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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토반
 아우토반
 
 1964년 12월7일 낮 박정희 대통령은 서독의 임시 수도 본의 관청가에 자리한 우리 대사관에서 최덕신대사 부부가 마련한 한식오찬에 참석했다. 오찬이 끝나자 박정희는 뤼브케 대통령에게 전달할 선물을 점검했다. 미리 서독에 파견되었던 박충훈 상공부장관으로부터 교섭경과를 보고받고 한·독 공동성명의 한국측 최종안을 검토했다.
 
 오후 5시30분, 박대통령은 대사관에서 호텔로 돌아와 뤼브케 대통령 관저에서 열리는 비공식 소만찬회에 참석했다. 사적인 대화가 오가는 중에 박정희는 뤼브케 대통령의 방한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뤼브케 대통령은 즉석에서 수락했다.
 
 박대통령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것은 독일의 자동차전용 고속도로 '아우토반(Autobahn)'이었다. 나치정권하에서 총연장 1만4000km를 목표로 건설하기 시작해 2차대전으로 건설이 중단될 때까지 3860km를 완성시켰던 아우토반은 박대통령이 방문할 무렵엔 '세계에서 자동차가 가장 빨리 달릴 수 있는 도로'로 유명했다.
 
 뤼브케 대통령과 환담중에 다음날 일정이 거론되자 박대통령은 '쾰른시를 방문할 예정'이라 말했다. 그러자 뤼브케 대통령은 '쾰른에 가시려면 아우토반을 달리시겠군요. 본-쾰른간의 아우토반은 가장 먼저 개통되었던 구간으로서 우리의 자랑이지요. 아우토반은 독일 경제부흥의 상징이랍니다.'
 
 박대통령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박대통령이 도착 첫날 숙소로 돌아 온 시간은 밤10시가 약간 넘어서였다. 박정희 부부는 12월6일 김포공항을 떠난 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다음날(1964년12월8일) 박대통령은 쾨니히스호프 호텔 대통령실 침대에서 피곤이 채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박정희는 육영수와 아침식사를 마친 뒤 오전 10시40분에 뤼브케 대통령 관저로 출발했다.
 
 오전 11시. 뤼브케 대통령 관저에서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장기영부총리, 박충훈상공부 장관, 김동환국회외무위원장, 이후락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참석했고 독일측에서는 뤼브케 대통령과 슈뢰더 외무장관, 페링 주한 독일 대사, 최덕신 대사 등이 참석했다.
 
 공식 행사가 끝날 무렵 박대통령은 뤼브케 대통령과 부인에게 대한민국 최고훈장인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했다. 순금으로 제작된 이 훈장은 '국가원수에게 수여되며 우방 국가원수에게도 수여될 수 있다'는 우리나라 상훈법에 따라 준비된 것으로 외국원수로서는 뤼브케 대통령이 처음으로 받게 되었다.
 
 순금 훈장을 두른 뤼브케 대통령 부부는 '분더바아르! 분더바아르! (원더풀)'를 연발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박대통령 부부에게 독일 연방공화국 최고훈장인 특등십자대 공로훈장을 수여했다.
 
 이번 방문에서 우리측은 약 40여개의 훈장을 서독 정부의 고관들에게 수여했지만 서독측은 그들의 헌법상 '외국 원수가 방문하여 수여하는 훈장의 3분의 1을 서독 정부가 수여할 수 있다'는 조항에 따라 우리측에게 10여개의 훈장을 수여했다.
 
 양국의 훈장수여가 끝나자 박·뤼브케 대통령은 별실로 자리를 옮겨 상호 선물 교환을 했다. 박대통령은 이상범 화백의 풍경화로 제작된 열두 폭 병풍, 국산 비단 한 필, 족자 등을 선사했고 뤼브케 대통령은 망원경이 달린 사냥 엽총 한 정과 실탄 한 상자 및 어린이 선물용 카메라 2대와 장난감 기차 등을 선사했다.
 
 이어서 본 시청을 방문 한 뒤 한국 대사관으로 와서 한식으로 점심을 든 박대통령 일행은 라인강 북쪽에 위치한 쾰른시로 향했다. 이날 박정희는 본-쾰른간의 고속도로를 시속 160km로 달렸다. 박대통령은 가는 길과 오는 길에 두 차례 고속도로상에서 차를 멈추게 한 다음 차에서 내려 2-3분간씩 노면과 중앙분리대·교차로 시설 등을 주의깊에 살폈다. 도로 앞뒤를 전망하느라 까치발로 서서 멀리까지 내다보기도 했다. 다시 차에 올라탄 박대통령은 안내를 맡은 뤼브케 대통령 의전실장에게 고속도로에 관해 소상하게 물었다.
 
 '고속도로의 건설은 어떻게 합니까.' '관리는 어떻게 합니까.' '건설비는 얼마나 듭니까.' '그 돈은 어떻게 마련한 겁니까.'
 
 박대통령의 질문은 본-쾰른간을 왕복하는 차중에서 계속됐다. 다행히 의전실장은 고속도로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고속도로망을 소개할 때는 서독의 지도를 펴 놓고 박대통령에게 설명했다. 박대통령은 열심히 수첩에 메모하고 있었다.
 
 박대통령 일행은 오후 4시30분에 숙소로 돌아왔다가 7시로 예정된 뤼브케 대통령 주최 만찬까지 잠시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동안 박정희 대통령은 로비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장기영 부총리와 이후락 비서실장 등이 배석하고 있었다. 갑자기 박대통령이 '고속도로를 달려보니 기분들이 어떻습니까?'라더니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잠겨버렸다.
 
 오후7시에 시작된 뤼브케 대통령 주최 만찬장에서 박대통령은 다음날 회담할 서독 수상 에르하르트와 정치를 떠나 격의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경제학 교수출신의 에르하르트는 숫사자를 연상시키는 풍모를 가졌지만 부드럽고 진지한 태도로 개발도상국의 경제적 과제들을 걱정해 주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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