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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한 행차
 초라한 행차
 
 1964년 12월7일 월요일 오전 6시35분 이탈리아 로마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북상하며 알프스 산맥 위로 날기 시작했다. 오전 7시경 박정희는 스튜어디스가 갖다 준 모닝 커피를 마시면서 아침 햇살을 받고 아름답게 전개되는 알프스 산맥을 내려다 보았다. 그는 아마도 구미 보통학교에 다닐 무렵 감동깊게 읽었던 나폴레옹 전기의 알프스 원정을 생각해냈을 것이다.
 
 비행기가 서독 상공으로 진입하자 박대통령은 기자들을 포함한 전 수행원들에게 몸가짐에 조심하라고 다시 한번 주의를 주었다. 박대통령은 서울을 떠나기 전부터 수행원들에게 '서독에 가서는 분에 넘치는 쇼핑을 하지 말라'고 여러번 당부했었다.
 
 박대통령을 태운 보잉 707기는 오전 8시19분 서독의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한·독 양국 국기가 크게 걸려 있었고 박대통령보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페링 주한 서독 대사가 독일 연방공화국 의전장과 함께 출영했다. 박충훈 상공부 장관 일행도 12월4일 한·독 경제회담 참석차 먼저 와 있다가 이날 백 여명의 서독 교포들과 함께 공항에 나와 박대통령의 도착을 환영했다.
 
 귀빈실로 안내된 박대통령 부부는 독일기자들에게 둘러 쌓였다. 라인 공항장은 육영수 여사에게 카네이션을 선물했다. 한국은행 프랑크푸르트 지점에 근무중인 홍세표(전 외환은행장·육영수의 언니 육인순의 장남)부부가 18개월된 딸 소일양을 데리고 나와 대통령 부부에게 인사를 했다. 육영수는 '너를 여기서 보게 되는구나'하며 끌어 안았고, 박대통령은 소일양의 자그마한 손을 잡고 흔들어 주었다.
 
 특별기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떠난 것은 오전 8시30분. 라인강을 따라 25분간 비행한 뒤 도착한 곳이 본 공항이었다. 정기항로를 날으는 여객기를 얻어 탄 탓에 박대통령 일행은 서울을 떠난 지 28시간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검은 코트 차림에 중절모를 손에 든 박정희 대통령과 밍크 목도리를 두른 한복차림의 육영수는 독일연방 외무부 의전장의 안내를 받아 트랩을 내려갔다. 박대통령은 하인리히 뤼브케 대통령 내외와 그 뒤로 서 있던 루드비히 에르하르트 수상, 오이겐 게르슈텐마이어 하원의장 등 3부요인과 인사했다.
 
 마흔 일곱 살의 박정희 대통령과 일흔 살의 뤼브케 대통령은 나란히 의장대의 경례를 받았다. 애국가와 서독 국가가 울려 퍼졌다. 박정희는 뤼브케 대통령의 안내로 3군의장대를 사열했다. 의장대 사열이 끝나자 박대통령은 의장대장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사기왕성한 귀군대를 사열할 수 있게 된 것을 만족스럽게 여깁니다. 덕택으로 독일 착륙 제1보의 인상은 매우 좋았으며 무척 기쁩니다.'
 
 장신 거구의 의장대장도 흥분하여 '예, 각하. 저도 오늘 각하께서 처음으로 우리 부대를 인정해 주신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여기는 바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박정희-뤼브케 양국 대통령은 연단으로 올라갔다. 뤼브케 대통령의 환영사가 있었다.
 
 '독일 국민은 충심으로 박대통령의 방독을 환영하며, 국토양단이라는 설움의 공동운명 속에 놓여 있는 한·독 양국은 우리의 공동목표와 공동희망의 완수를 더욱 굳게 약속합니다.'
 
 이어 박정희 대통령의 도착성명이 있었다.
 
 '이번 방문을 계기로 귀국이 폐허 위에 이룩한 기적적 건설을 이 눈으로 보고 또한 배워서 양국간의 깊은 이해와 긴밀한 협력에 의해 공동의 목표인 국토통일을 최단시일에, 또한 동서가 때를 같이하여 성취할 것을 염원하며 서약하는 바입니다.'
 
 영접 행사가 끝나자 박대통령 부부는 뤼브케 대통령과 리무진에 동승하여 공항을 떠났다. 박충훈 상공부장관을 수행하여 본에 도착해 있던 상공부 공업제1국장 오원철(71·대통령 경제제2수석비서관 역임 ·뒤에 기아경제연구소 상임고문)도 박대통령의 행렬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오원철 국장은 박장관과 함께 아침식사만 제공되고 목욕을 하면 돈을 따로 지불해야 하는 하루 3달러 짜리 민박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오원철은 훗날 그의 책 '한국형 경제건설(기아경제연구소 펴냄)'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은 초라해 보였고 가엾어 보였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데 몇 대의 사이카가 선도하는 게 고작이었다. 길 옆에 스무개 쯤의 태극기가 축 처진 채 걸려 있었다. 숙소인 스위트 룸이라는 게 고작 10평도 채 되지 않았다. 당시 임시 수도였던 본은 인구가 3만명 정도의 작은 도시로 정부청사라는 게 언제 지은 지도 모르는 낡은 국민학교 건물이었다. 서독 사람 스스로 이렇게 검소하게 지내고 있으니, 한국의 대통령을 홀대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없었다.>
 
 12월7일 오전 10시30분, 숙소인 쾨니히스호프 호텔에 도착하자 뤼브케 대통령이 박대통령을 안내하여 로비로 들어섰다. 박대통령 곁에서 통역을 하려고 바짝 따라 붙었던 백영훈 통역관(현 한국 산업개발연구원 원장)의 증언.
 
 '부동자세로 선 경호원들만 보이는 로비에 왠 서양인이 의자에서 신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황당했지요. 그 순간 그는 신문을 천천히 접으며 박대통령을 바라보고 웃더군요. 유태인 거상 아이젠버그였습니다. 순진한 박대통령은 무척 반가워하면서 절 통해서 뤼브케 대통령에게 아이젠버그를 소개해주었습니다. '우리나라를 잘되게 하기 위해 백방으로 도움을 주고 계신 아이젠버그씨입니다'라고 말입니다.
 
 뒤따라오던 박종규 경호실장은 경악하는 표정이었지요. '도대체 어떻게 해서 저 놈이 여기를…'하며 말을 잇지 못하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후락 비서실장을 통해 대통령의 숙소며 시찰지 등을 다 알아냈다고 합디다. 그 날 이후 박대통령의 서독 체류기간 내내 아이젠버그는 박대통령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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