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파병을 제의하라!
박대통령의 대일밀사가 된 박태준 전 최고위원은 1964년 1월부터 8월 사이 일본에 머물면서 정부, 정계, 언론계 요인들을 만나한일 국교정상 회담에 임하는 한국측의 입장을 설명하고 다녔다. 2월초 도쿄 아카사카 거리의 한 요정에서 있었던 환영모임엔 자민당의 거두 오노 반보쿠 부총 재를 비롯하여 후나다(선전중) 중의원 의장, 시이나 외상, 나카가와(중 천일랑) 의원 등이 참석했다.
박태준은 그 뒤 나카소네 의원(뒤에총리), 기시 전 총리, 오히라 의원(뒤에 총리), 사토 의원(뒤에 총리) 등 자민 당의 실력자들과 자주 만나고 지방을 돌면서 유지들과 접촉했다.
이때 박태준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인물은 양명학의 대가인 야스오카 (안강정독)였다. 그는 역대 총리들에게 자문을 하는 등 우익 정객들 사이에선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야스오카는 '일본은 한국을 돕 는 차원에서 국교정상화를 해야 한다'면서 정치인들을 설득하고 박태준 에게 많은 요인들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야스오카는 그뒤 박태준이 포항 제철을 건설할 때도 많은 도움을 주게 된다. 박태준은 월1회 정도 자신 의 활동상을 청와대 이낙선 비서관을 통해서 박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가 만나본 바로는 기시 전 총리와 오노 부총재가 가장 협조적이었 다. 박태준은 자신의 임무를 마친 다음에는 나카가와 의원의 안내를 받 으면서 두 달 동안 일본 전국의 산업시설을 돌아다니면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박태준은 '불과 20년 사이에 일본이 이룩한 눈부신 성장의 현장을 보니 피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9월에 귀국 하여 박대통령에게 자신의 산업시찰 소감을 보고했고 이것이 포항제철 건설의 대임을 맡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이도성 편저 '실록· 박정희와 한일회담'에서 인용).
1963년 12월20일 존슨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인 맥조지 번디가 미 국무 부의 정치담당 차관보 알렉시스 존슨에게 보낸 메모랜덤이 공개되어 있 다. 이문건에서 번디는 '주한미군과 한국군의 감축에 대해서 정치-군사 적인 계획서를 만들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에 우리의 감군계획을 전달 하고 한일 국교정상화 조약의 체결을 위한 외교적인 입장을 정리하는 데 있어서 논리 개발이 필요하다'고 했다.
번디는 '존슨 대통령이 이 문제 에 대해서 행동을취하기를 바란다'면서 '이런 감군과 원조감축이 한국에 미칠 충격파를 감안하여 신중을 기하라'고 권고했다. 이 문맥으로 미루 어 당시 미국 정부는 한일 국교정상화로 일본의 자본이 한국에 많이 들 어오는 것을 이용하여 한국에 대한 군사-경제적 부담을 줄이고싶어 했던 것으로 보인다.
1994년 이른 봄 주미대사 김정렬에게 박대통령으로부터 밀서가 내려 왔다. 그 요지는 이러했다('김정렬 회고록'에서 인용).
<월남 사정을 잘 아는 최덕신 주독대사를 귀지에 보낼터이니 소기에 월남에 관계하는 사람들과 접촉시켜 월남의 중요성을 역설케 하도록 알 선하시오.>.
당시 월남은 전해에 있었던 고 딘 디엠 정권 축출 쿠데타이후 연속되 는 군부 쿠데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다. 이 틈을 타고 반정부 시위 와 공산 게릴라 베트콩의 파괴 활동이 격화되고 있었다. 이때만 해도 미 국정부는 군사고문단 정도만 파견해 놓은 채 본격적인 전투병력 투입 여 부를 아직 결정하지 않고 있었다. 며칠 뒤 최덕신 대사가 워싱턴에 왔다. 나중에 북한으로 넘어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최 대사는 김정렬에게 박 대통령의 특명을 구두로 전했다.
'미국 정부 요인들에게 월남 방어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미국이 적극 적으로 월남에 개입한다면 한국군을 파견하겠다고 제의하라.'.
최덕신 대사가 전하는 박대통령의 파병 제안 배경은 이러했다.
첫째, 월남이 공산화되면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인도차이나 반도 전체의 공산화에 이어 타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 전체에도 그영향이 확산될 것이고 필리핀을 거쳐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게 될 것이 다. 공산주의자의 세력확산을 월남에서 저지해야 한다.
둘째, 미국은 지금 주한미군을 빼내가서 월남에 투입하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우리가 선수를 쳐서 한국군 몇 개사단을 월남에 파견하는 대신 미군을 붙들어두어야 한다.
김정렬 대사는 최덕신 대사를 데리고 먼저 미 국무부 아시아 담당 차 관보 윌리엄 번디를 찾아갔다. 박정희의 지시대로 월남 방어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윌리엄 번디의 동생이 바로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인 맥조지 번디였다. 월남문제는 그 밑에 있는 포레스탈이라는 사람이 맡고 있었다. 김대사는 번디 차관보에게 부탁하여 동생을 통해 포레스탈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최덕신 대사는 월남대사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주장을 폈다. 이런 설득활동을 약 일주일간 벌인 뒤 최대사는 서독으로 돌아갔다. 한 달 뒤 미국 국무부로부터 김정렬대사에게 통보가 왔다.
'한번 기다려봅시다.'.
김대사로서는 다소 실망스런 답이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