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노성
1964년 6월2일 새벽 계엄령 선포 전야. '학생들의 버릇을 고쳐놓겠다'고 다짐하는 박정희에게 정구영 공화당 의원은 '정부-여당의 잘못도 있으니 이 기회에 과감한 시정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건의를 드렸지만 박정희는 '별로 찬 성하는 기색은 아니었다'고 한다('정구영회고록-실패한 도 전'에서 인용).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박 대통령은 반대 세력을 설득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수용하려고 애쓰는 자세였으나 이날 밤은 힘으로 대처하려는 단호한 모습을 보 였다.
정구영은 '그날 내가 한 이야기는 구름잡는 정치지 현실정치는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 석은 얘기를 했었다고 생각된다'고 회고했다.
6·3사태를 전후한 시기에 박 대통령은 1년 전 민정이양 때에 이어 또 다시 한국정치의 분열상과 지식인의 단견에 절망하면서 고독속에서 자신의 확신을 더욱 다지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는 사석에서 수도 없이 '접장들과 학생들, 그 리고 기자들 때문에 나라가 안된다'는 불만을 털어놓으면서 '이런 풍토에서는 민주주의는 안된다. 내가 욕을 먹더라도…' 라고 말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6월26일 오전 계엄하의 국회에 나와 '시국수 습에 관한 교서'를 발표했다. 회색 재건복에 색이 얇게 깔 린 안경을 쓰고 나온 박 대통령은 약 30분간 연설문을 읽어 내려갔다. 박 대통령은 겸손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때로는 의욕의 과잉으로 무리한 시책을 강행한 나머지 다소간 민심과 유리된 바도 없지 않아 있었고 경험의 미흡 으로 뜻아닌 결과를 초래한 것도 있고 하여 한없이 자책의 심회를 금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결과적 책임은 모두 나에 게 있는 것이며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시킬 생각은 없 습니다. 정녕 나대로 성의를 다하여 한다는 일이 결과는 반 대현상으로 나타났던 일도 있었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 는 것은 둔사도 변명도 아닙니다. 다만 솔직한 고백에 불과 합니다.>.
그는 먼저 학생들의 시위를 비판했다.
<과연 이 나라는 누가 정치를 하는 것인지, 정부는 날마 다 밤마다 학생 데모 막기에만 골몰하고 국민들은 불안의 도가니속에서 한숨만 쉬고, 이것은 학장도, 교수도 막을 수 없다, 학부형도 학자모도 막을 수 없다, 게다가 정치인은 그것을 이용하고 있다, 어떤 국회의원은 그 데모가 국회의 사당 앞에 오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다른 국회의원은 그것 을 환영하고 있다, 이런 실정하에서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안심하고 정부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박 대통령은 이어서 '그들이 자발적으로 학생본연의 자세 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근본문제이기는 하지만 입법으로 이를 보호하고 규제할 필요가 없지 않다는 것을 나는 확신 하는 바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언론을 맹공한다.
<언론이 없는 시간부터 세상은 암흑천지가 되는 것도 사 실이지만 세상에는 신문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소리도 있 고 이 사회의 혼란은 신문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소리 도 있습니다. 이런 소리가 다만 하나의 잠꼬대에 불과한 것 이겠습니까. 우리나라 신문은 지난 15년간 선의이건 악의이 건 너무나 많이 국민들을 자극했고, 선동적인 언사를 써왔 습니다. 이렇게 하여 경영상 수지는 맞추어왔을지 몰라도 국가사회에 유익한 일만 해왔다고 단언할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그런데 그보다도 더 이상한 것은 사람들이 저마다 속으로는 '신문이 너무 과하다. 신문이 이래서는 안돼'라고 하면서도 아무도 감히 입을 벌려서 큰 소리로 그것을 시정 하라고 외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자유를 수호할 의무가 있다면 타인의 자유나 타기관의 자유 를 침해하는 자유를 규제할 의무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진정한 언론의 육성과 조금도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고 확신합니다.>.
박 대통령은 언론자유를 규제하는 입법을 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이어서 그는 끝없는 정쟁을 비판하기 시작 했다. 그는 '학생 데모나 무력으로 인하여 또 다시 정변이 일어나는 사태가 없어야 한다'면서 '다른 사람은 그런 말을 할 수 있지만 나는 그런 말을 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을지 모르나 그럼으로 더욱 평화적 정권 교체를 실천에 옮겨서 국기를 공고히 하여야 한다는 사명을 통감하고 있다'고 했 다.
박정희는 또 '우리는 영원토록 외원에 의존할 수는 없다. 자립이 없다면 진정한 독립이 있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민족적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혹자는 이것을 곡해하여 반공 태세를 문란하게 하고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학생들에 의해 화형당했던 자신의 통치이념을 변호했다.
'거리로 나가면, 그것이 이북방송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 의 소리가 들립니다. 그것에 분격하는 마음, 어찌 난동 군 인만의 잘못이겠습니까. 군인이나 학생이나 공무원이나 정 치인이나 위법자는 가차없이 처단하라는 것이 국민의 소리 인 줄 나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6·3계엄령 선포 사흘 뒤 동아일보를 찾아가 당직기자에게 군과 관련한 보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공수 부대원 8명을 구속하도록 지시했던 적이 있었다. 그는 이런 마당에 학생이라고 해서 성역처럼 봐줄 수 없다는 뜻을 분 명히 한 것이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