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슨의 방미초청
존슨의 방미초청
시나외상은 맞은편의 이동원장관에게 '어떻게 할 수 없을까…'라고 말을 흐렸다.
'이장관, 이번 교섭이 실패하면 일한회담은 또 몇년 늦어질 것입니다. 이장관이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차례요.'
이장관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대신께서는 저의 부친보다도 연장자이십니다. 저같은 어린 나이의 인간도 목숨을 걸고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일본안에만 집착하십니까. 생각을 다시 해봅시다.'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데.'
이동원 장관은 방을 나서서 연하구 국장을 찾았다. 연국장과 우시로쿠국장은 문밖에서 두 장관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직업외교관인 두 국장은 외교경험이 적은 두 장관을 걱정하고 있는 눈치였다.
이장관은 연국장을 향해서 '연구해 보았는가'라고 물었다.
'예, 무리는 좀 있습니다만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갖고 들어오시오.'
이장관은 연하구 국장이 가져온 메모를 시나 앞에 내놓았다. 일본측은 '대한민국의 관할권은 휴전선 이남에 한정된다'는 부분을 포기하고 한국측은 '국제연합의 결의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란 문안에 동의한다는 절충안이었다. 시나는 우시로쿠와 의논하더니 '이 정도라면 본국에 설명이 되는데…'라고 반응했다.
'좋아요. 본국측에 대한 설득은 내가 책임을 질테니 귀하도 한국측을 책임지세요.'
시나가 너무 적극적으로 나오자 이동원은 한 발 물러섰다.
'안됩니다. 대통령의 양해를 얻지 못하면 안됩니다.'
이렇게 하여 양측은 상부의 재가를 얻은 다음 시나가 귀국하는 이날 오후에 기본조약 가조인식을 갖기로 했다. 당시 한일간의 국제전화는 사정이 좋지 않았다. 일본측은 한국군과 재일미군 사이의 군용전화선을 이용하기로 하고 오전 6시부터 30분 간격으로 총리, 자민당 부총재, 간사장, 외무차관에 연결시켜줄 것을 부탁하고 헤어졌다. 이미 시계는 1965년 2월20일 새벽 2시를 넘고 있었다.
이장관은 청와대로 가서 진해의 박정희 대통령 숙소로 전화를 걸었다. 박 대통령은 자지 않고 이장관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장관에게 합의한 문안을 읽어보라고 했다.
'어떻게 생각해?' '이 정도라면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나 외상은 뭐라고 하던가.' '그분도 일본 국회에서 설명할 수 있겠다고 했습니다.'
'좋아, 그대로 하게.'
이날 아침 시나 외상은 사토 총리에게 합의사항을 보고했다. 사토는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재가했다. 1951년에 한일회담이 시작된 이래 14년만에 드디어 국교정상화의 돌파구가 열린 순간이었다. 20일 오후 2시 외무부 회의실에서 연하구와 우시로쿠 국장 사이에 가조인된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은 7조로 되어 있었다. 쟁점이 되었던 2, 3조는 이렇게 확정되었다. 제2조='1910년 8월22일 또는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일본제국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 제3조='대한민국 정부가 국제연합 총회 결의 제195호에 명시된 바와 같이 한반도에 있어서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확인한다'.
한일간 외무장관 회담이 서울에서 열리고 있던 2월19일 사이공에서는 또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 1963년 가을 고딘디엠 대통령이 쿠데타로 무너진 이후 여덟번째의 쿠데타였다. 타오 대령이 주미월남대사 키엠 장군을 업고 일으킨 이 쿠데타 기도는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장 구엔 칸 장군을 지지하는 부대가 사이공을 탈환함으로써 이틀만에 실패로 끝났다.
베트콩의 공세가 강화되고 미군의 월맹폭격이 연일 계속되는 가운데서 2월25일 비둘기 부대 약 2000명이 사이공항에 도착했다. 박대통령은 본격적인 전투부대 파견의 교두보를 만든 것이다. 1965년 1월14일 김형욱 정보부장은 김현철 주미대사와 함께 백악관을 찾아가 국가안보회의 간부 체스터 L. 쿠퍼와 만났다. 김부장은 '박대통령은 (월남문제와 관련하여) 존슨 대통령이 요청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기꺼이 협조할 생각이다'라고 본심을 털어놓았다.
브라운 주한 미국대사는 2월22일 박대통령에게 존슨 대통령의 방미 초청장을 전달했다. 박대통령 부처가 오는 5월17-18일 국빈으로서 워싱턴을 방문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초청의 가장 큰 목적은 한일국교정상화 회담과 관련하여 양국의 관심사를 논의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나중에는 전투부대의 파월이 새로운 의제로 추가된다.
3월4일 김현철 대사는 백악관에서 쿠퍼를 다시 만났다. 그는 시나 방한 후의 한일회담 진전상황에 대한 문서를 전달한 뒤 이렇게 떠보았다.
'한국이 전투병력을 월남에 파병하겠다고 제의한다면 미국은 관심을 가질 것인가.'
쿠퍼는 '우리는 아직 제3국의 병력을 사용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