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순
거목이 예고없이 쓰러질 때는 땅이 흔들리고 먼지가 자욱하게 솟아 난다. 그 근처에 있다가 먼지를 뒤집어쓰기도 하고 나무둥지에 깔려 죽 기도 한다.
거함이 침몰할 때 함께 심연으로 빨려들어가는 사람들처럼 역사의 소용돌이는 우연히 거기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작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다. 그들의 모습을 들여다 볼 때이다.
1979년10월26일 저녁 7시45분쯤 궁정동 정보부 안가의 안방. 신재 순은 가슴관통상을 당해 등으로 피를 쏟아내고 있던 박정희를 안고 앉아 있었다.
한 손으로는 대통령의 등에서 나오는 피를 막고 있었고 다른손으로 는 가슴을 받치고 있었다. 이 자세에서 신양은 김재규가 권총을 대통령의 머리에 갖다대는 것까지 보았다.
그 순간 '대통령을 쏜 다음에는 나를 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으로부터 몸을 뺀 신재순은 실내화장실로 뛰었다. 대통령은 심수봉이 앉았던 방석 위로 쓰러져 머리가 방석에 닿았다. 이때문에 이 방석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
등뒤로 총성을 들으면서 화장실로 뛰어들어간 신재순은 문을 잠그고도 문손잡이를 꼭 쥐고 있었다. 어디 도망갈 데가 없는가 하고 두리 번거려보니 창문이 하나 높게나 있긴 했으나 쇠창살이 붙어있었다.
신재순은 혹시나 해서 거기까지 손을 뻗쳐보았다. 그때 신재순의 손에는 대통령의 피가 흠뻑 묻어 있었다. 신재순이 만지는대로 이 피가 창가와 벽에 칠해졌다. 어차피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니 다소 마음이 편해졌다.
주위도 조용해졌다.
이때다 싶어 문을 살그머니 열고 나오니 김계원 비서실장의 목소리 부터 들렸다.
'업어. 조심하고, 잘 모셔.'.
어둠침침한 불빛 아래서 김 실장은 대통령을 들쳐멘 사람을 따라나 가고 있었다. 방문 쪽에 차지철이 하늘을 보고 쓰러져 있었다. 문갑은 모로 넘어져 있었다.
차지철은 '남군, 남군'이라고 불렀다. 방을 나가고 있던 식당관리인 남효주를 부른 것이었다. 차지철은 손을 움직이면서 말했다. 남효 주와 신재순이 차지철의 손을 잡고 부축하여 일으키려고 했다.
'일어나세요.'.
신재순이 재촉했다. 차지철은 힘을 써보다가 포기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난 못 일어날 것 같애.'.
그리고는 다시 쓰러져 신음을 내고 있었다.
신재순은 '지금도 그 마지막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신재순이 보기에는 그날 밤 차지철은 김재규를 일부러 자극하여 약을 올리는 듯했다. 그래도 신양은 차 실장을 고맙게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대기실에서 면접을 할 때 신양이 '술을 못한다'고 하니까 차지철 은 '옆에 깡통을 갖다 놓을테니까 거기에 부어버려라'고 했던 것이다.
남효주는 신재순을 끌다시피하여 데리고 나가서 안방과 마루 하나를 사이에 둔 부속실로 들여보냈다.
'문을 꼭 잠그고 있어.'.
그 길로 남효주는 지하실로 피신했다. 군검찰의 참고인 신문에서 남효주는 '그때는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를 몰랐고 본인도 저격당하지 않을까하여 피신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신재순이 부속실로 들어가니 먼저 온 심수봉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입술이 창백했다. 이 방에 숨어있으면서 신,심 두 사람은 '안방 에서 차지철이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두 사람은 그 뒤 6,7발의 총성을 들었다.
이는 경비원 김태원의 소위 확인사살 때 난 것이었다.
바로 옆에 붙어있는 경비원 대기실에서 '다 죽었어?' '예, 다 확인 했습니다'라고 하는 소리도 들렸다.
심수봉은 법정에서 '이 총성 후에도 안방에서 신음이 들렸다'고 말했다.
신재순은 겁을 집어먹고 있는 심수봉에게 '야, 지네들끼리 짜고 저러는 것 아니야'라고 했다.
현장에서 받은 느낌이 꼭 김계원과 김재규가 짜고 그러는 것 같았기 때문에 그 말을 했다는 것이다.
신재순은 '간첩들이 아닌가'하는 엉뚱한 생각도 했다. 경호원대기실에 두고 온 핸드백이 걱정이 되었다. 그 안에는 주민등록증이 있기 때문에 주소를 알아내 집에까지 쫓아와서 죽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되었다. 핸드백을 가져오려고 문을 빼꼼히 여는데 밖에서 누군가가 소리 쳤다.
'야! 들어가 들어가. 문닫고 가만히 있어!'.
간이 큰 신재순은 한참 있다가 다시 문을 열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화약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대기실 문을 들어서니 시체 하나가 가로질러 쓰러져 있었다. 정인형 경호처장이었다.
징검다리를 건너듯이 뛰어넘어 안쪽으로 들어가니 또 시체가 머리를 안쪽으로 두고 넘어져 있었다. 안재송 부처장이었다. 의자 위에 놓아두었던 자신의 핸드백과 심수봉의 핸드백까지를 집어서 나오는데 켜져있는 컬러 텔레비전에 눈이 갔다.
AFKN 미군방송이었다.
흑백방송만 보았던 신재순은 신기해서 다시 한번 눈길을 주고는 사잇방으로 돌아왔다. 그때 검은 전화기가 울렸다. 다이얼은 없는 받기만 하는 전화였다. 신재순은 저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 수화기를 들었다.
'여기 청와대 경호실인데요, 그 쪽에서 총성이 났는데 무슨 일인지 확인해줄 수 있습니까?'.
신재순은 심수봉을 향해서 '야, 뭐라 그럴까. 무조건 모른다고 그러자'고 속삭이더니 '몰라요'라고 하면서 끊었다. 여러 번 전화가 걸려왔으나 '모른다'란 대답만 했다. 한 두 시간쯤 지났을까 박선호 과장 이 구세주처럼 들어오더니 '나오라'고 했다.
두 사람은 나동을 나와서 길을 건너 경비원대기실이 있는 가동으로 따라갔다.
신재순은 시원한 가을 밤공기를 마시니 '아! 이 자유, 지옥이 따로 없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났다.
박 과장은 두 여인을 대기실에서 기다리게 했다. 여기서 신재순은 손에 묻은 박정희의 피를 씻어냈다.
30분쯤 뒤 박 과장은 상의 안호주머니에서 봉투 두 개를 꺼내더니 신, 심 두 사람에게 하나씩 주었다. 20만원씩 수표가 들어있었다.
그러고는 '오늘 있었던 일은 일절 발설하지 말라'면서 집에 가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이 순간 국방부 장관실에 있던 김재규의 구상에 따르면 두 여인은 감금해 두어야 하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김재규는 그런 지시를 박선호에게 내리지 않고 있었다.
박선호는 식당차 운전사 김용남에게 두 여자를 내자호텔까지 데려다 주라고 지시했다. 김용남은 주방에서 어깨에 총상을 당한 뒤 응급처치를 하고 들어온 직후였다. 도저히 운전을 못하겠다고 했더니 박 과장은 남효주를 불렀다. 남효주가 코티나 승용차를 운전하여 5분도 걸리 지않는 내자호텔까지 태워다 주었다.
거기에 심수봉은 차를 세워두었던 것이다. 심수봉은 차에 오르자 마자 우황청심환 하나를 꺼내더니 반쪽을 떼내어 신재순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나이를 따져 언니-동생관계를 맺었다.
신재순은 진짜 언니가 살고있는 반포 주공아파트로 갔다.
'너 그거, 피 아니야?'.
문을 열고 나온 언니가 소리쳤다. 원피스의 아랫부분이 주홍색으 로 염색된 듯했다. 동생을 끌어들인 언니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너 지금 제 정신이니, 가서 거울을 좀 봐라. 공동묘지에서 나온 귀신같다.'. (계속).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