해야 할 난관 은 세가지'라고 말했다. 공산주의와 대결하여 민주주의의 승리로 조국통일을 성취하는 길, 빈곤을 물리치는 길, 국민의 사고를 지 배해온 의타심과 파벌의식과 대결하여 자주성을 확립하는 길.
과장된 몸짓도 어투도 쓸 줄 모르는 박대통령은 48분간 연두 교서를 밋밋하게 낭독, 박수는 시작할 때와 끝날 때밖에 나오지 않았다. 의원들은 하품하거나 담배연기를 자욱하게 피우면서 무 료함을 달래는 모습이었다.
이 무렵의 어느 날 저녁 박대통령은 최고회의가 해산된 후 군 에 복귀하지 않고 집에서 쉬고 있던 박태준 전 최고위원을 청와 대로 불렀다.
박대통령은 육영수, 근혜, 근영, 지만 등 식구들과 함께 자리 한 식탁에 박태준을 앉힌 뒤 반주를 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한일관계에 들어갔다.
'경제개발은 해야겠는데 모든 게 돈 문제로 귀착된다. 당분간 세수가 늘어날 것 같지도 않고 국가의 신용이 높지 않아 외자도 입도 어렵다. 유일한 방법은 이미 합의한 대로 일본으로부터 무 상 3억, 유상 3억 달러의 청구권자금을 받아쓰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내의 정치적 사정으로 국교정상화 협상이 진전되지 않고 있 다. 대통령취임식 때 자민당 부총재 오노 반보쿠가 와서 하는 말 이 일본 정계는 각 파벌이나 개인의 정치적인 이해에 따라 생각 이 다르기 때문에 공식적인 외교 이외에 '네마와시'라는 비공식 접촉을 통해서 이들을 설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 인물을 보내달라고 하는데 조건으로서 대통령이 신임하 는 인물, 대통령과 함께 오래 일한 적이 있어 의중을 읽을 줄 아 는 인물, 그리고 통역없이 이야기가 되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했 다. 내가 수일 동안 생각해보았는데 아무래도 적임자는 자네 한 사람밖에 없는 것 같아. 미국에 가서 공부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잘알고 있는데 넉넉 잡고 1년만 수고해주기 바란다. 국내에 서는 한일 수교와 관련하여 정치자금 수수 의혹이 있느니 굴욕적 이니 뭐니 해서 비판도 반대도 격심하지만 우리가 언제까지나 미 국놈들에게서 밀가루나 얻어먹고 살아야 하겠나.
나라 경제를 일으키는 데는 이 길밖에 없다는 것이 내 신념이다. 설사 굴욕적인 측면이 있더라도 우리가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두고 두고 왜 놈들에게 더 큰 굴욕을 받아가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나는 내 정치생명을 걸고 이 일을 추진할 생각이나 자네도 그쯤 알고 일 해주기 바란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