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 소감
베를린 장벽 소감
1964년 12월10일 낮, 함보른 광산회사를 떠난 박정희 대통령 일행은 데마크 제철회사를 방문한 뒤 석탄·제철 공업의 중심지인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의 주지사 마이어스 부부가 주최한 오찬에 참석했다.
박대통령은 이날 오후 4시15분 뒤셀도르프 근처의 로오하우젠 비행장에서 팬아메리칸 항공사 소속의 베를린행 여객기를 타고 약 한 시간 반 뒤 북 독일 평원지대에 자리한 서 베를린시 템펠호프 공항에 도착했다.
서베를린은 2차대전 후 소련이 점령한 동독(독일민주공화국)에 둘러싸여 지리적으로 서독(독일연방공화국)과 격리되었다. 동독 주민들은 낮에는 서베를린 지역으로 건너와 일을 하고 저녁이면 동독지역으로 돌아가곤 했다. 빌리 브란트(뒤에 독일 수상 역임)가 서베를린 시장으로 재임중이던 1961년 무렵 동독 당국은 주민들이 서베를린을 통해 탈출하는 일이 잦아 인구 공동현상이 심화됐다. 체제 붕괴의 위험을 느낀 동독 당국은 1961년 8월20일 일방적으로 총연장 50km의 콘크리트 장벽을 세웠다(이 장벽은 1989년 11월9일 밤에 무너졌다). 이때 빌리 브란트 시장이 '내가 저 장벽을 꼭 허물고야 말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공항에서 박대통령은 브란트 시장의 '베를린의 문제점과 업적을 보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는 환영사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나는 오늘 정신적으로 자유 베를린의 한 시민이 된 기분으로 이곳을 찾아 왔을 뿐입니다. 나는 조금 전에 동독 상공을 지나면서 바다와 같이 캄캄한 동독을 내려다보고 북한에 있는 우리 동포들의 처지를 생각했습니다. 오늘의 베를린은 여러분만의 도시나 또 독일만의 베를린도 아닐 것이며, 온세계 자유애호국민들의 정신적인 도시입니다. 기아와 공포의 공산주의 광야속에서 자유와 부흥의 불꽃이 활활 타고 있는 베를린의 존재는 오늘날 자유승리의 상징이며 공산주의 미신을 깨우치는 복음의 불꽃이 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베를린과 판문점의 비극이 끝날 날이 가까워졌습니다. 우리는 비극의 종결만이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영구화할 수 있는 것이며, 끝까지 뭉쳐 전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공항의식이 끝난 뒤 캠핀스키 호텔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베를린 시청을 방문했다. 빌리 브란트 시장은 '용감한 국민의 용감한 대통령을 맞아 기쁘다'는 요지의 인사를 했다.
박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우리는 그 때 국기없는 승리를 했다'고 말했다. 박대통령은 빌리 브란트 시장과의 만찬을 끝으로 베를린에서의 첫 날을 마감했다.
다음날인 12월11일 쌀쌀한 겨울 아침이 시작된 베를린에서 박대통령은 독일 기업인들과의 조찬을 가진 뒤 베를린 장벽을 시찰했다. 박정희는 롤프 슈베들러 베를린 시 주택건설부 장관의 안내로 포츠담 광장에서 목제 전망대에 올랐다. 장벽 너머의 동베를린 소련 점령지구는 총을 멘 경비병만 간간이 보일 뿐 2차대전 당시 전화를 입은 흔적이 그대로 남은 건물들만 덩그렇게 서 있었다. 민간인들의 왕래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박대통령은 적막에 쌓인 동독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곁에서 지켜본 통역관 백영훈 교수는 '방독기간중 박대통령의 표정이 가장 심각한 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박대통령은 동독 지역을 한참 지켜본 뒤 돌아서서 수행기자들에게 소감을 말했다.
'나는 오늘 북한을 보았습니다. 한국에서는 결코 북한을 볼 수 없으나 오늘 동베를린을 통하여 북한을 보았습니다. 이곳은 자유 베를린 시가 평화와 자유를 위해 얼마나 수고했던가를 역력히 나타내 주는 곳입니다. 자유 베를린의 이런 노력은 공산주의라는 미신을 타파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그 공은 영원히 빛날 것이며, 승공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박대통령은, 1962년 8월 서베를린으로 장벽을 넘어오다 동독 인민경찰의 총을 맞고 장벽 아래에서 3시간여 동안 신음하다 숨진 동베를린 건축공 페터 페히터군의 묘 앞에서 헌화했다.
오전 11시. 박대통령은 '자유 베를린 공과대학'을 방문했다. 파울 힐리비 총장은 1천여 명의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는 전기 공학부 강의실로 박대통령을 안내했다. 박대통령이 단상에 오를 때 서독 학생들은 박대통령을 환영한다는 표시로 책상을 쾅 쾅 두드리며 우-하는 소리를 질렀다. 순간 박대통령의 표정이 굳어졌다. 국내에서 학생데모로 계엄령까지 펴야 했던 박대통령은 베를린 공대 학생들의 환영의 표시를 저항의 표시로 오해했다. 파울 힐리비 총장의 소개가 있자 서독 대학생들이 다시 한번 책상을 쾅 쾅 치며 환호했다. 야유를 받는다고 생각한 박정희는 불쾌한 표정으로 연설문을 읽기 시작했다.
'… 이와같은 기회를 마련해 주신 학교 당국에 대해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연설 도중 첫 대목이 끝나자 다시 학생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책상을 치며 고함지르는 독일 학생들과 눈이 마주친 박정희는 그만 맥이 풀렸다. 박정희는 연설문의 다음 문장을 찾지 못한 채 즉흥 연설을 시작했다. 통역하던 백영훈 교수는 진땀을 흘렸다. 즉흥연설 중 박정희는 독일 학생들이 좋아할 이야기를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은 내가 평소에 기대하고 희원하던 이 나라의 과학문명의 본산입니다.'
학생들이 다시한번 책상을 치며 발을 굴렀다. 이 모습을 찬찬히 보던 박대통령은 그제서야 학생들이 자신을 환영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박정희는 연설문 원고를 훑어보더니 중단된 부분을 찾아내 읽기 시작했다. 이날 박정희는 학생들의 환호에 십 수번이나 연설을 중단하곤 했다. 연설이 끝난 뒤 단상을 내려오던 박대통령은 백영훈 교수의 팔을 툭 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백교수. 거, 얘기 좀 미리 해주지…'
박정희의 얼굴엔 함박웃음이 터질 듯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