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친박정희 노선
1964년 11월21일 일본에서 일시 귀국한 김동조 대사는 청와대에서 열린 고위전략회담에 참석했다. 김대사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말했다.
『출진한 장수를 믿는 기분으로 협상대표단에 전권을 위임해주십 시오. 또 하나 지금 정계, 재계 인사 상당수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저마다 로비를 하고 있는데 일본 외무성은 대한민국 정부의 진의가 뭐냐고 골치를 앓고 있답니다. 정식 외교계통을 통하지 않는 이런 로 비는 애국충정에서 우러난 것이라 해도 회담에 방해가 될 뿐이니 중 지시켜주십시오. 그리고 평화선을 침범하여 나포된 일본선원들을 석 방시켜주십시오.』
정일권 국무총리와 이동원 외무장관은 일본선원 석방에 대하여 국 내여론을 들어 난색을 보였다. 박대통령도 『6·3사태 이후 국민감정 을 참작하여 평화선 경비를 강화하고 그 결과 나포된 일본어선인데 이들을 석방한다면···』하고 주저했으나 『그렇게 하지 뭐』라며 승인했다.
현지로 귀임한 김동조 대사는 11월25일 일본 외무장관 시 이나를 만나 제7차 한일회담을 12월3일에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일본 에서도 신병으로 사임한 이케다 수상에 이어 한일회담에 적극적인 사 토 에이사쿠가 자민당 정권의 수상으로 취임함으로써 순풍을 받고 있었다.
1964년 8월3일 존슨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인 맥조지 번디는 라이샤 워 주일대사에게 이런 요지의 전문을 보냈다.
<윈스롭 G 브라운 주한대사는 귀하를 만날 때 한일국교정상화에 대한 존슨 대통령의 관심을 전달할 것이다. 존슨 대통령의 말을 빌면 이 일은 「최우선 과제」이다. 우리의 분석에 따르면 국교정상화를 위해서 마지막 노력을 해야 할 쪽은 한국측이다. 존슨 대통령도 그런 뜻을 브라운 주한대사에게 전달했다.>
1964년 11월17일 라이샤워 주일 대사는 브라운 주한대사에게 한일 국교정상화를 성사시키기 위한 두 대사의 행동조율에 관해 전문을 보 냈는데 이런 대목이 있었다.
<우리는 한국정부가 한일 국교정상화로 인해 국내적으로 위기를 겪을 때 (그들에게) 강력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 어줄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한국정부에 유리한 행동을 공개적으로 할 수도 있다. 예컨대 야당에 대해서는 이 건으로 박정희 정부의 타도를 유도한다면 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약화될 것임을 분명히 할 필 요가 있고 경제원조 등 국교정상화와 연계되는 특혜를 한국정부에 제 공하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은 한국정부로 하여 금 학생들과 야당의 도전을 극복하도록 할 것이다.
시이나 외상이 워싱턴으로 러스크 국무장관을 방문할 때 장관은 그 기회를 이용하여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노 력에서 한일국교정상화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상기시 킬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본다. 우리가 공식적으로 한일양국의 중개자 역할을 하는 것보다는 일본이 스스로의 판단하에 한국에 대해서 양보 하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명백하고 완 전한 사과 문제에는 우리가 개입해서는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1964년 12월 김현철 신임 주미대사와 만난 백악관 안보회의 간부 체스터 L 쿠퍼와 제임스 C 톰슨은 한일국교정상화의 중요성을 설명한 뒤 『모든 것이 잘 마무리된 다음 박대통령이 미국을 한번 방문했으 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쿠퍼와 톰슨은 미 국무부의 지시 에 따라 「미리 주는 하나의 선물」로서 「PL(공법) 480」에 의한 한 국에 대한 식량지원 건이 확정되었다고 통보했다.
미국정부는 박대통령의 방미 초청을 하나의 미끼로 이용하여 한일 국교정상화회담과 전투부대의 파월협상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어내려 고 했다.
한미관계에서 한국측이 이때처럼 유리한 고지에 서 본 적이 일찌 기 없었다. 존슨 대통령 치하의 미국은 그 전에 그들이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던 「민주주의의 증진」「정치에 대한 국민 참여폭의 확대」같 은 압력수단을 거두어 들이고 「아시아의 방위력 증진」「자유세계의 수호를 위하여」 「동남아의 도미노 현상을 막기 위하여」와 같은 안 보논리로써 한국내의 반정부세력을 누르면서까지 박정희 정권을 적극 적으로 지원한다. 미국 정부가 친박정희쪽으로 표변한 데 대해 김동 조 대사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미국은 자국의 국가이익을 위해서는 무엇이 라도 추진하며 때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미국류의 무서움을 다 시 한번 실감했다」
박대통령은 김동조 대사처럼 추진력이 강한 사람은 현상타개가 필 요할 때, 모범생은 관리부문에 쓰는 식으로 인간의 장점에 주안점을 두고 적재적소에 인물들을 배치하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장기영 같 은 불도저형과 김정렴 같은 관리형, 김형욱 같은 돌출형과 이후락 같 은 책사형, 박종규 같은 무사형과 김성진 같은 문사형을 두루두루 쓰 되 단점을 누르고 장점을 살리는 절묘한 용인술을 구사했다.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은 외교에 경험은 없지만 정치와 전략을 아 는 이동원 장관과 치밀한 직업외교관이면서도 뚝심과 소신이 강한 김 동조 대사가 이상적인 콤비를 이루면서 끝내기를 향해 나아가게 되었 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