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  조선일보  |  독립신문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라이트뉴스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기사 확대  기사 축소  

김재규-이만섭 밀담
 김재규-이만섭 밀담
 
 1964년6월3일 하우즈 유엔군 사령관이 미 합참에 보고한 박정희 대 통령과의 협의 내용은 이러했다.
 
 <상부의 사전 지침에 따라 나는 한국군 2개 사단을 계엄부대로 동 원하는 것에 동의했다. 단 포병은 동원대상에서 제외한다. 버거 대사 는, 박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현재의 사태를 수습 하기 위해서는 계엄령만으로는 불충분하고 정부측의 잘못도 바로잡는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도 1960년의 계엄령 선포와 이 번의 계엄령은 다르다고 말했다.
 
 나는, 1960년의 계엄령은 이미 유혈 사태가 벌어져 있는 상태에서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군이 동원되었으 므로 국민들의 환영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계엄군이 직접 학생들과 대 결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려되는 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안정 을 위한 중요한 요소는 군대와 국민들 사이의 신뢰관계인데 이 양자가 이번 사태로 멀어지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또 박대통 령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으로서 1960년의 이승만에 비교해서 다 수의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음을 지적하고 계엄령 선포가 과연 필요한 가 하는 논쟁을 군부 안에서 벌이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란 의견을 개진했다.>
 
 미국측이 박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이유는 한 일회담의 성사를 지원하기 위함이었다. 사무엘 버거 주한 미국 대사는 한 달 전 한일회담 반대운동의 지도자인 민정당의 윤보선 의원을 찾아 가 미국측의 불만을 전달한 적도 있었다.
 
 김성은 국방장관과 김종오 합참의장은 6월3일 저녁7시쯤 청와대에 서 중앙청으로 건너와 국무회의에 참석했다. 김장관은 박대통령의 결 심을 전했고 정일권 총리 등 장관들은 계엄령선포안에 부서했다.
 
 박대통령은 노석찬공보차관의 발표를 통해 6월3일 오후 8시를 기해 서울시 일원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계엄사령관에 민기식 육군참모 총장을 임명했음을 알렸다. 민대장은 포고령을 발표, 일체의 집회를 금지시키고 언론 출판의 검열과 서울시내 각급학교의 무기 휴교, 그리 고 통행금지 개시 시간을 자정에서 밤 9시로 당기는 조치를 취했다.
 
 박대통령은 박상길대변인을 통해 계엄령 선포에 즈음한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는 '나와 이 정부가 참을 대로 참다가 이 마지못한 결단 을 내리게 된 것을 먼저 밝혀둔다'면서 '지금 그들 일부 몰지각한 학 생들에게는 헌법도 없고 국회도 없고 정부도 없다'고 개탄했다.
 
 '합헌 정부에 대하여 전면적인 부정으로 도전함으로써 어려운 여건 하에서나마 경제적 난관과 민생문제를 타개하려는 정부의 행정기능마 저 마비케 하고 대외적으로는 국가의 위신을 추락시킨 일은 묵과할 수 없다.'
 
 6사단, 28사단으로 구성된 계엄군은 6월4일 서울로 진입하여 수도 경비사령부 병력과 함께 시내의 요소를 장악했다. 학생시위는 간단하 게 진압되었다. 무엇보다도 대다수 국민들이 난동화된 시위에 거부감 을 느끼고 있었으며 한일국교정상화의 불가피성에 공감하고 있었고 박 정희 정권을 독재정부로 보지 않고 있었다. 학생들은 야당과 언론의 지원을 받고 있었으나 계엄령으로 언론과 야당이 무력화된 마당에 강 력한 정부의 물리력을 견딜 수 없었다. 계엄령 선포로 박정희는 취임 이후 다섯 달 동안 수세로 몰리던 상황을 일거에 반전시키고 야당, 언 론, 학생들을 압박할 수 있는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6월4일 아침 계엄 지휘관 회의에서 이미 김종필 퇴진 문제가 제기 되었다. 김성은 국방장관과 민기식 육군참모총장 및 김계원(뒤에 육군 참모총장·정보부장·대통령 비서실장 역임)이 청와대로 올라가 박대 통령에게 군부의 의견을 전달했다. 박대통령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면서 '누가 김의장을 만나 군의 뜻이 이러하니 잠시 외국에 나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건의하지'라고 했다.
 
 서울로 들어온 계엄부대인 6사단의 김재규 사단장이 공화당 이만섭 의원을 지휘소가 있는 덕수궁으로 부른 것은 이 계엄회의 직후였다.김 재규 준장은 이만섭이 다닌 대구 대륜중학교의 체육교사로 근무한 적 이 있었다. 김사단장은 이의원을 데리고 덕수궁 뜰에 서 있는 앰뷸런 스 안으로 들어갔다. 도청을 피하려는 행동이었다.
 
 '지금 계엄군의 공기가 좋지 않아요. 학생 시위는 진압했지만 이번 기회에 문제가 있는 정치인들을 정리하자는 여론이 일어 나고 있어요. 그 대상은 4대 의혹사건을 일으킨 김종필, 박대통령이 일본 돈을 받았 다고 허위 선전을 한 김준연 등이오. 군의 분위기가 이러하니 이 의원 이 각하께 잘 말씀을 드려 김종필 의장이 공직에서 물러나도록 하는 것이 사태 수습에 도움이 될 것이오. 이런 말을 대통령 각하께 전할 사람은 이 의원밖에 없을 것 같아 이렇게 부른 것이오.'
 
 이만섭 의원은 박대통령 직계로 분류되고 있었는데 김종필 의장과도 관계가 좋았다. 그는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전하기 전에 김의장에게 귀띰을 해야겠다고 그의 행방을 찾았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저녁 무렵에야 김의장이 민기식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공관에 가 있 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만섭이 그곳에 가 보니 민기식, 김종필 외에 김성은 국방장관과 김종갑국회 국방위원장도 와 있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기사목록  프린트하기 

조선일보 | 스포츠조선 | 주간조선 | 소년조선 | 여성조선 | NK조선 | IT조선 | 잡지DB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1가 163 광화문 오피시아 1729호  |  대표자 : 조갑제  |  사업자등록번호 : 101-09-63091
상호 : 조갑제닷컴  |  개인정보관리 책임자 : 김동현  |  전화번호 : 02-722-9411~3  |  팩시밀리 : 02-722-9414 |
    개인정보취급방침

발행인 : 조갑제 | 편집인 : 조갑제 | 등록번호 : 서울아00945 | 등록일 : 2009/08/24 | 국민은행 360101-04-065553(예금주: 조갑제닷컴)
webmaster@chogabj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