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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의 2차 외유
 김종필의 2차 외유
 
 1964년 6월4일 민기식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공관에 모인 군 수뇌부는 김종필 공화당 의장을 초청해놓고 차마 '물러나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완곡하게 용퇴를 건의했다. 뒤늦게 참석한 이만섭 공화당 의원이 기자출신답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했다고 한다(이만섭 회고록 '증언대'에서 인용).
 
 '김의장께서 이보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를 하십시오.'.
 김의장은 천천히 입을 열어 이런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군 전체의 뜻은 아닐 거요. 내가 물러나면 누가 각하를 보필하겠 소. 내가 물러난다면 나를 모함한 사람들도 같이 물러냐야 되지.'.
 
 이만섭은 재차 용퇴를 간청했으나 김의장은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다음날(6월5일) 박대통령은 이만섭 의원을 청와대로 불렀다. 이 자리 에서 이만섭 의원은 '각하, 사태가 급하니 이 자리에 김의장을 불러 두 분이 함께 결론을 내리시지요'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비서관을 불 러 김의장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을 보고 그는 물러났다. 이의원은 그 날 저녁 김종필 의장의 사임을 알리는 신문호외를 읽을 수 있었다.
 
 버거 대사도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다음날 박대통령에게 '각하의 지 지자들은 김종필이 거세되지 않으면 정부가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생 각하고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한다(미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낸 도 널드 스톤 맥도널드가 쓴 '미국-한국 관계 20년의 기록, 해방에서 자 립까지').
 
 박대통령은 자신의 2대 지지기반인 군부와 미국으로부터 똑같은 압 력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김종필은 또 한번 속죄양이 될 수밖에 없었 다. 최근에 기자를 만난 김종필 총리는 당시 공화당내 반JP세력의 두 보스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장경순 부의장은 자신은 장군이고 나는 대령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나를 대하는 것 같았어요. 계급사회인 군대의 생리상 장성들은 우리 8 기생들을 그런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습니 다. 김성곤 의원의 경우는 그분의 야심이 컸어요. 내각제로 개헌한 뒤 총리를 한번 하겠다는 꿈을 갖고 그때부터 지지기반을 다지고 있었습 니다. 내가 육본 정보국에 근무할 때부터 김성곤씨의 친척이 되는 김 재현 장군(당시 정보국 차장)의 소개로 김의원을 알고 지냈습니다.'.
 
 김종필 총리는 '민기식 총장이 군부의 의견을 전한 것으로 알고 있 다. 내가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 된다면 물러나는 것이 좋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 무렵의 박대통령에 대해서 김총리는 이 런 증언을 했다.
 
 '그분은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이렇게도 모르나 하고 짜증을 냈습니 다.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한일국교정상화를 하더라도 더이상 유리한 조건을 관철시킬 수가 없는데 왜 이러나 하는 말씀을 자주 했습니다. 그러면서 재출마를 하지 않겠다는 말씀도 하신 적이 있는데 내가 말렸 습니다. 5·16혁명을 일으킨 이상 역사적 책무를 면할 수 없다고 했습 니다. 그분은 내심으로는 무서운 결의를 다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민 족은 적당히 풀어놓으면 안된다, 내가 욕을 먹더라도 악귀처럼 국민들 을 채찍질하여 근대화와 민족중흥을 기어코 달성해야겠다고 스스로를 다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김종필 총리는 또 '박대통령이 그 후에 권위주의적인 쪽으로 변했 다고 한다면 당시의 야당, 언론, 학생 등 반대세력의 투쟁방식에도 책 임이 있다. 세상 일은 다 교호작용이 있는 법이 아닌가'라고 했다. 김 종필 의장이 하버대 대학에 유학하는 식의 외유를 주선한 것은 미국 대사관이었다. 미국측은 사우스 웨스턴 연구회(South Western Research Society)란 조직에서 일체의 경비를 부담하는 식으로 하여 하바드 대 학에서 헨리 키신저 교수가 주관하는 6주간의 여름 세미나에 김의장이 참여하도록 했다.
 
 1964년6월11일 사우스 웨스턴 연구회의 더글라스 페인 사무총장은 키신저 교수에게 보낸 편지에서 '김종필은 정력적이고도 논란이 많은 정치생활을 해왔는데 귀하께서 그를 가르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그와 한국을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고 했다. 페인 총장은 '그의 영어 실력은 좋은 편이지만 말할 때는 통역자가 필요하다'면서 '아시아 재 단이 추천하는 다니엘 리가 김종필의 통역자로 동행할 수 있도록 해달 라'고 간청했다.
 
 박대통령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것을 계기로 반대세력의 기를 확 실하게 꺾어놓는 방법을 강구하겠다는 결심을 한 상태였다. 1964년 6·3비상계엄령 선포 전야에 그는 공화당의 전 총재 정구영 의원을 청 와대로 불렀다. 새벽 2시였다. 그는 원로로서 존경해온 정의원에게 '내일 계엄령을 선포하겠다'면서 자신의 불만을 털어놓았다.
 
 '오늘의 사태는 야당과 지식인, 그리고 언론의 무책임한 선동 탓입 니다. 학생들은 4·19혁명의 경험 때문인지 저희들만이 애국자이고 가 장 올바른 판단을 하는양 자만하고 있어요. 이런 버릇을 고쳐놓아야 합니다. 아주 엄하게 다스리겠습니다. 나는 국민이 참여한 선거를 통 해 당선된 대통령입니다. 그런 대통령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줄 작정입니다.
 
 공화당은 그동안 이런 학생시위와 야당의 한일회담 반대 운동에 대해서 미온적으로 대처했습니다. 계엄기간중에 여러가지 정치 적 조치를 취할 생각입니다. 계엄령을 펴야 할 혼란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조치를 취할 생각입니다. 이제는 혼란이 일어난다 해도 계엄령을 펼 필요가 없도록 안전판을 마련해야겠습니다. 그러니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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