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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 외무장관
 이동원 외무장관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과 월남파병 때의 외무장관인 이동원(현재 국민회의 국회의원)에 따르면 한미 양국의 고위층 사이에 월남 파병에 대한 공식적인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1964년 10월2일 윌리엄 P. 번디 미 국무부 차관보의 방한 때였다고 한다. 번디는 박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이동원 장관에게 '이장 관, 미국이 월남전에 개입한 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라고 묻더란 것이다.
 
 '나는 미국이 소련, 중공의 눈치를 보면서 북위 17도선 남쪽에서 제한전 쟁을 벌이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존슨 대통령은 어떻든 힘으로 월맹을 굴복시키려고 합니다. 한국이 우릴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육군의 의무대대와 태권도 교관 등 140명이 이미 월남에 상륙하여 근무를 시작한 때였으므로 번디가 말한 도움이란 전투병력의 파견을 의미하 는 것이었다. 이동원은 '그 문제는 각하만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하고 입을 닫았다고 한다. 번디는 박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월남 문제를 제기했다.
 
 '미국은 지금 월남에서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습니다. 존슨 대통령은 각 하께 이런 미국의 처지를 꼭 말씀드리라 부탁했습니다.'
 
 번디 차관보는 전투부대의 파병요청이란 말은 꺼내지 않고 박대통령이 먼 저 파병용의를 밝히도록 유도하는 듯한 말을 했다. 박대통령은 번디의 전술 에 말려드는 것 같았다고 한다.
 
 '거 내 생각엔 미국은 소련과 중공을 너무 의식하는 것 같아요. 월맹은 베트콩을 동원해 대들고 있는데 미국은 캠보디아 국경을 성역처럼 생각하고 그저 17도선 이남만 지키려 하는데 전쟁이란 무조건 이기고 봐야 하는 것 아 닙니까.' '각하 생각이 옳습니다. 이제 존슨 대통령도 중대 결심을 하려 합니다.물 론 거기엔 각하께서 지적하신 대로 북폭과 해안봉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존슨 대통령이 그런 결심으로 우리에게 군사협조를 요청한다면 난 언제 라도 미국을 도울 용의가 있습니다.'
 
 번디는 박대통령으로부터 파병 언질을 받았다고 생각하여 여간 기분좋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동원 장관과 함께 숙소로 돌아가는 차중에서 박대통령 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았다. 이장관은 여기에 제동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번디 차관보, 월남 파병에 대한 대통령의 이야기를 너무 액면 그대로 받 아들이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미국 정부가 정식으로 파병을 요청하면 그때 는 내가 실무적으로 처리해야 하는데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을 겁니다.'
 
 월남파병을 전제로 한 한미 협상에서 이동원 장관은 윈스롭 브라운 주한 미 대사를 상대하면서 악역을 자임했다. 그는 미국의 애를 태워 최대한의 보 상을 얻어내려고 했다. 박대통령은 월남파병에 대해서는 타산적인 접근보다 는 '6·25 전쟁 때 우리를 도운 미국에게 우리가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의 리론이 더 강했다. 이동원 장관은 그런 박대통령에게 이런 논리를 폈다는 것 이다.
 
 '월남전의 장래는 불투명합니다. 이미 대세가 공산주의자들 편으로 기울 어져 미군이 참전하더라도 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서둘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참전을 어떻게 하면 조국근대화 사업에 이용하느냐, 최악 의 경우 미국이 패전했을 때 어떻게 그 후유증을 최소화하느냐에 대해서 신 경을 써야 합니다.'
 
 박대통령은 '우리가 너무 야박하게 구는 것은 아닐까. 일단 군대를 보내 놓고 미국과 이야기할 수도 있지 않은가'라고 했다.
 
 '각하,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이 이렇게 매달리는 건 그쪽이 다급하 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최대한의 실리를 챙겨야 합니다. 일단 파병하고 난 뒤에는 흥정이 어려워집니다. 브라운 대사에게는 크게 인심을 쓰십시오. '나 는 전투병력의 파월에 찬성한다. 나머지는 외무장관과 협의해주기 바란다'라 고만 하시고 실무적인 문제는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그리고 당분간 브라운 대사를 만나주지 마십시오.'
 
 최고회의 의장 시절 박정희 대통령 권한대행의 비서실장으로 있다가 태국 주재 대사로 나갔던 이동원은 1964년 7월27일 외무장관으로 임명되었었다.그 때 그의 나이 38세였다. 그는 부임 직후 사뮤엘 버거 후임으로 부임하는 브 라운 미국대사를 공항으로 영접나가지 않았다. 그 전까지는 신임 미국대사에 게만은 우리 외무장관이 마중을 나갔다. 이건 외교관례에 어긋나는 과공이었 지만 관례로 정착되어 있었다.
 
 이장관은 윤호근 의전국장을 대신 보내기로 했다. 미국 대리대사가 찾아 와 '브라운 대사에게 이미 외무장관이 마중을 나갈 것이라고 전문을 쳐놓았 는데 이러시면 어떻게 하느냐'고 항의했다고 한다.
 
 '국제관례는 상대국 대사들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아니오. 잘못된 관 례는 고쳐야 합니다. 우리가 총독 영접나가듯이 할 수는 없는 것 아니오. 그 렇지 않아도 미국을 새로운 제국주의 세력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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