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출마 포기 선언문
박대통령은 학생 데모보다도 적전분열 현상을 보이는 공화당 내분에 더 시달리고 있었다. 5월30일부터 서울대학교에서 교수들과 언론의 응원속 에서 학생들의 단식 농성이 시작되어 다시 정국이 뒤숭숭해지는 가운데 일요일인 5월31일에는 김종필의장의 퇴진을 주장하는 장경순국회부의장 등 공화당내 비주류측 인사들과 김의장의 유임을 건의하는 주류측 인사 들이 번갈아 청와대를 찾아와 대통령을 괴롭혔다.
당내 반 김종필 세력의 보스는 김성곤의원, 장경순 부의장, 그리고 이 효상 국회의장으로 지목되고 있었다. 김종필은 1일 박대통령을 찾아가 사표를 제출했으나 되돌려졌다.
1964년6월2일 서울시내 대학생들 수천 명이 세종로로 몰려와 반정부 시 위를 벌이면서 경찰과 충돌하여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이들은 박대통령 의 하야를 요구했다. 이날 박대통령은 박상길 대변인을 집무실로 불렀다.
'이걸 발표하시오.' 그가 던져준 문건은 박대통령의 자필이었다. 제목은 '현시국에 관한 대통령 특별교서'. 박대변인은 빠르게 소리없이 읽어내 려갔다. 도입부부터가 비장했다.
'본인과 정부는 그간 막대한 희생을 감내하면서 진정한 재야의 소리와 민의를 듣고 건설적인 공통의 광장을 마련해보고자 최후의 선까지 인내 하여 왔다. 그러나 학생 데모는 신성한 4·19정신에서 멀리 이탈하여 기 점을 잃은 난동으로 타락해가고 있다.'
'일부 이유 있는 데모라 하더라도 개인이나 국가가 일을 할 수 없는 장 해가 된대서야 먼저 이를 저지않고서는 다른 무슨 일도 할 수가 없다.' '한국은 광대한 적색대륙의 일단에 위치하고 있고, 이 지세상의 불리를 극복하기 위한 자유진영과의 연결의 공고성 및 국가의 최우선 과제가 되 어 있는 경제건설에 따르는 근대화작업을 위하여 이 현안(필자 주-한일 국교정상화 협상)의 결정적인 타결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다. 국가간 외교타협의 목적은 최대한의 이익과 조건을 마련함에 있다. 그러 나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또한 시리를 얻어야 한다는 점이다. 내 외정세는 늦으면 늦을수록 우리에게 유리할 것이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한일회담의 타결은 그 자체에서 얻은 이도 이려니와 여기에 부수되는, 세계의 각 우방으로 통하는 경제적 지원의 길이 틔어질 것임을 간과해서 는 안된다. 양국간의 타결에서 얻어지는 금액은 단 한푼도 낭비됨이 없 이 오직 국가경제 재건에 쓰여질 것임을 단언한다.'
박상길을 얼어붙게 만든 것은 이 발표문의 마지막 귀절이었다. '끝으로 본인이 이 기회에 내외 동포에게 명백히 천명코자 하는 바는 이같은 현 안의 종결과 이에서 오는 조국의 안전 및 국가 근대화의 기초가 확립된 다고 하면 본인은 민주정치의 진보를 위하여 차기 선거에 출마치 아니하 고, 일차 임기만으로 조국에의 봉사를 끝마칠 결심임을 내외에 밝히는 바이다.'
박상길은 내용이 너무 엄청나 말도 붙이지 못하고 물러나 발표 절차를 진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재출마를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그 발표문도 혼자서 썼으니 아무도 번의시킬 수 없으리라고 박상길은 생각 했다. 그런데 6월2일의 학생시위로 사태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정 일권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서 계엄령 선포 문제를 의논했다고 기자들에 게 말하고 '내일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이 문제가 다 시 논의될 것'이라고 했다.
2일의 시위를 보도한 신문들은 객관보도와는 거리가 먼 격문 같은 제목 과 지면 구성을 보였다. '화요일에 비가 내렸다···학생은 외쳤다·· ·초연속에 돌팔매 날으고' '단식 데모···또 노한 대학가'식의 제목 밑에는 이런 기사도 보였다.
<'내 아들 못잡아간다' 눈물로 흠뻑 젖은 어머니의 목 메인 소리에 경 찰이 어머니의 팔을 잡아끌자 아들은 '어머니 못잡아간다'고 부등켜 안 았다. 어머니는 곤봉속으로 뛰어들었다.> 단식중인 서울대학생이 투고한 선동적인 시도 사회면에 그대로 실렸다. 언론은 상황을 4·19직전, 일종 의 혁명전야로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이것은 오판이었다.
군부와 다수 국민들은 박정권을 지지하고 있었고 박정희는 자기 정당성에 대 한 확신과 무력으로 폭력시위를 누르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6월3일 박정희 대통령은 박상길에게 전화를 걸어 '어제 그 문건의 발표를 보류하시오'라고 말했다. 하루 사이 역사가 달라진 것이다. 박대변인 은 박대통령이 생각을 바꾸도록 설득한 것은 전 내무장관 엄민영이었다 고 짐작할 뿐이었다. '역사적 문건'이 될 뻔했던 이 특별교서문은 지금 박상길씨가 보관하고 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