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하라면 하라지
1964년 3월11일 밤 박정희 대통령 부부는 출입기자들을 식당 으로 초청하여 저녁을 대접했다. 보리 섞인 밥에 정종이 반주로 나왔다. 비보도를 전제로 한 이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자신의 울 적한 심경과 야망을 솔직하게 또는 심각하게 털어놓았다.
'남의 나라에 비교해도 못살 여건이 아닌데 이다지도 가난한 걸 생각하면 어떤 때는 통곡하고 싶어요. 별 수 없습니다. 허리 띠 졸라매고 대규모 증산운동을 벌려야지. 이미 야전군 장병들 은 500만군데의 호박구덩이를 파놓고 있어요. 400대가 넘는 군 장비도 증산운동에 동원하려고 준비해놓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현안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하기 시작하자 대통령은 일어서면서 '자, 이제 머리나 식히지. 우리 같이 영화나 봅시다' 라고 했다.
김종필 공화당 의장은 이튿날 대만, 월남, 일본 방문 길에 올랐다. 그는 김포 공항에서 '한국, 월남, 대만은 모두 국토가 분단된 공통점이 있고 중국의 지위가 올라가면서 영향을 받고 있다. 우리 3국은 서로 유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의장을 수행한 사람들 가운데는 이만섭 의원(현 국민회의 권한 대행)도 포함되어 있었다. 약 1년 전 김의장이 '자의반 타의반)' 의 외유길에 올랐을 때의 쓸쓸했던 환송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었다. 장관들, 군장성들, 국회간부들, 그리고 기자들로 공항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김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이유는 마침 그곳을 방문할 예정인 기시 노부스케 전 일본수상 및 이시이 미츠지로 자민당 의원을 만나 대만과 일본의 대화를 중개하고 동북아 반공체제에 일본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설득하면서 동시에 한일회담에 대한 측 면교섭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만-일본 관계가 악화되어 기시 일행의 방문이 최소되었다. 대만의 외무장관은 일본이 중 국에 군수물자를 수출하고 있는 것은 '이적행위이며 비우호적인 행위'라고 비난하면서 '일본의 공업화와 생산증대는 중국과 일 본 사이에 자유중국과 한국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김종필 의장은 장개석 총통에게 '올해도 급할 때 우리가 요 청하면 쌀을 수출해달라'고 부탁하여 협조를 약속받았다. 장총 통은 김의장을 수행한 한국기자들에게 '군자지교는 담여수'라고 한마디했다.
윤보선의 민정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과 재야세력의 연합체 대일 굴욕외교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는 3월15일부터 전국적으로 한일회담 저지 연설회를 열기 시작했다. 윤보선은 약 3만명이 모인 부산 유세에서 '현 정부는 3억불을 받고 나라를 일본에 팔 아넘기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대통령은 16일 제주도를 시찰 한 자리에서 기자들의 서면 질의에 답하면서 '동북아 반공 국가 의 유대강화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며 한일회담을 소신 대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윤보선 세력이 '민 의를 대표하는 국회에서 정정당당하게 정치를 논하지 않고 가두 로 나서서 투쟁한다는 것은 사회혼란을 조성하는 것이다'고 비 판했다. 지방유세중이던 윤보선은 19일 대구에서 기자회견을 갖 고 '한일협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나는 의원직을 사퇴하고 목 숨을 걸고 구국투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3월21일 야당과 여당은 서울과 부산에서 대통령 선거 유세를 방불케 하는 대중집회를 열고 한일회담에 대한 찬반 유세전을 벌였다. 민정당 중심의 굴욕외교반대투쟁위원회가 주최한 서울 유세는 서울고등학교 교정에서 열렸는데 약 3만명의 군중이 모 였다. 윤보선은 '악질선거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군정때의 무한 정치로 국고가 탕진되자 평화선을 일본에 팔려고 내놓았다' 고 비난했고 조영규(자민당)는 '박정권의 외교는 오징어 외교 다. 오징어 뱃속처럼 검게 비밀흥정을 하고 있다가 앞에서 뭔가 닥치면 먹을 뿌리고 달아난다'고 주장했다.
3월23일 김종필 공화당 의장은 오히라 일본외무장관과 요담 했다. 두 사람은 3월말까지 어업회담을 종결짓고 4월초에 외무 장관회담을 열어 모든 현안을 일괄 타결한 다음 4월말까지 조약 초안을 작성하고 5월초에 한일협정에 조인한다는 일정에 합의했 다.
3월24일 서울시내에서는 4·19혁명 이후 가장 큰 학생시위가 벌어졌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와 대광고교 학생들 수천명이 한일회담 반대시위를 벌이는 동안 일부 시민들도 가세했고 야당 과 재야세력이 이를 응원했다. 경찰이 곤봉과 최루탄으로 진압 하는 과정에서 250여명의 부상자가 생기고 283명이 경찰에 연행 되었다.
박대통령은 3월24일 경북지방을 시찰하고 숙소인 대구관광호 텔에 돌아와서야 엄민영 내무장관의 전화보고를 통해서 서울에 서 벌어진 학생시위를 알게 되었다. 호텔 2층에 마련된 지방유 지들 초청 칵테일 파티장에 들어와서도 박정희는 굳은 표정을 풀지 않고 무엇인가 골똘한 생각에 빠지는 모습이었다. 수행기 자들이 다가가서 '서울에선 야당의원들이 사퇴결의까지 했다는 데요?'라고 물었다. 이후락 비서실장이 재빨리 대통령 곁으로 다가와서 '각하, 말씀 안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식사시간이 되 었는데요'라면서 대통령을 식당으로 모시려고 했다. 박대통령은 묵묵부답으로 걸어가다가 몸을 돌려 기자들에게 물었다.
'그래서? 끝까지 말해보시오.' '야당의원들의 사퇴결의에 대해서 한 말씀해주셔야겠습니다.' '사퇴하려면 하라지!'.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