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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비정
 권력의 비정
 
 정일권은 박정희로부터 총리직을 제의받자 이렇게 말했다.
 
 '영광입니다. 그러나 저 역시 최총리와 마찬가지로 공화당 하고는 남 아니겠습니까. 혁명에 참여한 것도 아니고, 민정이양 과정에서도 힘쓴 일하나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군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제가 내각을 맡게되면 또 군출신끼지 야합한다는 오해를 살 것 같습니다'.
 
 '그 점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정형의 경우는 조금도 하자 될 것이 없더군요. 당과의 문제는 차차 입당하시면 되는 것이고 민정이 양에 앞서 케네디를 설득하여 군사정권을 지키게 한 공로자가 누구입니 까? 6·25 때의 일등공신은 또 누구입니까? 5·16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서 하자 될 것은 조금도 없습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바로 어제 당 간부 몇 사람을 불러서 정형 이야기를 했더니 모두 찬성이더군요'.
 
 정일권이 총리직을 승락하자 박대통령은 '사족 같지만 정형을 위해 드리는 말씀이니 불쾌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박정희는 세 가지를 당부했다.
 
 <주요 지휘관 출신의 예비역 장성들과 자주 만나거나 회합이 잦아지 면 엉뚱한 방향으로 의심받게 되니 될 수 있는 대로 접촉하지 말 것. 재 벌· 경제계 인사들을 가까이 하면 정치자금을 모은다고 의심받게 되니 이분야에 대해서는 부총리에게 일임하고 될 수 있는대로 관계하지 말 것. 정형이 함경도 출신이라 이북 사람들이 여러 경로로 접근해올 것인데 자 주만나게 되면 이북출신들을 규합하여 세를 몰게 된다는 오해를 받기 쉬 우니 신중을 기해주기 바람>.
 
 정일권은 이런 말을 듣고 불쾌해졌으나 이 충고를 고맙게 받아들이기 로 했다고 한다. 박대통령은 이런 말을 보탰다.
 
 '두고 보시면 내가 왜 이같은 말을 했는지 차차 아시게 될 것입니다. 정계의 생리는 비정합니다. 군사정권 이래 세월은 길지 않았으나 숱한 동지들이 서로 물고 뜯는 것을 수 없이 보아왔기 때문에 정형이 앞으로 중상모략을 당할 것은 너무나 뻔합니다. 내 귀에 그 중상이 들어왔을 때 한두 번은 귀로 흘릴 수 있으나 세 번 네 번 반복되면 나 자신의 판단이 흐려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해서 중상의 소지를 미리 막기 위해 이것 만은 지켜주십사 하는 뜻에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박정희는 정일권과 함께 개각 인사를 논의했다. 정일권은 자신의 의 견을 내지 않았다. 박대통령은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에 장기영 한 국일보 사주, 농리부장관에 차균희(전 경제기획원 부원장),상공부 장관 에 박충훈(전 상공장관)을 밀었다. 정일권은 외무장관에 손원일 전 국방 장관을 추천하여 직접 찾아가서 교섭을 벌였으나 신병중이었다. 당분간 총리가 외무장관을 겸직하게 되었다.
 
 5월11일 박정희 대통령은 10명의 총리 및 장관을 바꾸는 개각을 단행 했다. 이들 10명은 정일권, 장기영, 박충훈, 차균희 외에 양찬우(전 내 무차관)내무장관, 윤천주 문교장관(전 공화당 사무총장),전예용(전 한은 총재)건설부 장관, 오원선(전 원자력원장)보사장관, 이수영(전 유엔대사) 공보장관, 김병삼(전 내각 사무처장)원호처장이었다. 10명의 신임장관 가운데 전예용 장관이 50대, 양찬우 장관이 30대인 것을 제외하고는 모 두가 40대였다.
 
 추진력이 있고 젊어진 정일권 내각에 대해 신문은 일제히 '돌격내각' 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학생들의 시위와 야당의 공세에 기가 꺾였던 최두선내각을 대신한 정일권 내각은 경제개발의 정력적인 추진과 한일국 교정상화 협상의 빠른 마무리를 다짐했다. 박대통령은 11일 중앙청에서 첫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간단명료한 지침을 시달했다.
 
 <행정의 공백이 없도록 할 것, 경제안정에 전력을 집중할 것, 박력 있는 행정을 할 것, 총리 중심으로 연대책임을 갖고 단합해서 일할 것, 경제부처는 부총리를 중심으로 연대책임을 지고 일할 것, 일하는 정부가 될 것, 행정의 일관성을 유지할 것.>.
 
 박대통령의 이 내각 인사는 성공작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비로소 '소신대로 일하는 능률적인 행정기구'를 갖게 된 것이다. 원만한 정일권 과 저돌적인 장기영, 그리고 냉철한 이석제(당시 총무처 장관)가 중심이 된 이 40대 젊은 내각은 밖으로는 야당·언론·학생들의 도전을 극복하고 안으로는 공무원 사회에 꿈과 보람을 심어주는 데 성공한다.
 
 공무원 집단이 국가주도의 근대화 작업에 견인차로 등장하고 기업인 과 국민들이 이에 호응함으로써 개인의 의욕과 국가의 목표가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길이고 나라가 잘 되 어야 내가잘 된다'는 이해관계의 일치 속에서 국가와 국민이 한 덩어리가 되는 국민국가 건설, 즉 조국 근대화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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