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내의 명상-50명만 치우면?
기내의 명상-50명만 치우면?
박대통령은 10일에 걸친 서독방문을 끝내고 귀국하는 루프트한자 기내)에서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들을 내려다보면서 방독여정중 속으로 다짐했던 결의를 곱씹고 있었다.
선우련 서울신문 기자가 옆자리로 오자 대통령은 힘주어 말했다.
'우리도 돌아가면 건설을 해야지. 국민의 피와 땀이 어린 독일의 재건상을 보고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소. 우리도 기적을 바라지 말고 피와 땀으로써 조국을 건설합시다'
서독신문들로부터 '아시아의 프로이센인'이라 불렸던 박대통령은 자신의 말에 스스로 흥분하여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설사 야당과 국회가 반대하더라도, 심지어 공화당안에서 협조하지 않더라도···'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당시 조선일보 편집국장이던 소설가 선우휘의 동생 선우련은 이런 말을 했다.
'세상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대통령께서 잔정이 너무 많으셔서 무슨 일을 결정하셨다가도 반대 의견을 들으시면 당장 그쪽으로 기울어버린다고요….'
채 말이 끝나기 전에 대통령이 답했다.
'알고 있어요. 날더라 우유부단이라고 하더군요. 정치를 하려니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공화당 안의 어떤 인사를 불러 정책에 관한 이야기를 몇 마디 하면 밖에 나가서는 과장되게 전한단 말이예요. 그러면 의견이 다른 사람은 토라지거든요. 그래서 다음 번엔 그 사람을 불러 타이르면 이 사람도 밖에 나가자마자 얼토당토않게 보태서 떠들어댄단 말이야. 마치 내가 이미 내린 결정을 뒤바꿀 정도로 자신을 신임한다는 듯이. 왜 그렇게 여당 안에 이견들이 많은지….'
잠시 섭섭한 표정을 짓던 박대통령은 억양을 높였다.
'두고보시오. 이번에 돌아가면 단호히 일을 처리할거요. 주류고 비주류고 가릴 것이 없습니다. 옳은 일이라면 누가 뭐래도 전진할 따름입니다. 어느 나라 자본이라고 괜찮습니다. 운영만 잘 하면 탈이 안날 게 아니오. 외국자본을 들여다가 우리 국민들을 살려놓고 봐야겠습니다.'
박대통령은 전후 폐허에서 다시 일어난 서독의 경제부흥을 직접 목격하고 돌아오는 여객기 안에서 조국 근대화의 집념을 다짐할수록 우리나라 정치, 특히 여당내의 분열상이 이런 전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느꼈다. 박상길 대변인의 회고록('나와 제3,4공화국')에서도 선우련과 비슷한 증언이 실려 있다.
박충훈 상공부장관이 박상길과 한담을 하다가 생각에 잠겨있는 앞자리의 대통령을 향해서 큰 소리로 말하더란 것이다.
'각하, 박대변인이 우리 박씨 종중 이야기를 하는데 각하는 둘째 분의 작은 집이라십니다.'
대통령은 싱긋 웃고는 말이 없었다. 대통령은 한참 있다가 박대변인에게 곁으로 오라는 눈짓을 했다. 옆자리에 다가앉은 박대변인을 두고 한동안 창밖을 내다보던 대통령은 고개를 앞으로 묻는 양으로 목소리를 푹 낮추더니 말했다.
'이번에 내가 돌아가면 그 시끄러운 놈들을 몽땅 좀 치워야겠소. 대체 몇 놈이나 치우면 당이 조용해지겠소?' '……' '내 생각으론 한 50명 가량만 치우면 될 듯싶은데…?'
자유당 시절 국회의원을 지낸 박상길은 조심조심 말했다.
'각하, 저와 몇 사람이 4·19 전에 이승만 박사에게 시한부로 한 50명쯤 당장 치우면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고 건의를 하려다가 실패한 일이 있습니다. 그게 쉽겠습니까?' '아니오. 이번엔 꼭 해치워야겠소. 돌아가는 대로 대강 대상을 추려 나에게 알려주시오'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무심한 비행기는 그냥 엔진소리만 웅장했고 일행은 화색이 만면한 가운데 정담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저 어른이 이 방독의 여세를 몰아 오랜 기간 자신을 괴롭힌 거치적거리를 몽땅 쓸어버리려 하는 게 분명하다. 될 수 있을까, 해서 좋을까. 그것은 또 하나의 혁명을 말한다. 그렇게 해서 이 나라의 정계를 근본적으로 쇄신하고 새로운 토양 위에 새 시대의 밭을 일굴 수가 있을까. 5·16을 한 분이 한다면 할지도 모른다. 여당은 일단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치자. 야당권은 방법이 없지 않은가. 야당권의 생태가 그대로 있는 한 한국의 정치는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5·16 혁명으로도 실패했던 일이 아닌가>
박대통령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던 한국적 정치생리의 일대개혁을 시도한 것은 그로부터 8년이 흐른 뒤였다.
1964년 12월15일 저녁 7시 루프트한자기는 한국상공에 이르렀다. 어둠이 한동안 계속되더니 도시의 야경이 나타났다. 어느 기자가 '저기 세종로가 보인다'고 소리쳤다. 서울의 야경만은 적어도 이 여객기가 거치고 온 국제도시들에 비해서 뒤지지 않았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