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조 대사의 등장
박대통령은 1964년 10월7일 15명의 대사들을 이동시키는 인사에서 주일대사 배의환을 주아르헨티나 대사로, 주미대사 김정렬을 주캐나 다 대사로 옮기고 신임 일본대사에 김동조 무역진흥공사 사장을, 미 국대사에는 김현철 전 내각수반을 임명했다.
김동조 대사는 당시 46세로서 쿠슈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일제시대 에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했던 사람이다. 그는 이승만 정부 시절에 외 무부 정무국장으로서 한일회담에 깊숙이 간여했었다. 1959년 당시 외 무차관이던 김동조는 이승만의 강경한 재일교포 북송 저지 방침에 반 대하다가 사직했었다.
이 대통령은 일본측에 대해 '재일동포 전원에게 귀국을 명령할 것 이며 만약 이 명령에 응하지 않은 한국인은 보호할 가치가 없다. 일 본정부는 귀국자에 대해서는 전재산의 반출을 허용하고 강제연행에 대한 보상금으로서 1인당 1천 달러를 지급할 것'을 요구하라고 김차 관에게 지시했었다. 김동조 차관은 이런 과격한 요구를 할 경우, 재 일동포들 가운데 명령에 따르는 사람이 적으면 남한정부에 대한 불신 임처럼 되어 한국정북가 오히려 곤경에 빠지게 된다고 이의를 제기한 후 사표를 냈던 것이다.
김동조 무역진흥공사 사장이 한일국교정상화회담을 타결짓는 실무 책임자로서 주일대사에 임명된 데는 이병철 삼성그룹회장 등 정·재 계인사들의 박대통령에 대한 추천이 있었다. 박대통령은 김동조 대사 를 청와대로 불러 이런 지시를 내렸다.
'우리의 국내정세로 봐서 내년 6월까지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국내의 회담반대운동도 격화되겠지만 현안의 조속 한 타결이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오. 김대사는 오랫동안 외무부에서 활약한 직업외교관이므로 기대가 큽니다. 내가 김대사를 믿고 전권을 위임합니다. 지금부터 반년 안으로 해결하십시오.'
김동조는 미리 생각해두었던 조건을 제시했다.
'각하, 현안의 조기타결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다음의 3개 선행 조건을 받아주셔야겠습니다. 첫째, 각하께서 저에게 전권을 일임하신 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교섭에 따른 보고 및 청훈의 방법도 저에게 일임해주십시오. 중요한 외교교섭에선 외무당국에 전보나 문서로 훈 령을 요청하면 실무자들은 구둣점 하나 하나에 구애되어 일을 망칠 가능성이 있으므로 제가 각하께 직접 보고하고 청훈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외무장관과 총리와는 적절히 협의해나가겠습 니다만 실무자급으로부터의 통제를 받아서는 곤란합니다. 중대사가 있을 땐 전화나 전보를 통한 보고보다는 반나절 거리이므로 즉시 귀 국하여 각하께 보고드리겠습니다.
둘째론 회담대표단을 구성함에 있어서는 정치적 배경을 떠나 순수 한 관료 출신자들로 편성해주십시오. 과거 대표단에는 정치인, 재야 인사, 법률가 등 거물인사들이 많이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국내정치 상황이나 세론에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에 회담의 실질적 성과는 기 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셋째론 제가 수석대표를 겸할 수 있도록 해주 시기 바랍니다.'
박대통령은 김대사의 요구조건을 모두 받아주었다. 박대통령은 김 동조 대사를 주일대사로 임명한 뒤 여러 차례 전략회의를 거친 후 지 난 봄의 학생시위로 중단된 한일회담을 재개하기로 결심했다. 박정희 는 한일 국교정상화를 바라는 미국정부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야당 과 학생들의 반대를 꺾고 이 일을 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미국은 1964년10월30일 윌리엄 번디 국무부 차관보를 서울로 보내 박대통령과 이동원 외무장관에게 한일회담 재개를 촉구하면서 미국 정부가 막후에서 일본과 한국의 교섭을 지원하고 국내의 반대세력을 약화시키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번디 차관보는 이대사에게 '과격한 야당인사들에 대해서는 브라운 대사가 접촉하도 록 하겠다'고 했으며 주한미국대사(브라운)와 주일미국대사(라이샤워) 도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한일회담을 측면지원토록 하겠다고 말하 더란 것이다.
이 무렵 미국은 한국정부에 대해 한일회담의 조속한 타결뿐 아니 라 월남에 전투부대를 파견하도록 2중으로 부탁하는 입장에 있었으므 로 박정희 대통령은 참으로 오랜만에 미국정부를 만만하게 대할 수 있었다. 미국정부로서는 월남전선에 미군을 증파할 경우, 미군기지가 있는 한일양국의 연계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월남전쟁이 악화될수록 박정희 정부의 미국에 대한 입장은 강화되는 상황이었다.
이동원 장관은 일본으로 부임하는 김동조 대사에게 '국내의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하여 일본정부가 요시다 전 수상과 같은 거물인사 를 서울로 보내 과거사를 사과하도록 교섭해달라'고 했다. 이 장관은 번디 차관보에게도 이 문제를 제기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장관은 번디 차관보에게 '우리는 일본이 차관급을 속죄사절로 보내려고 하는 데 대하여 반대하고 있다. 거물이 와야 국민들이 납득할 것이다. 미 국이 도와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번디는 '일본 외무장관이 오는 것이 좋겠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브라운 대사와 라이샤워 대사가 협의하여 한국측을 지원하도록 하겠 다'고 했다는 것이다. 일본을 잘 아는 김동조 대사는 속죄사절 요청 이 어려운 과제임을 알고 있었지만 젊은 외무장관의 패기만만한 자세 를 평가하여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정했다는 것이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