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당은 1월 14일 오노 부총재, 마에오 간사장, 후지야마 총무회장, 미키정조 회장이 참석한 최고간부회의를 열고 오는 5월 17일로 끝나는 국회회기를 연장해서라도 한일협정을 비준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되었다. 한일국교정상화 회담에서 가장 큰 쟁점이었던, 평화선을 대채할 어업전관수역 및 공동규제수역 획정문제는 1964년 2월 18일에 도쿄에서 열린 한일어업고위실무자회담에서 대 마도 주변수역의 획정을 합의함으로써 한 고비를 넘기고 제주도 주변 수역만 남겨놓게 되었다.
이즈음 공화당의 정치초년생들 사이에선 처음 맛보는 대중의회 정치의 실상에 실망하는 이른바 `국회불신자들'이 생기고 있었다.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출신 공화당 전국구 의원 이만섭(현 국민회의 총재권한 대행)도 이렇게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국회의 기능을 1,2년간 정지하고 정부로 하여금 경제건설을 다 하도록해야 해요. 후진국에서 의회는 부담이 되는 면이 없지 않아 요. 국회에서 일하는 게 있습니까. 일은 행정부에서 하는 거지요. 밤낮 야당은 반대만하고 싸움만 하려 하니 아예 공화당은 정권을 민정당에게 넘겨주자고 하고싶어요.'.
이에 대해 민주당 대변인 김대중(현 대통령)의원은 '그나마 국 회가 있기때문에 군정 때처럼 정부가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반박했다. 이 두 의원은 35년이 흐른 이제는 집권당의 총재와 권한대행으로서 국정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다. 두 사람은, 지금의 의회정치가 그 당시와 비교해서 얼마나 생산적으로 발전했는지, 또 우리 사회 다른 분야의 35년간 발전과 비교하면 그 발전 정도가 어 떠한지를 알 수 있는 처지에 있다고나까.
1964년 2월에 들어서면 야당은 한일회담 반대와 삼분폭리의혹 제기로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다. `제2의 이완용' `매국노' `평화선 사수'`매판기업에 의한 서민 착취'란 정치적 구호를 앞세운 야당의 공세는 사회적 통념을 선점함으로써 한 달 뒤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게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는 구세대가 지배하는 신세 대인 학생이 손을 잡게 만들어 장년층이 주류를 이루는 박정희 정 권을 포위하게 되는 것이다. 삼분 폭리란 1963년의 물자부족 및 물가 상승기에 삼성 그룹 계 역(총수이병철)의 제일제당, 동아그룹 계열(총수 이한원)의 대한제 분, 개풍 그룹계열(총수 이정림)의 대한양회 등 여러 기업들이 설 탕, 밀가루, 시멘트 등세 가지 가루(분)물자의 값을 유통과정에서 조작하여 수십억 원대의 폭리를 취했다는 의혹을 가리킨 말이다.
민정당과 민주당은 국회에 의한 삼분폭리 국정감사 결의안을 제 출했고 공화당은 이를 저지했다. 2월 12일 김대중 의원은 삼성그 룹에 대한 의혹을 폭로했다.
`삼성은 모방직 설탕 등 소비재만 생산하여 외국자본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매판성을 띠고 있다. 아이스크림, 빵, 비누, 케러 멜 등 영세기업의 분야까지 진출하여 사회안정세력인 중산층을 몰 락시키고 있다. 거액의 외화를 외국에 도피시켰다는 증거가 있다.'.
삼분폭리 사건을 계기로 야당과 언론의 집중적인 비판이 제기되 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재벌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었다. 여론이 재 벌을 외국자본을 위하여 봉사하는 매판적인 기업으로 몰아세움으로 써 민족주의적인 열정이 강한 학생층을 흥분시켰다. 2월은 3월의 대폭발을 예비하는 인화물질이 뿌려진 시기이기로 했다.
이즈음 일어난 또 다른 자극적인 사건으로는 미군보초병들에 의 한 총격사건이 있었다. 전해 12월부터 2월 17일 사이에 전국의 미 군 주둔지역에서 일어난 총격사건은 19건이있다. 1962년과 63년에 미군의 총격으로 피살된 한국인은 13명이었다. 하우즈 미8군 사령 관은 `한달에 도난당하는 물자가 7만 달러어치나 달하기 때문에 보 초병들이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접근자들에게 어쩔 수 없이 총기를 사용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경기도 경찰국에 따르면 미군 부대 도난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 하는 곳은 파주군. 인구 16만여 명 가운데 위안부만 약3,500명이고 전과자만 약1천명이 득실대고 있으며 6만3천여 명은 직업없는 사회 부동층 실업자라는 것이다. 파주군내에서 1963년 한 해동안 발생한 미군 부대 도난 사건은 512건. 이곳에서는 1963년1월 이후 12건의 미군보초병 총격사건이 일어나 한국인 10명이 중상, 2명이 사망했 다.
이런 내용을 전하는 조선일보 2월21일자 사회면에는 김재원이 쓴 `돌려다오 빼앗긴 우정을…총을 쏜 미군병사에게'란 제목의 시 가 실려있었다.
<총을 쏜 것은 미합중국이 아니지만 그들이 쏘아서 쓰러뜨린 것, 그것은 우리의 조국 코리어다. 가난한 나라의 자존심이다. 그리고 없는게 많은 어머니의 손등 트는 흘러간 세월들이다.>.
이 시 바로 곁 기사는 `이웃에 폐 끼치기 싫어 일가족 집단자살 기도,세 모자 연탄 가스 피워' `잠자던 4명 소사, 제기동 판잣집서 촛불 넘어져'란 제목을 달고 있었다. 박정희나 김재원 시인이나 조국의 현실을 개탄하는 면에선 같았으나 갈 길은 달랐다. 시정과 시 상이 없는 사람도아닌 박정희는 `이런 국민들을 먹여살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국정목표란 없다'는 생각으로써 감상과 명분론을 억누르고 있었을 뿐이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