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  조선일보  |  독립신문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라이트뉴스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기사 확대  기사 축소  

내부 균열
 내부 균열
 
 야당과 학생들이 박정희 정권을 향하여 전국적인 시위로 대공세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공화당 의원 약 스무 명이 야당편을 들어 엄민영 내무장관 해임결의안에 동조한 것은 박정희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정 상적인 나라의 정부나 정당은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직면하면 내부가 단결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나라는 국가에 위기가 닥쳐오면 내부가 분열됨으로써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는 '이상한 현상'을 자주 보 였다. 임진왜란을 앞둔 동인 서인의 분열, 병자호란 전후의 척화파와 주화파의 분열, 개화기 때의 개화파와 위정척사파의 분열, 지난 대선 기간중의 한나라당 분열 등등.
 
 이런 현상은 사대주의에 물들어 자주국방을 포기함으로써 외부에 서 주적을 찾지 못하자 내부에서 적을 찾아 치열한 권력투쟁을 계속 해온 조선조 정치의 체질과 무관하지 않다. 정치인의 제1조건은 정확 한 피아구분과 주적개념인데 우리 정치는 오늘날까지도 '중요한 것은 간과하고 사소한 데 목숨을 걸고 싸우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무력 대치의 분단상황에서 여야 공동의 주적은 북한정권인데도 여당은 야 당을, 야당은 여당을 주적으로 삼고 있으니 정치의 제1주제가 되어야 할 안보와 경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상대방의 약점잡기 경쟁과 폭로와 모략이 판을 치는 정치의 저질화가 악순환되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정권이 야당·재야·학생의 연합세력으로부터 도 전을 받아 위기에 처했는데도 공화당 내부가 단결하기는커녕 또 다시 김종필과 반김종필 세력으로 갈려 갈등조짐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하여 개탄하고 있었다. 그로서는 1년 전 민정이양 기간중에 있었던 최고회 의의 내부분열과 이로 인한 방황과 번민이 악몽처럼 떠올랐을 것이다.
 
 1년전 혁명주체의 내부 분열을 촉발시킨 것도 야권이 4대 의혹사 건을 들고나와 공세를 취한 때문이었다. 다만 1년 전에 비해 박정희 에게 유리한 점 하나는 1년 전에 야당편을 들었던 미국 정부가 이번 에는 한일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박정권을 지지하고 야당을 견제 하게 된 일이었다.
 
 1964년 3월29일 밤 공화당 간부들은 김종필 의장 집에서 대책회의 를 열었다. 김의장이 한일회담에서 손을 떼고 당무에 전념하기로 하 는 한편 국민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계몽선전 활동을 전개하기로 의견 을 모았다. 이 자리에서 공화당 간부들은 야당이 정부-여당을 저자세 라고 비난한 데 대하여 울분을 터뜨렸다. 국회시찰단의 일원으로 일 본을 다녀온 권오훈 농림위원장은 '우리가 자민당 부총재 오노반보쿠 씨를 방문했더니 그는 치료중인 몸인데도 무릎을 꿇고 앉아 시종 겸 손하게 응대했다'고 말했다. 김종필도 '이런 말을 해선 안되는 것이 지만…'하면서 털어놓았다.
 
 '자민당 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가 전선에서 피를 흘리며 싸울 때 당신네들은 군수경기로 연간 10억불을 벌지 않았는가. 한국 한테 6억불이 아니라 60억불을 준다 해도 아까울 게 없는 것이 아닌 가. 당신들이 성의를 보이지 않으니 한국에서 학생들이 일어나 우리 를 격려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따졌어요. 그랬더니 마에오 간사장과 스즈키 부간사장이 자세를 고쳐 무릎을 꿇고 앉아 '참으로 미안하게 되었다'고 사죄합디다.'.
 
 옆에서 듣고 있던 길재호 국회내무위원장은 '김의장, 한일교섭이 타결될 때까지 평화선을 침범하는 일본어선을 철저히 잡읍시다'라고 말했다.
 
 박대통령은 3월30일 오후엔 서울시내 종합대학 대표 학생 11명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약 2시간동안 한일회담의 진행상황에 대해서 설명 하고 질문을 받았다. 박대통령은 '외교상의 기밀과 전략문제까지도 자세히 밝혀가면서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이해를 요청했다'고 이후 락 비서실장 겸 대변인이 전했다. 학생들은 그러나 '평화선은 우리 영해인데 왜 양보하는가' '김종필 - 오히라 메모를 공개하라'고 요구 하면서 굽히지 않았다. 박대통령은 '내일 정일영 외무차관이 학생들 을 만나 더 자세히 설명해주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즈음 계절은 이른바 '잔인한 춘궁기'였다. 귀족집안 출신 윤보 선 - 부자집안 출신 김영삼으로 상징되는 민정당이 대안없이 한일회 담 전면 거부투쟁을 벌이고 있는 사이 조국의 산야는 이 보리고개에 굶어죽지 않기 위해 칡뿌리를 캐러 나서는 사람들로 몸살을 앓고 있 었다. 조선일보 춘성군 주재 기자가 전해온 소식은 '그나마 야산의 칡뿌리는 모두 캐어먹고 없어 3,40리를 걸어 심산으로 들어가야 구할 수 있다'고 했다. '한 지게의 칡뿌리를 캐와 나흘려서 가루로 만들면 서너되를 얻을 수 있다. 이것으로 떡도 만들 수 있으련만 가루를 아 껴 먹는다고 죽으로 연명한다'는 것이었다.
 
 1964년 4월4일 미8군 사령관 하우즈 대장은 박정희 대통령과 김성 은 국방장관을 방문, 요담했다. 하우즈가 '한일회담은 계속될 것인가' 라고 묻자 김장관은 이렇게 말했다(4월5일 하우즈가 미 합참에 보고 한 전문).
 
 '회담의 속도는 다소 늦추어질 것이다. 이 기간에 정부는 홍보를 강화할 계획이다. 지금 외무부에서 사람이 와서 국방부 간부들에게 한일 국교정상화의 잇점을 설명해주고 있다.
 
 한국군의 모든 참모들과 일반인들에게도 이런 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번 폭동은 한일회담 에 대한 반대일 뿐 아니라 김종필에 대한 반대이기도 하다. 많은 국 민들은 김종필이 너무 일본과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다. 야당에서는 김종필이 일본으로부터 많은 돈을 미리 받아 지난 선거 때 썼기 때문 에 정부는 김종필을 비호해주기 위해 회담을 서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기사목록  프린트하기 

조선일보 | 스포츠조선 | 주간조선 | 소년조선 | 여성조선 | NK조선 | IT조선 | 잡지DB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1가 163 광화문 오피시아 1729호  |  대표자 : 조갑제  |  사업자등록번호 : 101-09-63091
상호 : 조갑제닷컴  |  개인정보관리 책임자 : 김동현  |  전화번호 : 02-722-9411~3  |  팩시밀리 : 02-722-9414 |
    개인정보취급방침

발행인 : 조갑제 | 편집인 : 조갑제 | 등록번호 : 서울아00945 | 등록일 : 2009/08/24 | 국민은행 360101-04-065553(예금주: 조갑제닷컴)
webmaster@chogabj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