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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 외상의 낮술
  시나 외상의 낮술
 
 시나 외상의 낮술
 
 일본 외무장관으로서는 최초의 공식방한. 시나 외상을 맞은 1965년 2월17일의 김포 공항에선 이변이 하나 있었다. 67세의 시나가 서른살 가량 아래인 이동원외무장관의 안내를 받으면서 의장대를 사열하는데 기미가요(일본 국가)가 나와야 할 대목에서 아리랑이 흘러나오는 게 아닌가. 대통령이 일본 국가의 연주를 허락한 것으로 알고 있었던 이장관은 속으로 '각하가 허락하셨는데… 마음을 바꾸었나'하고 생각했다. 이 일은 별 말썽없이 지나갔고 그날 저녁의 워커힐 만찬장에서는 기미가요가 연주되었다.
 
 이장관과 함께 승용차에 타고 숙소인 조선호텔로 들어오는 차중에서 시나는 말이 없었다. '도쿄에 비해서 서울은 깨끗하고 조용하군요'라고 한 마디 했을 뿐이다. 차가 조선호텔에 거의 당도했을 때 시위군중 속에서 던진 계란이 차체에 맞았다. 이동원은 서툰 일본어로 말했다.
 
 '놀라실 것 없습니다. 이건 환영의 표시입니다. 아마 증오의 표시였다면 총을 쏘았을 겁니다.'
 
 시나는 유쾌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독백처럼 '환영 제스처 치고는 좀 지나친데…'라고 말했다.
 
 다음날 박정희대통령은 청와대를 방문한 시나 외상 일행을 맞아 30분간 요담했다. 박대통령은 '일본이 먼저 과거사에 대한 한국민의 감정을 이해하고 손을 내밀어 납득이 갈 만한 성의표시를 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박대통령은 스무살 가량 많은 시나를 앞에 두고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다. 그가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장교양성 기관 만주군관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있던 생도시절 시나는 만주국의 산업부 국장이었다. 그는 만주국 총무처 차관으로서 괴뢰국을 조종하던 기시 노부스케(안신개·뒤에 일본수상 역임)와 함께 군국주의 일본이 만주에 파견한 대표적 엘리트였다. 그는 전후 '동화와 정치'란 책을 썼는데 이런 대목이 있었다.
 
 <일본이 대만, 조선, 만주를 합방, 경영한 것이 제국주의라고 일컬어진다면 그것은 영광있는 제국주의이다.>
 
 그런 그가 과거를 반성하고 사과하는 사절로 박대통령 앞에 선 것이다. 박대통령은 야망가와 음모가들이 몰려들던 '동양의 서부' 만주에서 질풍노도의 시대를 같이 호흡했던 사람들끼리 갖는 편안한 신뢰감 같은 것을 시나로부터 받았던 것 같다.
 
 박대통령은 시나 일행에게 점심으로 한정식을 대접했다. 시나 외상은 젓가락으로 밥을 맛있게 퍼먹는데 쩝쩝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덕택에 긴장된 분위기가 풀렸다. 시나가 도중에 정색을 하고 말했다.
 
 '각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예, 말씀해 보시지요.' '저, 밥이 참 맛있습니다. 한 그릇 더 먹을 수 있겠습니까.'
 
 거물 정치인 시나의 소탈한 언동을 계기로 한일 양측 인사들은 속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각하, 한일간 음식 풍속엔 닮은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확실히 가까운 나라임이 틀림없습니다.' '인종적으로도 아마 가까울 겁니다.'
 
 '일본 정계에서도 사실은 한국계 혈통이 많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기시나 후쿠다는 자신의 조상들이 한국계인 것 같다고 저에게 귀띰한 적도 있습니다. 도조(동조)내각의 도고(동향)대신도 공공연히 자신은 조선인이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화기애애한 점심이 끝난 후 외무부 회의실에서는 제1차 외무장관 회담이 있었다. 쟁점은 한일간 기본조약에서 규정할 대한민국의 관할권과 구 조약의 무효시점 문제였다. 한국측은 한일합방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때와 그 이전 한일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은 무효라고 못박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일합병 자체가 불법이므로 그에 따른 일제의 한국통치도 불법이란 의미를 내포한 문구였다. 이에 대해 일본측은 '일본과 한국 사이에 체결된 조약의 무효는 일본의 패망을 명문화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기점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사실 그대로 놓아두겠다는 속셈이었다. 이는 일제 통치에 대한 일종의 역사관 논쟁이므로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일본측은 또 대한민국의 관할권 범위를 '휴전선 이남지역으로 본다'는 의미의 문구를 명기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우리는 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일본측은 또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란 대목 앞에 '1948년 12월18일 유엔의 한국 관계 결의에 따라서'란 수식어를 넣자고 했다. 일본은 빠지고 유엔의 판단을 소개하는 식의 문구였다. 북한당국을 반국가단체 또는 괴뢰로 보는 우리와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일본의 입장 차이가 있었다. 한국의 역사적, 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이견이므로 쉽게 좁혀질 수가 없었다.
 
 이동원 장관은 실무자들에게 회담을 맡기고는 시나 장관을 데리고 장관실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잡담을 하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갔다. 시나가 엉뚱한 제안을 했다.
 
 '저, 부탁이 있는데… 우리 술 한잔 합시다.' '예?'
 
 놀란 이장관이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이자 이와세(암뢰) 비서관이 재빨리 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그는 가방을 열더니 나폴레옹 꼬냑 병을 탁자 위에 내어놓았다. '숙달된 조교'의 행동이었다. 회담장을 이탈한 두 나라 외무장관은 낮술을 즐기고 있었다. 직업외교관이 아니란 공통점이 있는 두 사람의 이런 파격성은 한일국교정상화 같은 난관을 돌파하는 데는 모범생들의 상식적인 행동보다 더 효과가 있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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