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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有感
 언론 유감
 
 1964년 4월 10일 야당이 제출한 김유택 경제기획원 장관과 원용석 농 림부 장관에 대한 해임결의안 표결에서 공화당 의원 20여명이 또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이 야당에 동조해도 해임결의에 필요한 재적과반수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공화당내 반김종필 세력의 파괴력을 입증하기엔 충분했 다.
 
 며칠뒤 공화당의 원내총무단과 상임위원장들은 워커 힐에서 회의를 열고 수습책을 논의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예춘호 부총무의 팔을 잡아당기는 사람이 있었다. 국회 재경위원장 김성곤 의원이었다. 옆방에 들어간 예춘호 의원에게 김성곤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예춘호 증언).
 
 '여보, 예 의원. 나하고 협력해서 일 좀 합시다. 그간 당신을 지켜보 고 있었는데 마음이 맞을 것 같소.'
 
 김종필에 의해 발탁되어 공화당 사전 조직 단계에서부터 참여했던 예춘호는 웃어보이면서 '무엇을 같이 한단 말이오'라고 했다. 김성곤도 호탕하게 웃으면서 받았다.
 
 '집단생활에서는 언제나 뜻 맞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오. 술도 마시 고 자주 어울리다가 보면 함께 할 일도 있을 것 아니오.'.
 
 '김 의원, 방금 우리는 당명에 불복한 20여명 때문에 심각한 회의를 했고 당 수뇌부가 하나같이 단합을 강조하고 있는 판에 우리끼리 작당을 한단 말입니까?' '예 의원은 젊어서 그렇지마는 차차 알게 될 거요. 나이 먹은 사람 말 참고를 하소.'.
 
 김성곤은 이때 공화당내 반김종필 세력의 리더가 되고 있었다. 그는 구정치인과 경북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하여 파벌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예춘호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김성곤의 사람됨됨이나 폭, 그리고 깊이 가 심상치 않은 존재임을 절감하게 되었다'고 했다.
 
 군정시대에는 김성곤과 김종필의 관계는 좋았다. 김종필 정보부장은 김성곤의 사상적 전력에 따른 문제를 덮어주었다. 김성곤은 김 부장이 맨처음 박정희 의장의 특사로 도일할 때 동행하여 측면에서 지원하기도 했다. 둘은 공화당이란 같은 배를 탄 뒤로는 야망이 큰 만큼사이도 벌어 졌다. 공화당내에서 김성곤이 독자세력을 형성함으로써 여권은 갈등을 겪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김 의원이 대통령에 대해 변함없는 충성을 다짐하는 한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김성곤이 언제 까지 박정희의 품 속에서 안주하고 있느냐였다.
 
 박 대통령은 4월 14일 밤 진해 별장으로 김종필 의장을 불렀다. 김 의장은 예춘호 부총무를 데리고 갔다. 박 대통령은 엄민영 내무장관을 합석시킨 가운데 시국 수습책을 논의했다. 이어서 김 의장과 두 시간 동 안요담했다.
 
 다음날 박 대통령은 특별성명을 통해서 국정쇄신책을 발표했다. 중앙 정보부의 기구를 축소하여 지방의 지부를 없애고 본부기구도 국가안전보 장회의 산하에 두며 남게 되는 예산은 증산을 위해 전용키로 한다, 공화 당도 당기구를 축소하되 지구당 위원장은 국회의원이어야 하며 원내중심 으로 운영한다, 과감한 행정개혁으로 기구의 간소화와 능률화를 기한다 등등.
 
 이날 국회특별조사위원회는 박정희 정권이 일본으로부터 1억3000만달 러의 자금을 받아 선거에 썼다고 주장한 김준연(자민당) 의원을 불러조 사했다. 김 의원은 '장택상(자유당 시대 국무총리)씨로부터 그런 정보를 들었다'고 했다. 장씨는 이에 대해 '그런 풍설의 진가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 것일 뿐 단정을 한 것도,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고 했 다.
 
 김준연의 거짓말을 대서특필했던 어느 신문도 그를 제대로 비판하지 않았다. 박정희는 우리 언론을 '정부에는 가혹하고 야당과 학생에게는 아부하는 존재'로 보기 시작한다.
 
 야당은 김준연 의원에 대한 구속동의안에 대해서도 단상점거로 표결 을 못하게 했고, 언론은 일제히 정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4·19의거 4주 년 기념일을 계기로 하여 대학생들은 다시 거리로 나왔고, 언론과 야당 의 일방적인 정부 비판은 가열되었다.
 
 4월 22일 박 대통령은 최두선 총리에게 내린 훈령에서 '민주질서를 파괴하는 학생들의 불법 데모를 막지 못한 학교 당국자는 책임을 져야할 것이며 정부는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에 대해서도 책임을 추궁해야 하며 이는 정부에 부하된 임무임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김 영삼 민정당 대변인은 '여러 가지 면으로 독재체제를 강화해온 정부는 국민들의 정당한 의사표시를 억압하지 말라'고 반박했다.
 
 서울대 문리대 강사 지명관은 조선일보 1면에 기고한 '가두로 끌어낸 건 누구인가'란 제하의 기고문에서 학생들의 시위를 옹호하고'학교당국 이나 교수단이 할 수 있는 일은 학생들과 함께 오늘 이 나라의 실정과 부패를 우려하는 것이다'고 했다.
 
 문제는 당시의 박정희 정권은 독재정권이 아니라 '공정한 선거'를 통 해서 구성된 '국민의 정부'였다는 점이다. 이런 합법적인 정부의 외교정 책에 반대한 대학생들의 불법-폭력 시위에 대해서 대다수 지식인, 언론, 야당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준인 법치의 원칙을 부인하고 '애국심' '정의감' '독재에 대한 저항'이란 다른 기준을 가지고 나와 시위를 옹호 하고 박정희 정부에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그동안 박정희 정부의 비민 주적인 처사는 수도 없이 지적되었지만 반대자들의 이런 비법치적인 사 고방식은 제대로 비판된 적이 한번도 없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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