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사과
공식 사과
삼성물산의 이병철 사장은 이 무렵 울산에 지을 한국비료 공장에 대한 차관 교섭을 위해 일본에 와 있었다. 김동조 대사가 어느날 이사장을 찾아와서 물었다.
'지금 대일 청구권은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상업차관 1억달러로 이야기가 되었는데 이중 무상 3억을 6억으로 늘리면 어떨까요.'
'무상을 늘리는 것은 일본의 외환사정을 감안하면 어려울 겁니다. 상업차관은 일본이 상품을 팔고 이자까지 받는 것이므로 교섭하기에 따라서는 증액이 가능할 겁니다.'
김대사는 '나는 우시바(당시 일본 외무성 심의관, 한일회담 차석 대표)씨에게 부탁을 너무 많이 했으므로 이사장께서 교섭을 좀 해주시지요'라고 했다. 이병철은 김대사, 우시바, 그리고 한국은행 도쿄지점장 김봉은과 함께 복요리로 유명한 후쿠겐이란 음식점에서 만났다. 그런데 골프를 치느라고 일행은 예약시간보다 한 시간이 늦었다. 음식점 현관에 들어서니 주인이 화를 냈다. 복요리는 시간이 맞아야 한다.
예약시간에 맞추어 요리를 해놓았는데 한 시간이나 늦었으니 제맛이 나지 않게 되었다고 주인은 안타까워했다.일본제일의 복요리사한테서 야단을 맞은 네 사람은 멋적은 표정이 되어 방으로 들어갔다. 주인이 따라 들어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더니 이렇게 사과했다.
'제가 복요리를 하는 것은 돈을 벌자는 목적 이외에 최고의 맛을 손님들에게 서비스하자는 데 있습니다. 시간이 맞지 않아 제맛이 안나는 것이 억울합니다. 네 분이 보통손님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 자리에서 우시바는 이병철 사장의 제안을 듣고 난색을 보였다. 이사장은 '일본으로서는 한국, 인도, 파키스탄 가운데 어느 쪽이 소중하냐'고 물었다. 우시바가 '그야 물론 한국이지요'라고 하자 이사장은 '인도와 파키스탄에 대한 상업차관 공여액이 얼마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우시바는 '조사해보고 내일 알려주겠다'고 했다. 다음날 우시바로부터 이병철에게 연락이 왔다. 인도에 대한 차관공여액은 5억5000만달러라는 것과 대한상업차관 증액문제는 잘 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병철은 돌아오는 대로 박대통령, 정일권 총리, 장기영 부총리를 만나 그 전말을 알리고 꼭 실현시켜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정부는 상업차관의 증액보다는 유상자금 2억달러에 대한 이자를 낮추어 달라는 교섭을 하게 되었다. 이병철은 이것이 소탐대실이었다고 회고록에서 개탄했다. 우시바도 이병철에게 '일본 같으면 경제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만 한국에서는 매사를 관리들이 결정한다'고 비판하더란 것이다.
한일양국이 회담의 타결을 향한 돌파구로 생각한 것은 1965년 2월17일로 예정된 시나 외상의 방한이었다. 일본 외상이 공식적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양국은 또 서울에서 있을 양국 외무장관 회담에서 기본조약 부문에 합의, 가서명함으로써 국교정상화의 조기타결을 기정사실로 만드는 극적인 연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국무회의에서는 김포공항에 일본국기를 게양하고 국가를 연주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있었다. 국무회의 전에 정일권총리와 김형욱 정보부장이 장관들을 상대로 설득을 했음에도 다수가 반대했다. 장기영부총리, 양찬우 내무, 김성은 국방 정도가 찬성했다. 박대통령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고만 있었다. 이동원 외무장관이 강경하게 발언했다.
'국민감정이 무섭다고 외교 관례를 무시하면 이건 국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대외적으로도 국민여론에 정부가 끌려간다는 인상을 남기면 외교에도 지장이 생깁니다. 아무리 국민이 그렇다고 해도 국가는 체통을 지켜야 합니다. 일장기를 걸고 기미가요를 연주해야 합니다.'
박대통령은 묵시적으로 이동원장관 편을 드는 것 같았다. 이장관은 야당인 민정당에서 낸 시나 방한반대 집회도 허가해주자고 윤치영 서울시장에게 건의했으나 윤시장은 거절했다고 한다.
'이건 정치가 아닌 예절의 문제요. 어떻게 건국 이래 처음으로 찾아오는 일본 요인을 시위대와 부딪치게 할 수 있습니까. 난 절대 허가할 수 없어요.'
2월17일 오전 JAL(일본항공)기편으로 김포공항에 내린 67세의 시나 외상은 도착 성명 문안을 잃어버려 호주머니를 뒤진다고 기내에서 3분을 지체했다. 계단을 내려올 때는 구두끈도 매지 않은 상태였다. 그가 읽은 도착성명의 핵심은 다음 대목이었다.
'일한 양국은 예로부터 일의대수의 인국으로 사람의 교류는 물론 문화적이나 경제적으로도 깊은 관련이 있었으나 양국간 오랜 역사중에 불행한 시간이 있었음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로 깊이 반성하는 바입니다.'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일제 식민통치에 대해서 사과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시나 외상의 방한 전날 우시로쿠 아주국장은 외무성 출입기자들에게 도착성명문을 돌린 다음 의견을 들어보았다. 기자들의 반응은 '사과를 하려면 보다 확실히 하고 하지 않으려면 한 마디도 하지마라. 이렇게 어중간해선 오히려 역효과가 나겠다'는 것이었다. 선발대로 먼저 서울에 가 있던 외무성의 마에다 조사관도 문안을 읽어보고는 '사과의 뜻을 더 확실히 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해왔다. 우시로쿠 국장은 '깊이 반성하는 바입니다'라는 말을 덧붙인 다음 문안을 시나 외상에게 가져갔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해야지.'
시나는 아주 간단하게 받아주었다. 김동조 대사도 막후에서 일본측에 대해 강력한 사과문구를 포함시키도록 설득하느라고 무진 애를 썼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