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파병-대전략의 태동
1964년 5월9일 김성은 국방장관은 '월남정부가 공식으로 원조를 요청해오 면 우리는 이 문제를 충분히 고려할 것이다'고 발표하면서 '우리는 이미 1959년과 1962년에 태권도 교관을 월남에 보낸 사실이 있다'고 했다. 국방 부는 5월21일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의결을 거쳐 1개 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 교관단을 파월하기로 결정했다.
박정희 정부는 월남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하여 고위 인사를 보내기로 하 였다. 마침 합참 정보국장 강기천 해병소장과 기획조정관 장우주 소장이 이 스라엘 외무장관 골다 메이어의 초청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하게 되어 있었다. 김성은 장관은 이스라엘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태국을 경유, 월남에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민간복으로 갈아 입은 두 사람은 6월5일 오전 11시40분 사이공의 탄손누 트 공항에 내렸다. 뒤에 월남 대통령이 된 티우 장군이 마중나왔다. 장우주 장군은 티우 장군의 안내로 전선을 시찰하면서 한국군의 우월성을 설명했다. 무너진 교량을 가리키면서 '한국군의 야전공병단이면 저 정도는 이틀 안에 복구할 수 있다'고 했다. 월남의 포병단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사격술을 참 관하다가 즉석에서 사격지도도 해주었다. 강, 장 두 장군은 월남측에 대해 서 우리 정부가 의무대대와 태권도 교관을 파견하기로 했다고 통보했다.
6월8일 장우주,강기천 장군은 월남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장 겸 수상인 구 엔 칸 장군을 만나 요담했다. 칸 장군은 '한국의 시위사태가 조속히 수습되 기를 희망한다. 우리도 불교도,천주교도들의 데모로 골치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강기천:'월남정부는 한국군 전투부대의 지원을 요청하는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칸 장군:'현재로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정세 변동으로 그런 요청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강기천:'우리 국방부는 이런 문제(전투부대의 파견)를 고려할 용의가 있습니다.'
·칸 장군:'전투부대를 파견한다면 그 병종과 규모는 어느 정도로 예상합 니까?'
·강기천:'아직 구체적으로 연구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 국방부측은 언제 나 이같은 문제를 고려할 용의가 있습니다.'
요사이 국내의 일부 세력은 한국군의 월남파병을 미국의 용병으로 해석하 여 그 의미를 깎아내리려 하고 있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과 전혀 부합되지 않는 선동이다. 월남파병은 박정희 정부의 주체적 전략하에 미국이 아니라 한국의 주도하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파병의 명분은 '6·25전쟁 때 우리를 도와준 미국에 보은하고 국제공산주 의에 대항하는 자유진영의 일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한다'(1964년 7월31일 국 회에서 의결된 파병 동의안)는 것이었지만 박정희는 실용적인 계산을 깔고 이 명분을 국가발전 전략에 활용했다.
박정희는 국군을 월남에 파병함으로써 주한미군 병력을 빼내 월남전선으 로 보내려는 미국의 구상을 중단시켰을 뿐 아니라 파병에 따른 대가로서 한 국군의 현대화를 위한 미국측의 막대한 원조를 얻어냈다. 월남에 갔다 온 연 30만명의 국군은 실전경험을 쌓았다. 건설업자들을 비롯한 우리 민간인 들은 군인들을 따라 월남시장에 진출하여 많은 외화가득을 이루었고, 해외 사업의 경험을 얻어 1970년대의 중동진출 때 써먹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의 월남파병은 국가의 방향을 크게 바꾼 대전략이었던 셈이다.
박정희가 최고회의 의장이던 1961년 11월,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만났을 때 이미 '월남에 파병할 용의'를 먼저 꺼냈고 다음해 5월11일에는 10여명의 장교단을 월남으로 보내 현지정세를 시찰하도록 했다. 1963년 7월 초순 박 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진해의 이승만 대통령 별장에서 김성은 국방장관, 김 종오 합참의장, 민기식 육군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와 한담하는 자리에서 이 렇게 말했다(김성은 증언).
'월남을 저대로 두면 공산화될 것 같아요. 그러면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 태국, 말레이시아, 필피핀까지도 위험해질 것이고 더 나아가 우리의 안보도 위태롭게 될 것이오. 이런 것을 아는 미국이 가만히 있을까요? 만약 미국이 우리에게 병력파견을 요청해올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여러분의 생각이 궁 금하오.'
김성은 장관은 '만약 우리가 미국의 파병요청을 거절한다면 주한미군을 빼내갈 터인데… 차라리 우리가 미국보다 더 과감하게 나가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박정희는 이 말에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박정희의 비서실 장과 외무장관을 지낸 이동원은 이런 박 대통령에게 '우리가 공짜로 미국을 지원해주어선 안됩니다. 그러니 먼저 파병제의를 하지 말고 미국이 요청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라고 건의했다고 한다.
1964년 3월 김종필 공화당 의장은 월남을 방문하여 실력자 구엔 칸 장군 에게 파병용의를 전했다. 이 무렵 박정희 대통령은 월남대사를 지내 현지 사정에 밝은 최덕신 서독주재대사를 워싱턴으로 보내 미국정부의 고위층과 접촉하게 했다. 최 대사는 '월남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미군 전투부대가 파견되어야 하며 그럴 땐 한국군도 동참할 용의가 있다'는 뜻을 전했다. 박 정희는 미국과 월남의 등을 밀고 있었던 셈이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