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체제
공화당의 주류 핵심인 길재호의원과 비주류 보스인 김성곤의원을 연결하는 새로운 친위세력을 구축하라는 박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박 상길 청와대 대변인은 길재호의 동의를 얻은 다음 김의원의 신문로 자택을 찾았다.
'동생, 무슨 일이 그렇게 중요하노?'
박상길은 텁텁한 김의원을 대하기가 깐깐한 길재호보다는 마음이 편했다. 박상길은 대통령의 특명임을 전제한 뒤 용건의 핵심을 말했 다.
'무신 소리고? 아이고,마 치아라 치아(치워).' '지금 뭐라 캤노? 치우기는 멀 치우란 말고?'
'이봐라. 자식은커녕 손자 같은 아들이 툭하면 권총부터 먼저 뽑 는데 무신 손을 잡으란 말이고?'
김성곤은 불문곡직 홱 뿌리치고 일어나더니 선득선득 방을 나가 려 하였다. 박상길은 저쪽보다 한 술 더 떠야겠다고 생각했다. 일국 의 국가 원수가 내린 대명을 수행하는 터에 당치도 않는 행동을 보 이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일어나 김성곤의 앞을 가로막고 소리쳤 다는 것이다.
'아니키(일본어로 형이란 뜻), 너 오늘 죽을라카나? 뭐라꼬? 그 래, 이치대로 말하면 씨커먼 소도둑놈 심보가 아니란 말이가? 새파 랗게 젊은 군인들이 목숨 걸고 나라를 구해놓으니까 엊그제까지 나 라 털어먹은 놈들이 숟가락을 들고 밥상을 덮쳐? 말도 안되는 소리 아이가? 자기나 나나 염치가 있어야 될 게 아닌가? 그래, 좋다. 나 갈테니, 니 마음대로 해보라꼬.'
이번엔 박상길이 방을 나서려고 했다. 김성곤이 박상길을 붙들면 서 말했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내가 정말로 못하겠다 캤나. 그래 내 잘못했다.'
다시 대좌한 두 사람 사이에 이야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김 성곤 의원도 합당한 자리를 요구하면서 사족으로 대통령에 대한 부 탁 하나를 곁들였다. '혁명주체들이 툭하면 권총을 빼드는 버릇은 고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청와대로 돌아온 박대변인은 사실대로 보고하였는데 권총 운운하 는 말은 차마 전할 수가 없었다. 박대통령은 길재호 의원에게는 공 화당 사무총장 자리를 주기로 했는데 김성곤 의원에 대한 합당한 처 우가 문제였다. 한참을 생각하던 대통령은 김의원이 재계에도 발이 넓으니 당의 재정위원장이 어떠냐고 했다.
'당쪽에 자리를 마련하기가 어렵다면 국회 부의장쪽이 낫지 않겠 습니까. 정치인이 돈에 손을 대면 금후에 여러가지 문제가 있을 줄 압니다.'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하겠소.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소?'
'각하, 제가 할 일은 이제 끝났습니다. 이제 바로 두 사람을 각 하가 부르시어 사안을 확인하시고 각하의 마음을 그들에게 주시어 더불어 의논하면 될 줄로 압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해서는 저는 이 후 모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성질상으로 대변인 소관도 아니려니 와 위계나 직책상으로도 당연히 비서실장이 도울 일입니다. 금후는 일체 이후락실장과 의논하심이 마땅합니다.'
박상길은 이렇게 회고했다.
<이상으로 나의 사명은 끝났고 그날 저녁으로 대통령과 김, 길 두 의원은 만나게 되었다. 얼마 안 있어 길재호 사무총장에 김성곤 당 재무위원장이 실현되어 박정희 - 김종필 라인 대신에 차원을 달리하 는 김-길 라인의 시대가 개막되고 한동안 가다가 여기에 백남억, 김 진만의원이 합류하여 소위 '4인체제'로 정착케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김-길 라인을 4인 체제로 발전시키고 또 다른 외곽선인 엄민영(내무 장관과 주일대사 역임)-서정귀(박정희와 대구사범 동기생)선을 합하 여 청와대의 친정세력으로 오래도록 주무른 것은 바로 이후락 비서실 장이었다.>
6·3학생시위와 계엄령 사태로 정국이 소용돌이치고 있던 뒤안길 에서는 한일국교정상화에 못지 않게 한국의 진로에 큰 영향을 끼칠 월남파병이 조용히 추진되고 있었다.
미국 정부가 미군 전투부대의 월남파병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베트콩의 활동이 강화된 1964년부터였다. 존슨 행정부는 미군의 개입이 없으면 월남정부는 수년내에 공산화되고 말 것이란 판단에 도 달했다. 이해 4월 미국 정부는 '더 많은 국기(More Flags)' 캠페인을 펼치기 시작한다. 자유 우방국가들을 상대로 월남에 대한 각종 지원 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월남의 정부를 이끌던 구엔 칸 장군은 32개국 정부에 편지를 보내 공식적으로 원조를 요청했지만 이 캠페인은 미국 이 주도한 것이고 월남정부는 오히려 냉담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주한미국 대사관으로부터 월남에 대한 미국정부의 원조 요청 공문을 받은 것은 1964년5월 6일이었다. 이날 박대통령은 김성은 국방장관에게 미국 대사가 보낸 편지봉투를 보여주면서 회심 의 미소를 지었다. 미국 정부는 우리 정부가 이동외과병원에 근무할 의무요원들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고 있었다. 박대통령은 '드디어 기 다리던 것이 왔구나'하는 표정이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