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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도 세일즈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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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 12월11일 박대통령 일행은 베를린 공과대학을 방문한 뒤 지멘스 공장, A.E.G(Allemeine Elektrsche Gesellschaft) 전기공장, 독일개발협회를 방문-시찰했다. 이날 박대통령은 철강 산업의 실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박대통령을 공장으로 안내한 지멘스의 브레마이어 소장은 '각하, 철강이 없으면 근대화가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했다. 박정희는 브레마이어에게 '저건 짓는데 얼마나 듭니까' '저건 어떤 용도로 운영됩니까' 등등 상세하게 질문을 했다.
 
 오후 5시경, 박정희는 독일 개발협회 시찰을 마치고 나오다 순간적으로 휘청거렸다. 박종규경호실장이 박대통령을 부축했다. 28시간의 불편한 비행, 그리고 방독 5일째까지 거의 휴식없는 강행군으로 누적된 피로 때문이었다. 숙소로 돌아온 박정희는 이날 밤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주치의 지홍창박사가 절대 안정을 요구했지만 박대통령은 장기영부총리와 박충훈장관을 방으로 불렀다. 박정희는 두 사람에게 '기간산업을 발전시키려면 제철공장 없이는 안되겠더구먼. 우리도 제철공장을 지어야겠소. 돌아가면 제철공장 건설계획을 세워 보고하시오'라고 지시했다.
 
 12월12일, 박정희는 전날의 피로를 회복한 듯 밝은 모습으로 아침을 맞았다. 그는 방독 여정의 최종 기착지 뮌헨으로 가기 위해 베를린 공항으로 나갔다. 오전 10시20분발 예정의 전세기는 기상조건이 악화되어 3시간 뒤에 출발했다.
 
 기내에서 점심을 든 박대통령은 오후 2시30분경 뮌헨 리임 공항에 도착했다. 바이에른 주지사 고펠 부부와 주정부요인들이 영접을 나왔다. 뮌헨의 교포와 유학생 백여명은 '박대통령 환영'이란 플래카드를 들고 나왔다. 그들 옆으로는 한국인 태권도 사범이 이끄는 독일인 제자들이 태극기를 그린 커다란 종이를 펼쳐들고 환영했다. 박대통령은 고펠 지사의 안내로 뮌헨의 비어야레스자이텐 호텔(Hotel Vierjahreszeiten)에 들렀다. 이날 오후 4시부터 호텔에서 유럽- 아프리카 공관장회의가 열렸다. 휴식할 틈도 없이 박대통령은 이 회의에 참석했다.
 
 30대인 이동원외무장관이 주재한 이날 회의 참석 대사들 가운데는 박정희의 군선배들이 많았다. 1964년 여름, 이동원 외무장관이 임명된 직후 국내 언론들은 정부가 직업 외교관이 아닌 장성급 출신의 군인들을 대사로 임명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삼았다. 이장관도 '민간 외교관으로 교체해야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말을 했었다.
 
 이 발언에 격분한 군수뇌 인사들이 이장관을 불러다 놓고 '혁명은 누가 했는데… 군인이 민간 외교관보다 못하다는 이유를 대라'고 다그치기도 했었다. 뮌헨에서 공관장 회의가 열리기 직전에 박대통령은 이동원 장관에게 '거, 좀 잘 될 수 없을까'라면서 걱정했다.
 
 '각하, 양해만 해 주신다면 제가 오늘 몇 말씀 하겠습니다.'
 
 박정희가 이장관을 빤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좋소'라고 했다. 이날 공관장 회의에는 주영대사 이형근(육군참모총장 역임), 주불 백선엽 (육군참모총장 역임), 주이 이종찬(육군참모총장 역임), 주 스위스 이한빈, 주 스웨덴 유재흥(연참의장 역임), 주 제네바 정일영, 주 터키 최영희 (육군참모총장 역임), 주 모로코 신현준(해병대 사령관 역임), 주 브라질- 콩고 최문경, 주 우간다 김영주, 주 케냐 영사 안광호, 주 카이로 영사 강춘희가 참석했다.
 
 박대통령은 회의 벽두에 '경제외교'란 말을 사용하면서 대사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여러분은 외자 도입과 차관 획득과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데 사력을 다해야 할 임무를 띠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처지는 외교관이라 하여 형식과 양식과 체면만을 따지고 있을 형편이 못 됩니다. 여러분은 외교관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장사꾼이 된 각오로 경제외교의 사명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박대통령은 또 북한의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진출을 저지하는 데 노력을 해 줄 것을 당부했다. 박정희는 유럽-아프리카 공관장들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고 자리를 이동원 장관에게 넘긴 채 자신은 방으로 올라갔다. 이때부터 이동원 장관에게 몇몇 대사가 불만을 터뜨렸다.
 
 '대사를 민간 외교관으로 교체할 거라며? 군인들이 뭘 잘못했다고 교체하나?'
 
 이동원 장관은 공세적으로 반론을 펴기 시작했다.
 
 '자꾸만 군사정권이라 하시는 데 그건 5·16때고, 지금은 민간정권입니다. 이 정권은 국민이 선거로 뽑은 정권이지 한강 넘어온 군인들이 세운 정권이 아니잖습니까.'
 
 '각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이제부터 저는 여러분들의 성적을 매기고 승진 여부를 결정짓겠습니다. 기준은 세일즈 성과입니다. 돈 빌리는 것도 재주입니다. 빌린 돈도 내 돈입니다. 나라를 위해 돈도 많이 빌려 오십시오. 성적에 포함됩니다.'
 
 박정희는 이장관에게 공관장회의를 주재토록 한 뒤 방으로 올라와 책상 앞에 앉았다. 그는 수첩을 꺼내 소감을 적기 시작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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