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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하르트 수상
 에르하르트 수상
 
 1964년 12월8일 오후7시, 뤼브케 대통령 주최 만찬장에서 루드비히 에르하르트 서독 수상은 낮에 아우토반을 달려 본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경제 발전에는 도로·항만 등 기간 시설의 정비가 선행되어야 하겠지요. 비록 나치스가 한 일이긴 하나, 아우토반을 건설한 일을 나는 고맙게 생각합니다. 히틀러가 백년 앞을 내다 본 이 거대한 사업은 마땅히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나는 평소 아우토반에 진입할 때, 그리고 인터체인지 램프를 돌아나올 때 마음 속으로 아우토반에게 경례를 합니다. 지난 58년에 한국을 방문했습니다만, 도로사정이 썩 좋지 못한 걸로 압니다. 개발 도상국에서는 고속도로 건설이란 엄두도 못낼 사업이지만, 독일 국민은 한국민이 겪은 그런 시기에 산업동맥 건설을 성취한 자랑을 지니고 있습니다.'
 
 박대통령은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에르하르트 수상은 1948년부터 1963년까지 자신이 경제장관으로 재임했을 때 서독 경제가 부흥한 요인을 몇 가지로 요약했다.
 
 '정부가 기본 공업 투자를 선행했습니다.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했습니다. 시장경제 체제를 빨리 복구시켰습니다. 중소기업 육성에 힘썼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에르하르트는 박대통령의 팔을 잡더니 이런 말도 했다.
 
 '각하, 분단국으로서는 경제번영만이 공산주의를 이기는 길입니다.'
 
 박정희는 밤 9시에 만찬장을 나와 베토벤 할레(음악당)로 자리를 옮겨 환영음악회 및 리셉션에 참석해야 했다. 국빈에게는 반드시 교향곡을 연주해 들려 주어야 한다는 서독 정부의 관례에 따른 것이었다. 폴켈 반덴하임의 지휘로 모차르트의 교향곡 38번이 연주되었다.
 
 밤 11시에 숙소로 돌아 온 박정희는 측근들에게 불만을 털어 놓았다.
 
 '이렇게 힘들게 일정을 잡아 놓으니 사람이 살 수가 있나. 너무 빡빡하니까 아직까지 변도 안나온다.'
 
 동행했던 당시 조선일보 이자헌 기자는 '그때 박대통령은 빡빡한 일정 때문에 변비로 고생했다. 우리는 '독일인들이 비용을 아끼려고 이렇게 했다'면서 '지독한 사람들'이라고 불평했다'고 회고했다.
 
 1964년 12월9일 오전 9시30분, 방독 3일째를 맞은 박대통령은 전날 밤 음악회가 열렸던 베토벤 할레(음악당)로 나갔다. 유학생·기술훈련생(광부)· 간호원 등 170여명의 교포들이 모인 가운데 박대통령은 15분간 즉석 연설을 했다.
 
 담담하게 연설해 가던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을 소개하는 대목에 이르러 이렇게 말했다.
 
 '본인은 군사혁명을 일으키고 스스로 제시한 공약을 실천함에 실패하였다는 비난이 있음을 잘 알고 있으나, 진정한 재건을 위해서는 국가이익 앞에 사리를 희생시키는 전국민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박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 재독한인회 회장이던 작곡가 윤이상(뒤에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은 '저는 박대통령 각하께서 해 오신 정치의 안정과 경제발전에 감격했고 남북통일문제에 있어서 박대통령 각하의 현명하신 생각에 감명된 바 있으며 이역에 있는 저희들을 격려해 주시는 간곡한 말씀에 감동되었습니다'라고 말한 뒤 서독 대통령으로서 2대 연임했던 데오도르 호이스 교수의 자서전을 선물로 전달했다.
 
 박대통령은 유학온 남학생들에게 파고다 담배 5백갑을, 여학생들에게는 사진집 '여류한국' 60권을 주었다.
 
 박대통령 일행은 독일연방공화국 하원을 방문, 몇 달 전 한국을 방문했던 게르슈텐마이어 하원의장과 네 명의 부의장에게 병풍과 자개 꽃병을 선물한 뒤 에르하르트 수상관저로 출발했다.
 
 12시20분, 에르하르트 수상관저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서독측 각료들과 함께 회담에 임했다. 이날 한국측에선 장기영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이동원 외무부 장관, 박충훈 상공부장관,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 최덕신 서독 대사가 참석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백영훈 통역관을 대동하고 에르하르트 수상과 단독회담을 시작했다. 경제학 교수출신의 루드비히 에르하르트 수상은 1948년 서독 경제장관이 된 후 경제부흥을 이룩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1963년 10월 이후 서독 수상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1958년 10월에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67세의 에르하르트 수상은 40분간 예정된 회담에 임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먼저 서두를 꺼냈다. '우리 한국도 서독과 마찬가지로 공산국가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공산국가들을 이기려면 경제가 번영해야 합니다. 내가 혁명을 한 이유는 정권을 탐해서가 아닙니다. 정치가 어지럽고 경제가 피폐해져 이대로는 한국이 소생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입니다. 경제를 재건해서 공산국가들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뿐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돈이 없습니다.'
 
 에르하르트 수상은 시가를 피우면서 '야(Yah)! 야!'하며 듣고 있었다. 통역하던 백영훈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에르하르트 수상은 자신에게 하소연하고 있는 스무살 아래의 박대통령을 연민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박정희의 '하소연'은 계속됐다.
 
 '사실 우리가 서독을 방문한 목적은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서독의 경제 발전상을 배우기 위한 것도 있지만, 돈을 빌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군인들은 거짓말을 못합니다. 돈을 빌려 주시면 그것으로 국가 재건을 위해 쓰겠습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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