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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이스틴의 '올 것이 왔구나' (2)
 글라이스틴의 '올 것이 왔구나' (2)
 
 글라이스틴 대사는 국무부로 보낸 10월 28일자 전문에서 또 이런 요지로 언급했다. [지난 18일 박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 자신도 강경책의 효용성을 의심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국국민들의 대다수는 지금 다소 완화된 유신체제를 원하고 있는데 이것이 파당적이 고 공격적인 정치인들 속에서 실현될 지는 의문이다. 몇 사람들을 박정희의 후계자로 상정할 수 있다.
 
 김종필이 집권하면 그는 상황을 확실하게 장악할 수 있겠고 정일권은 분권화된 권력 구조를 조정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후락도 지지세력을 모으는 노력을 해 보겠지만 그는 너무 많은 미움을 받고 있다. 김대중 김영삼도 참여할 수 있는 직접선거가 이루어 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야당은 곧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수준의 민주화를 요구하고 나올 것이다. 그들이 너무 빨리 또 너무 세게 민주화를 요구하고 나오면 상황이 극한적인 대결과 혼란, 그리고 불가 측성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 군대는 오래간만에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불투명한 상황에서 경쟁이 격화되 면 고전적인 형태의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새로운 권력의 균형이 언제 이루어질 지를 예상하기는 힘들다.
 
 군부는 임시적으로 최규하가 계속해서 대통령직을 수행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집단지도체제로 권력을 유지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 같다. 벌서 나를 찾아오는 장군들, 반체제 인사들, 정치적 기회주의자들이 많은데 이들은 미국의 도움을 빌려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하려고 할 것이다.
 
 1979년의 한국은 우리가 협박하여 민정이양으로 유도할 수 있었던 1960년대의 박정희가 아니다. 우리가 권력구조의 개혁을 너무 서둘러 한국정부에 압력을 넣다가는 반미감정의 폭발을 부를 것이다.]
 
 10·26사건 이후의 한국정세를 분석한 글라이스틴 대사의 이 보고전문을 읽고 있으면 대사는 한국 야당의 수권 능력을 아주 낮추어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수 국민들의 요구는 '유신체제의 부정'이 아닌 '유신체제의 완화'정도인데 강경야당이 성취도 할 수 없는 수준의 민주화를 요구하고 나서서 파국을 부를 가능성이 있다는 대사의 예상을 그 뒤의 전개과정과 비교하여 보면 매우 흥미롭다.
 
 순진한 한국인들은 미국이 민주화 세력을 지원하여 박정희를 몰아세우는 것을 보고는 미국이 민주화 세력을 지원하여 박정희를 몰아세우는 것을 보고는 미국이 야당의 집권을 바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국이 한국의 민주화를 지원한 것은 한국에 대한 자선이 아니라 자신들의 국익에 맞기 때문이었다. 박정희가 죽은 지금 미국은 한국의 자주노선을 저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미국에 대들지 않는 안정되고 온순한 정권이 나타나도록 공작할때이지 국정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민주화세력을 집권시킬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미국이 한국에 대해서 갖고 있던 국익의 우선순위표에서 민주화는 한참 아래쪽에 있었다.
 
 미국이 당시에는 권력기반이 전혀 없었던 정일권 이후락을 후계자 그룹에 포함시킨 것은 친미적 성향이 강한 두 사람이 집권했으면 좋겠다는 희망 섞인 관측이었을 것이다.
 
 조문특사로 한국을 방문할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에게 글라이스틴 대사가 보고한 전문에서는 박 정희를 냉철하게 평가했다. [한국역사에서 박 대통령이 차지할 위치는 확고하다.
 
 최근에 와서 정권의 정통성이 약화되긴 했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를 한국 근대화의 아버지로 추앙하고 있으며, 분단과 전란과 빈곤으로 신음하던 사람들에게 눈부신 경제발전과 자부심을 가져다 준 지도자로 보고 있다.
 
 농촌출신인 그는 농민들을 위한 애정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물론 그는 사교성 있는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국민들에게 무엇이 최선인지는 내가 가장 잘 안다는 식의 자신만만한은 그의 모델이었던 일본 명치유신 시절의 영향이었다.
 
 지금은 그의 위대한 성취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면서 다른 해결책을 요구하는 미래에 대비할 때이다.]
 
 강대국 미국의 힘을 배경으로 삼아 그렇게도 박정희(朴正熙)를 몰아세우면서 민주화세력을 비호해왔던 글라이스틴 대사가 죽은 박정희에게 바친 이 최고의 찬사와 민주투사들에 대한 경멸 섞인 의구심은 무 엇을 말하는가.
 
 미국정부는 민주화세력의 반(反)박정희 투쟁을 지원하고 이용하면서도 속으로는 「완화된 유신 체제 정도의 통치」가 한국사회 수준에 적합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전두환(全斗煥)정권을 미국은 그런 「완화된 유신체제」로 보게 된다.미국은 전 두환의 집권과정에서는 견제를 하는 체함으로써 애를 태우게 한 뒤에 자주국방정책의 포기 같은 여러 가지 국익을 챙기는 것이다.
 
 10월26일 밤 궁정동의 종성은 이 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것같이 보였던 한 거목(巨木)을 쓰러뜨렸다. 한 8시간 계속된 권력의 공백을 메우고 들어간 것은 최규하의 대통령직 승계, 그리고 정승화(鄭昇和) 계엄사령관의 등장이었다. 이 두 사람은 법에 정해진대로 권한을 잡은 것이지 권력 그 자체를 장악한 것은 아니었다. 난세에 법은 권력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최, 정 두 사람은 이날 밤 각자의 권위에 큰 손상을 받았다.
 
 대통령권한대행이 된 최규하는 김재규가 시해범이란 사실을 알고도 애매하게 행동했다는 비판을 받게 되며, 계엄사령관이 된 정승화는 시해사건현장 가까이에 김재규의 초대로 가 있었다는 것으로 해서 숱한 음모설과 의구심의 대상이 된다. 「권력=권한+권위」란 공식을 적용한다면 두 사람은 권위는 없고 권한만 있는 반쪽의 권력을 가진데 불과하였다.
 
 곧 나머지 반쪽을 쥐게 될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10월26일 저녁 7시30분쯤 서울 연희동 집을 나섰을 때 그는 이 나라의 권력서열에서는 아마도 50위 안에도 들기 어려운 형편에 있었다. 김재규의 정보부는 보안사의 대민(對民)정보수집업무를 폐지시켰고 차지철(車智澈)의 경호실은 전두환 사령관이 대통령에 접근하는 길을 거의 봉쇄하고 있었다. 1979년3월 노재현 국방장관은 1사단장으로 나간지 1년 남짓한 전두환 소장을 2군사령관으로 승진해나가는 진종채(陳鐘埰)장군의 후임으로 보안사령관직에 천거했다.
 
 그 이유는 5·16때부터 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전 장군이 차지철의 군에 대한 개입을 견제해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전두환의 보안사를 격동기의 무대로 불러낸 최초의 사건은 부마사태였다. 10월18일0시를 기해서 부산에 계엄령이 펴지자 부산지역 계엄사 산하에 부산지구 보안부대를 중심으로 한 합동수사단이 설치되었으나 정보부 부산분실의 위세에 눌려서 주도적 역할을 하지는 못했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부산에 계엄령이 펴진 10월 18일 새벽에 부산지역을 시찰하러 내려갔다. 부산지구보안부대장은 권정달대령.
 
 전소장은 권 대령을 만난 뒤 최석원부산시장을 찾아갔다. 마침 그때 김재규 부장이 시장실에 들어가 있었다. 전두환 소장은 시장을 만나지도 못하고 서울로 돌아갔다. 전두환 사령관은 허화평비서실장을 책임자로 지정하여 시국수습방안을 담은 중요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이 보고서를 청와대로 올리면 차지철 경호실장을 거칠 게 뻔한 일이었다. 이 보고서에는 경호실장의 군에 대한 개입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포함하여 혁신적인 시국수습 건의가 들어있었다.
 
 전 소장은 대통령 친척을 통해서 10월29일로 대통령 단독면담 일정을 받아놓았다. 10월26일 저녁 연희동을 떠난 피아트123형 승용차에는 앞자리에 전속부관 손삼수중위, 뒷자리에는 전두환 부부가 타고 있었다.
 
 사과 두 궤짝을 싣고 서빙고 수사분실로 위문을 가는 중이었다. 전 소장이 불쑥 '손 중위, 권총 차고 왔나'라고 했다. 손 중위는 '예'라고 하면서 허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켰다.
 
 {계속)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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