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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과 학생
 군인과 학생
 
 '박정희 정권이 일본으로부터 1억3천만 달러를 받아 선거에 썼다'는 엉터리 폭로로 검찰에 구속되었다가 풀려난 김준연 의원(자민당)은 5월 14일 국회조사특위에 참고인으로 나가 이번엔 '간첩 황태성이 사형되지 않고 오키나와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종교계의 모 인사로부터 들었다' 고 말했다. 물론 이 주장도 사실무근이었지만 약자와 반대자에 의한 선동과 조작은 면책되는 분위기 속에서 김의원의 거짓말은 묻혀넘어갔다. 박대통령은 5월15일 5·16군사혁명 3주년 기념 메시지를 발표, 솔직 하게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그러나 개혁과 재건의 도정에는 난마와 같이 얽힌 허다한 제약이 따랐고 불가항력적이며 파생적인 모든 애로가 겹쳐 혁명의 본지와 과업 은 불가피한 차질을 면치 못했던 것입니다. 혁명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서 국민 여러분과 더불어 실로 통분의 심회를 금할 길 없고 자신자괴의 염을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5월16일 오후 서울 교동국민학교 교정에서는 야당이 주최한 '5·16 군사혁명 비판 시국강연회'가 열렸다. 약2만 명의 군중이 모인 이날 연 사로 나온 송원영 정일형 김대중 조재천 조영규는 '5·16은 총칼로 합 헌정부를 전복시킨 민주역행'이었다고 공격했다. 구국의 결단으로 통했 던 5·16의 정통성도 도전받기 시작한 것이다.
 
 5월20일 서울시내 9개 대학 학생들과 약3천명의 시민들은 서울문리 과대학 마당에서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및 성토대회'를 열었다. 이 들은 관을 메고 시내로 나와 최루탄을 쏘는 경찰과 맞서 돌을 던졌다. 이 시위는 박정희와 군인들의 감정을 건드렸다. 학생들이 읽은 조사,선 언문, 결의문은 '야당 정치인들로부터도 들어 보지 못한 격렬한 문투' 였다. 윤천주문교부장관은 '이들은 학생이 아니라 학생정치인으로서의 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규정했다.
 
 다음날 새벽 황길수 대위가 지휘하는 일단의 공수부대원들이 총기를 휴대한 채 서울형사지법 청사와 양헌판사 집을 찾아가 시위학생들에 대 한 구속영장 기각에 항의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신문들은 '무장군인 10 여 명, 법원에 난입, 압력. 숙직실 점거'식의 제목으로 크게 보도했다. 폭력이나 폭언의 행사는 없었고 '난입' '점거'란 표현도 과장된 것으로 밝혀졌으나 정부와 군은 다시 한번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정일권 총리 주재로 열린 안보관계 장관 및 군수뇌부 회의에서는 군 인들의 행동에 대한 동정론이 우세했다. 그들은 군인들의 행동이 '5·16 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려는 학생 및 시민들에 대한 반발이고 국가원수를 모독한 학생들의 행동은 야당의원들이 선동한 것이란 증거를 갖고 있다' 고보는 견해였다고 노석찬공보부 차관이 전했다.
 
 민정당은 당무회의를 열고 박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논의했다. 김영 삼 대변인은 '살인적인 민생고, 살인적인 물가고, 온갖 부정 및 의혹사 건, 학원안에서 최루탄을 발사한 사건, 군인들이 법원과 판사집에 들어 가 영장발부를 강요한 사건의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에 탄핵을 제소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고 했다.
 
 5월22일 국회에서 김성은 국방장관은 언론의 과장보도를 비판했다. '공수단 황길수 대위는 그날 근무를 마치고 사병 11명과 학생데모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고 격분한 나머지 새벽에 대기중이던 앰뷸랜스 편 으로,또 근무복장 그대로 법원과 판사집에 갔다. 사직당국의 미온적인 태도에 대해 항의하고 엄중조치를 취해줄 것을 호소하려고 한 것뿐인 데 마침 법원에서 취재중이던 기자들이 이 사건을 어마어마하게 보도 한 것이다. 군인들에 대해서는 진상이 드러나는대로 군법에 의해 다스 리겠다.'.
 
 이 일로 황길수 대위 등 8명이 구속되는데 황대위는 군 영창에서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데모를 막다가 눈을 다친 우영길 경위는 나의 전우이다. 경관이 무슨 죄가 있는가. 양헌 판사에게는 나쁜 짓 한 놈은 구속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지 않아야 한다면서 공정하게 처리해달라고 한 것뿐이다. 총기를 휴대한 것은 근무를 막 끝난 직후이기 때문이다. 군 인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관청에 가서 진정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한 민족끼리 헐뜯고 불안이 계속되면 가난을 면할 길이 없다.'.
 
 공수단이 법원과 판사집에 들어간 그날 중앙정보부원 3명이 수배중 이던 서울문리대 학생 송철원을 남산의 외딴 집으로 데리고 가 '김중 태(문리대 시위 지휘자)가 어디 있느냐'고 추궁하면서 구타한 뒤 돌려 보내는 사건이 생겼다. 송군은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때 조사를 읽은 학생이었다. 검찰은 열흘 뒤 세 정보부원을 구속했다. 검찰에 자 진출두한 이들은 '직무수행에서 온 실수일 뿐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 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시위학생들이나 체제수호에 나선 군인·정 보부 요원들이나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갖고 행동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사태가 학생들과 군인들의 대결로 치닫는 모습을 보이자 야당 안에 서도 신중론이 제기되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것은 김영삼 민정당대변 인이 박대통령에 대한 탄핵제소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등 가장 강경한 태도를 보인 반면 김대중(민주당)의원은 온건론을 보였다는 점이다.김 대중은 '정치인들이 학생 데모에 기대를 걸 때 그것은 국회의 책임 포 기이며 정치인의 타락이다'고 말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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