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 해제
박정희 대통령은 6·3 계엄령을 국정의 주도권을 확립하는 계기로 삼으려 했다. 계엄하의 언론검열로 야당의 목소리가 국민들에게 전달 되는 것을 차단한 상황에서 박정희는 공세로 나온다. 7월2일 박 대통 령은 공화당 소속 국회의원 전원에게 친서를 보냈다. 그는 이 편지에 서 '헌정의 불안정한 상도보다는 오히려 계엄에 의한 사회안정을 바란다는 서민대중의 많은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라면서 '계엄 령 해제에 앞서 앞으로 다시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확실한 대책과 보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또 '이러한 보장은 여야의 공동노력으로 이루어질 것을 희망하고 있으나 만부득이한 경우에는 여당만의 힘으로서도 그 보장을 성취시킬 결의를 굳게 해야 할 것이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요구한 재발 방지 대책의 핵심은 언론규제였다.
박정희는 6·3시위를 몰고온 근본 추진력은 신문의 선동이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는 언론의 입을 막아놓은 계엄기간에 언론규제법 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전략을 밀고 나갔다. 두 야당인 민정당 과 삼민회도 응원세력인 학생들과 언론이 침묵한 형편에서는 이 언론 규제법 협상에 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박정희는 군대와 서민대 중의 지지를 믿고서 밀어붙였다. 온건 야당인 삼민회가 정부의 언론 규제법안에 대해 '언론계가 자율적으로 하도록 하자'는 수정안을 냈고, 이것이 돌파구가 되었다.
7월28일 새벽 여야시국수습협의회는 윤리위원회를 통한 언론규제 강화 대책의 법제화에 합의했다. 합의문은 '공화당이 입법활동을 개 시하고자 할 때는 삼민회는 이에 협조할 수가 있고 민정당은 해엄후 에 논의해서 찬동 또는 반대 아니할 수도 있다'는 요지였다. 이에 따라 박정희 대통령은 7월29일 영시를 기해 그동안 서울 일원에 펴져있던 계엄령을 56일만에 해제했다. 신문들은 일제히 언론검열로 묻어두 었던 사건들을 정리하여 보도했다.
대부분이 학생인 계엄사범 174명 구속, 시위중 부상당했던 건국대 학교 학생 치료중 사망, '인권에 관한 건의서'를 배포한 이병린 대한 변호사협회장 구속, 야당이 박 대통령 하야 및 탄핵 논의 따위의 기 사는 언론이 살아 있었더라면 정부를 곤란에 빠뜨릴 수 있는 것들이 었다. 박정희는 언론통제가 국정운영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체험으로 확인한 셈이었다. 공화당은 7월30일 단독으로 학원보호법 안과 언론윤리위원회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의 핵심은 윤리 위원회에 속한 심의회의 권한에 있었다. 언론계 대표 5명, 비언론인 4명으로 구성되는 이 심의회는 언론윤리강령에 저촉되는 내용을 보도 한 언론사에 대해서 경고, 정정, 사과명령을 내릴 수 있고, 정기간행 물-방송사에 대해서 6개월 이내의 기한을 정하여 인쇄-배포, 또는 방 송금지 판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학원보호법안의 핵심은 교직원과 학생들에 대해 '특정 정당 또는 그 정강-정책을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한 개인-집단의 활동'과 '정 당 또는 정치적 사회단체에 가입'을 금지시킨다는 것이었다. 계엄기 간중이던 7월17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기자들과의 서면 인터뷰에 서 '각 도청소재지에 있던 지부와 국내정보국을 완전히 없애고 주요 지역에 대공분실을 새로 설치하여 앞으로는 대공업무에만 치중하겠다' 고 밝혔다. 이 내용은 완전한 거짓말이었다. 지부를 분실로 이름만 바꾼 것이었고 언론-정계-학원에 대한 사찰은 더욱 강화된다. 6·3사 태를 전후한 시기는 박 대통령이 정보부를 이용한 언론통제의 방향을 굳힌 시기이기도 했다.
언론계는 여당의 언론규제입법 움직임에 대해 조직적으로 저항하 기 시작했다. 계엄하이던 7월27일 한국신문발행인협회, 한국신문편집 인협회, 한국통신협회, IPI국내위원회,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언론규 제대책위원회를 구성, 입법에 의한 타율적인 규제를 배제하고 자율규 제를 보강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조선일보 8월1일자는 유기천 서울 법대학장 등 각계 대표들 9명을 상대로 언론규제법에 대한 앙케트 조 사를 했다. 7명은 입법을 반대했고, 경제인협회 회장 김용완은 찬성, 소설가 박경리는 '언론의 횡포에 대한 비판도 많다. 언론은 이를 자 각해야 하고 사회는 언론에 대한 비판의식을 높여가야 한다'는 요지 로 답했다.
국회는 8월2일 밤 야당의원의 일부가 퇴장, 일부는 방관하는 가운 데 공화당 의원들의 찬성만으로 언론윤리위원회법을 통과시켰다. 8월 5일 임시국무회의는 이 법안을 의결, 공포했다. 8월3일 한국신문인협 회는 '각 언론단체 및 전국민과 더불어 이 악법 폐기운동을 강력히 전개할 것'을 선언했다.
다음날 국회, 청와대, 중앙청, 법조, 경제부 처, 보사부 출입기자단이 편집인협회의 성명을 지지하는 결의를 하고 5일 하룻 동안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부처에 대한 취재를 거부했다. 언론계를 망라한 언론윤리법 철폐투쟁위원회도 결성되었다. 위원 장은 유봉영 조선일보 부사장, 부위원장은 고재욱 동아일보 부사장겸 주필 등 3명. 8월10일에는 투위가 주최한 언론인 대표 대회가 열려 언론자유 투쟁을 선언했다. 이제 권력과 언론의 정면대결이 시작된 것이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