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권에 총리 제의
임시 국회 회기가 끝난 뒤인 1964년 4월25일 서울지검은 자민당 김 준연 의원을 명예훼손, 무고 등 혐의로 구속, 서울교도소에 수감했다. 이날 박대통령은 친 김종필계인 김용태 공화당 원내총무를 김성진의원 으로 교체했다. 김종필 의장은 김용태의 유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하다가 교체가 불가피해지자 육사8기 동기인 김동환의원을 후임총무로 추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날 오전 공화당 소속 장경순 국회부 의장은 군 후배인 김종필 의장을 찾아갔다. 그는 '이 난국을 수습하려 면 당신이 공직에서 물러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후에 는 박대통령을 찾아가 꼭 같은 건의를 했다.
이날 오후 늦게 김종필 의장도 청와대로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왔 다. 심각한 표정의 그는 의장직에서 물러나고싶다는 뜻을 대통령에게 전한뒤 '저녁이나 먹고 가지'라고 붙드는 박정희의 청도 뿌리치고 청 와대를 나섰다. 대통령은 홍종철 경호실장에게 김의장을 데리고 오라 고 지시했다. 김종필은 홍실장의 만류도 듣지 않고 돌아갔다. 다음날 김의장이 사의를 전달했다는 소식이 부산일보에 특종으로 보도되었다.
장경순은 27일에도 청와대를 방문했다가 온양으로 떠나는 박정희와 함께차를 타고 서울역까지 가면서 김종필의 퇴진을 건의했다. 이날 오 후 장경순은 기자들에게 자신의 건의내용을 공개함으로써 큰 파문을 일으켰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날 아산에서 있었던 충무공 탄신 기념식에 참석 했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온양관광호텔에서 기자들과 약20분간 약 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김종필 당의장을 교체할 생각이 없다'면 서 항간에 떠돌고 있는 자신의 공화당 총재직 사퇴설도 부인했다. 다 음날 박대통령은 공화당 원내간부들과 장경순 부의장을 청와대로 불러 회의를 열고 직접 내분 수습에 임했다.
박정희는 공화당 내분으로 골치를 앓고 있을 때 최두선 총리를 위 시한 내각의 '소신 없는 행정력'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다. 4월13일 내각에 내린 지시에서 '소신을 갖고 분발하라'고 촉구했던 그는 27일 에도 같은 지시를 내렸다. 이 지시를 계기로 개각이 임박했다는 소문 이 돌기 시작했다.
5월1일 박대통령은 김종필 의장, 이효상 국회의장, 장경순국회부의 장을 청와대로 불러 두 시간 반 동안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다. 이 자 리에서 박대통령은 장경순으로부터 '김종필 의장 사퇴 요구'를 철회한 다는 다짐을 받아냈다.
박대통령은 5월3일 환율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조치를 취했 다. 130대 1이던 원-달러 환율을 255원대 1달러로 올리면서 고정환율 제를 폐지하고 단일변동환율제를 채택, 환율이 매일 국내 외환시장에 서 결정되도록 한 것이다. 이로써 수출드라이브 정책은 가속도를 받게 되었다. 다음날 상공부는 1964년도의 수출목표액을 1억500만 달러에서 1억2,000만 달러로 늘리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5월7일 박대통령은 울산 정유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 은빛을 뿜어 내는 수많은 저유탱크와 라디오 회로처럼 복잡하게 얽힌 파이프로 꽉 찬 울산 정유공장 준공식은 화창한 봄날씨 속에서 이루어졌다. 박정희 는 이성호 유공사장을 보더니 대뜸 '왜 사람들을 동원했느냐'고 핀잔 을 주었다. 약2만 명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아침부터 몰려와 논두렁 을 하얗게 뒤덮고 있었다.
박정희는 치사를 통해서 자신의 개발전략을 변호했다.
'공업화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이 벅찬 시련과 희생의 대가로 우리는 기간산업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5개년 계획을 낭비와 실패로만 규정하려는 일부 왜곡된 견해가 있으나 오늘 의 경제적 현실은 발전과정의 불가피한 진통이며 전진을 위한 전환기 적 시련입니다'.
한 달 전 부산 감천화력발전소 1호기의 준공으로 제한송전이 철폐 된 이후 또 다시 정유공장의 준공을 보게 됨으로써 박정권은 공업화의 에너지원을 착실히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무렵 어느 날 밤 박정희 대통령은 정일권 외무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육영수가 내놓은 생선찌개를 놓고 소주로 대작했다.
정장관이 술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는 술을 바꿔 보시지요?'.
'아직 이릅니다. 일본에서 받아낼 돈을 다 받아내고 우리 농촌의 보릿고개를 없애버리게 되면 그때 가서 기분 좋게 샴페인을 터뜨려봅 시다'.
소주 여러 잔이 오간 뒤 박대통령이 무겁게 입을 뗐다고 한다(정일 권 회고록에서 인용).
'정형, 오늘 오시게 한 것은 다름 아니라···여러 가지로 궁리해 본 결론인데 정형의 도움이 필요해졌습니다'.
'말씀 하시지요. 제가 할 수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도와드리겠습니 다'.
'정형, 국무총리를 맡아주셔야겠습니다'.
'예?'.
정일권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고 한다.
'각천(최두선총리의 호) 선생의 지명도에 큰 기대를 걸었는데 연로 한 탓인지 당의 일부 젊은 층과 손발이 잘 맞지 않는 것 같군요'.
박정희는 최총리가 며칠 전 사의를 표명했다고 전하면서 '이모저모 앞뒤를 재보고 얻은 결론입니다. 맡아주셔야겠습니다'라고 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