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후퇴
1964년9월8일 유성 만년장 호텔에서 유봉영(조선일보 부사장)을 비롯한 6명의 언론계 대표와 대좌한 박정희 대통령은 기자협회 이 환의 특별위원장(경향신문 정치부 기자)의 건의를 들으면서 싸늘하 던 당초 태도를 풀고 부드럽게 변해갔다. 이기자의 설명은 계속되 었다.
'우리 신문사들이 그날의 가판부수에 매달리고 그것이 1면과 사 회면 담당자의 실력을 재는 바로미터가 되어버린 상황에서는 절대 로 일본언론과 같은 냉철한 보도태도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 서 각하,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여러 선배님들도 여기 계시지만 저 를 용서하시고 어리광 겸해 적나라한 말씀을 좀 드리겠습니다.'
박대통령이 씩 웃는 것을 보면서 이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각하, 먼저 각사에 최소한의 운전자금을 좀 융자해주십시오.그 리고 지형(활자판위에 이것을 놓고 압력을 가해 활자의 자국이 나 타나게 하는 특수 종이로서 이 위에 납을 부어 연판을 만듦)은 전 량 수입품인데 면세 혜택을 주십시오. 신문용지값이 날로 올라갑니 다. 용지의 원료인 펄프의 수입에 대해서도 면세를 해주십시오. 이 런 건의사항을 각하께서 받아주시고 언론윤리위원회법의 시행을 유 보해주시면 저희들도 자성의 모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무리한 가 판경쟁도 지양하겠습니다. 각하께서 정체한 우리 언론을 살려주시 고 용기를 주십시오. 그러면 언론도 응분의 보답을 할 것입니다.'
메모를 해가면서 이기자의 말을 듣던 박대통령은 메모지를 덮으 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러분들의 충정과 나에게 해주신 말들을 잘 이해하겠습니다. 언론계가 당면한 고충도 잘 들었습니다. 좋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하여간 오늘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유성회담이 진행되고 있던 그 시간 홍종철 공보부 장관과 노석 찬 차관은 장관실 문을 걸어잠그고 대책을 논의했다. 평안도 사투 리가 심한 사람좋은 홍장관은 기자들이 질문공세를 펴자 이렇게 말 했다.
'살콰주(살려주오), 살콰주. 내래 아직 니야기할 닙당이 못됩니 다. 제발 살콰주.'
서울로 올라온 박대통령은 9월9일 청와대에서 두 차례 당정회의 를 열고 언론윤리법의 시행을 보류하라는 지시를 공보부 장관에게 내려보냈다. 이로써 언론파동은 38일만에 끝났다. 언론윤리법은 이 로써 사문화되었기 때문이다.
박대통령은 발표문에서 '유성에서 언론계 대표들을 만나본 나의 감상은 그들이 반성과 결의가 어느 때보다 뚜렷함에 큰 감동을 느 꼈다'면서 '자율적 규제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언론계 대표들의 건 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했다.
언론윤리위원회법의 사실상 철폐는 박대통령의 원래 의도와는 다른 결론이었다. 당시 대통령 대변인 박상길에 따르면 박대통령은 '언론의 횡포, 학원소요, 지식인의 편협한 생각, 이 세 가지가 국 가를 위기로 빠뜨린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는 것이다. 박정희 는 '계엄해제 여부와 관계 없이 이 세 가지 문제점은 꼭 내 손으로 바로잡겠다'는 결심이었다는 것이다. 공화당이나 행정부를 책임진 장관 및 의원들이 언론과 갈등을 빚는 데 대해 내키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 박정희는 이들의 등을 밀다시피하여 언론규제쪽으로 달려갔 다.
언론윤리위원회법이 국회에서 논란을 벌이고 있을 때 박정희는 청와대 2층 서재에서 국회의 토론상황을 스피커 장치를 통해서 듣 고 있었다. 어느날 박대통령은 박상길 대변인을 불렀다. 박대변인 이 서재에 들어가보니 대통령은 방을 왔다갔다하다가 스피커를 힘 껏 걷어찼다. 줄은 끊어지지 않아 나뒹굴어진 스피커를 통해서 야 당의원들의 신경 건드리는 발언이 새나오고 있었다.
박대통령은 스피커의 스위치를 홱 돌려 끄더니 엄명을 내리는 것이었다.
'이 길로 국회로 가시오. 이효상 국회의장에게 오늘중으로 법안 을 통과시키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도록 하라고 전하시오.'
박정희의 이런 신경질을 전해들은 공화당이 국회에서 이 법을 통과시키기는 했지만 언론이 박대통령에 도전하고나서자 소신을 걸 고 대통령 편에 서서 언론과 맞서는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강력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이지만 같은 역사관과 언론관과 정치이념을 공유한 측근들이 없는 상황에서 혼자 언론과 상대하기 란 어려웠을 것이다. 여기에 대통령의 고독이 있었다. 박상길은 그 런 대통령을 이렇게 묘사했다.
<오후 5시가 되어 관저의 전직원이 퇴근하고 나면 그 넓고 거대 한 영역 안에는 마음을 주고받을 내 식구 4,5명만이 외로이 남는다. 그리고서도 대통령은 산적된 못다본 서류를 열람해야 하고 국사의 중대사와 고독과의 대결을 해야 한다. 친구도 없도 술도 없고 항차 자유로운 환락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은 수없이 뇌까리신 말이 있었다.
'이 자들이 나만 이 깊은 감옥에 처넣고 저희들은 마음대로 뛰 어다니며 사사건건 말썽만 부리니···.'
나는 한 서너 번 가량 모든 직원이 퇴근하고 갈 데 없는 대통령 이 서재에 우두커니 홀로 서서 노을지는 황혼을 바라보며 눈에 이 슬이 맺혔음을 보았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