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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 담판
 유성 담판
 
 1964년 9월7일 오후, 박정희 대통령은 가뭄이 심했던 호남지역에 비가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지리산으로 시찰을 떠나 이날 밤 대전 유성 관광호텔에서 묵었다.
 
 다음날 아침, 서울 세종로에 있던 신문협회(현 프레스센터) 1층 로비에는 심각한 표정을 한 언론인 여섯 명이 모였다. 언론윤리법 철폐투쟁위원회 유봉영(67·당시 조선일보 부사장) 위원장을 필두로 편집인협회 고재욱(61·동아일보 부사장) 회장-최석채(47) 부회장, 신문연구소 홍종인(61) 소장, IPI(국제신문편집인협회) 한국위원회 김규환(35) 사무국장, 기자협회 이환의(33·경향신문 정치부장· 문 화방송 사장 역임) 특별위원장.
 
 오전 9시에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열차편으로 충남 유성에 도착할 때까지 일행은 별 말이 없었다. 유성역에 도착한 이들은 경호원들에 게 둘러싸인 채 박 대통령이 묵고 있던 유성관광호텔로 향했다. 호 텔 입구에서부터 박종규 경호실장은 경호원들을 풀어 살벌한 분위 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이 담판을 주선한 이후락 비서실장과 김성곤 공화당의원이 마중을 나왔다.
 
 오전 10시10분 경 1층 회의실에 들어가자 의자에 앉아 있던 박대 통령이 일어나 일행을 맞았다. 기자협회를 대표해서 참석한 이환의 기자가 가장 나이가 어려 일행의 맨 뒷줄에서 박 대통령이 차례차례 악수를 하며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박정희의 얼굴은 싸늘했 다. 박 대통령이 의자에 앉자 왼쪽부터 유봉영, 홍종인, 고재욱, 최 석채, 김규환 등 나이 순서대로 앉기 시작했다.
 
 타원형 탁자의 끝부분은 이환의 기자의 차지로 대통령의 오른쪽이었다. 이후락과 김성 곤은 박 대통령 뒤에 서 있었다. 회담장 분위기는 썰렁했다. 대통령 도 아무 말이 없고, 참석한 언론계 인사들도 분위기에 눌렸는지 입 을 열지 않았다. 뒤에서 서성이던 이후락 비서실장이 '언론계 대표 께서 먼저 한 말씀 해 보시죠'라며 권했으나 침묵은 계속됐다고 한 다(이환의 증언).
 
 그러자 이후락이 김성곤에게 귓속말을 했다. 잠시 후 김성곤 의 원이 투박한 경상도 억양으로 '이향이, 내 좀 보자'며 슬그머니 불 러냈다. 김성곤은 이 기자에게 귓속말로 '모처럼 각하께 이후락 실 장하고 내가 부탁드려 마련한 자리인데 아무도 말을 안하네. 자네가 좀 해 봐라'고 했다.
 
 광주서중과 광주고등학교 시절 웅변을 잘 했던 이환의는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기자협회 대표로 참석한 경향신문의 이환의 정치부 기잡니다.'.
 
 그는 침착하고 예의바른 언어구사에 신경쓰면서 얼어붙은 분위기 를 녹이려고 박 대통령의 심정에 호소했다.
 
 '군사혁명까지 일으켜 어지러운 나라질서를 세우려는 각하의 충 정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환의 기자는 4·19 이후 사회질서의 문란과 관료의 부패상 등 을 거론하고는 '혁명공약이야말로 사회질서를 바로잡아 조국을 근대 화시키려는 애국적 결단이었다'고 말하면서 '그럼에도 언론들이 앞 다투어 비판적 기사로 일관하여 학생소요를 선동한 측면도 없지 않 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하께서는 개혁과 신질서 확립에 언론이 걸림돌이라는 인식을 갖고 계시는 듯 합니다. 전 언론계의 생사여부가 달린 언론윤리위원 회법을 만드신 것을 저희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때 박정희는 묵묵히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이환의 기자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면 되겠구나' 하고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 언론의 보도성향을 자가비판해 보면 자극적이고 선동 적인 제목을 달아 가판에서 많이 파는 데만 심혈을 기울입니다. 독 자들의 뉴스감각도 이런 수준입니다. 그래서 선동과 폭로로, 소위 군사정부라고 하면서, 각하, (이 표현을) 용서하십시오. 대여, 대정 부 공세를 어느 신문이 더 진하게 제호로, 내용으로 쓰느냐 하는 경 쟁에 휘말려 있는 것입니다.'
 
 박정희는 담배를 피워 문 채로 입술 한쪽을 들며 쿡쿡 웃었다.그 사이로 담배연기가 솔솔 새나오고 있었다.
 
 '이것은 언론기업의 무모한 과당경쟁 때문입니다. 더 큰 원인은 경영상 적자가 너무 심각한 데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환의 기자는 자신이 2년 간 도쿄 특파원으로 지내며 보고 겪은 일본사회와 언론사의 예를 들기 시작했다.
 
 '일본의 외무성과 국방성 기자들은 누가 뭐라 해도 국가이익을 먼저 계산해서 기사를 씁니다. 아무리 특종이라 해도 이 기사가 일 본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자제합니다.'
 
 이 말에 박정희는 앉은 자세를 고치더니 펜을 들어 메모하기 시 작했다. 이 기자는 '구미에 맞는 실례를 들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일본에 총파업이 있습니다. 춘투, 추투라면서 노동자들이 빨간 머리띠에 선동적인 문구를 쓴 어깨띠를 두르고 횃불데모를 할 때면 저희들의 감각으로는 '아, 일본은 오늘이나 내일 쯤 뒤집어지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에 요미우리나 아사히, 마이니 치 등 3대 유력 신문들을 보면 이 사건 기사는 사회면 구석에 1,2단 으로 떨어뜨려 놓고 있습니다.'
 
 이 말에 박정희는 '그렇지!' 하며 무릎을 탁 쳤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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