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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각 심야 담판
  청운각 심야 담판
 
 청운각 심야 담판
 
 1965년 2월18일 서울에서 있었던 이동원-시나 한일외무장관 회담은 대한민국 정부의 관할권과 구조약 문제를 놓고 팽팽한 입장 차이만 보이고 별 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날 밤 우이동의 요정 선운각에선 양측 대표들 사이에 만찬이 있었다. 시나는 밴드가 한국유행가를 연주하자 가만히 듣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중국노래도 들어보았지만 이처럼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소. 역시 우리 두 나라는 역사의 밑바닥에 깊은 무엇이 흐르고 있는 게 분명하오.'
 
 시나는 만찬을 파하고 헤어지기 전에 이장관에게 '조용한 데서 이야기할 게 있다'고 붙들었다. 별실에서 시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변하더니 '이장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이름)는 어떻게 할 작정이오? 사토 수상의 특별지시도 있었어요. 외무성의 증거서류를 보면 다케시마는 분명히 일본영토인데…'라고 했다.
 
 '우리에게도 대마도가 우리 땅이란 역사자료가 있습니다. 그러면 대마도와 독도를 바꾸지요.'
 
 대화는 싱겁게 끝나버렸다. 다음날에도 외무장관 회담을 양측 실무자들에게 맡겨놓고 이동원, 시나는 장관실에 앉아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시나가 불쑥 말했다.
 
 '난 오늘 아침 영자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내가 나를 물러가라고 데모를 벌이고 있었으니….' '예?' '거, 조선호텔 앞 시위 사진 말이오.'
 
 야당인 민정당의 당수 윤보선 전 대통령이 시나 외상과 닮은 점을 두고 한 말이었다. 이틀 전 환영만찬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자 시나는 '내가 (윤보선 전대통령보다) 한 살 아래이니 동생이군요. 그런데 우리는 같은 조상님을 둔 것이 아닐까요?'라고 해서 웃겼다.
 
 19일의 외무장관 회담도 실무자들 사이에 진전없이 끝났다. 구 조약 폐기의 시기 문제는 의견 접근이 가능해졌다. 한일 양측 사이의 구조약은 '이미 무효'란 의미로 'already(이미)'를 문장에 삽입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양국간 모든 조약의 무효 시점으로 하자는 일본측과 1910년의 한일합병을 기점으로 하자는 한국측의 주장을 절충한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관할권 문제에 있어서는 진전이 없었다. 일본측은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임을 유엔 결의를 빌어 인정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그 관할권은 휴전선 이남에 한정된다는 조항을 넣으려고 했다. 한국측은 이를 전면 거부했다. 다음날이면 시나가 귀국하게 되어 있었다. 사토 수상 등 일본정부 수뇌부도 '무리하게 굳이 합의볼 필요가 없다'는 자세였다고 한다.
 
 이동원 장관은 오후 다섯 시쯤 청와대로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가 보고했다.
 
 '각하, 구조약 문제는 우리가 양보할 수도 있는 사안이지만 관할권 문제는 국기와 관계되는 일이니 만큼 양측이 모두 완강합니다. 그러나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박대통령은 언짢은 표정을 짓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내뱉듯이 말했다.
 
 '마음대로 해. 나는 머리 좀 식히려 진해에 갔다올테니. 내가 임자를 외무장관에 임명할 때 분명이 말한 것이 있잖아. 한일회담은 임자에게 일임하겠다고. 그러니 임자 책임 아래서 최선을 다해봐.'
 
 이날 저녁 조선호텔에서는 시나 장관이 주최하는 만찬이 열렸다. 장기영 부총리가 이동원 장관에게 다가오더니 걱정을 해주었다.
 
 '회담이 잘 안되는 모양이지. 야단인데, 그게 잘 되어야 우리 경제도 소생할텐데. 이판사판으로 밀어붙여 봐. 일단 저질러놓고 보는 것 있잖아.'
 
 이장관도 이날 밤에 승부를 내기로 결심을 한 터였다. 그는 시나 장관에게 '우리끼리 조용한 데 가서 술 한잔 더 합시다'라고 했다. 이장관, 김동조 주일대사 겸 한일회담 수석대표, 외무부의 연하구 아주국장, 그리고 시나와 우시로쿠 아시아국장이 요정 청운각으로 향했다. 밤 10시를 넘어서였다.
 
 일행이 대청에 올라서는데 '아니, 여긴 웬 일이오?'라고 하면서 나타난 사람이 있었다. 육군중장 출신인 김종갑 국회국방위원장이었다. 김위원장을 따라 방에 들어가보니 정복차림의 군수뇌부가 회식중이었다. 이장관은 시나의 양해를 얻어 합석했다. 애주가인 시나는 늘 갖고다니는 나폴레옹 꼬냑을 꺼내 마셨다.
 
 한국말을 모르는 시나는 군인들과 이장관이 뒤엉켜 고성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지금 무슨 일로 싸우는 거요?'라고 묻기도 했다. 장군들은 두 외무장관에게 '두 분이 어떻게 하든지 이번 회담을 성사시켜주십시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절대 안됩니다'라고 부탁하고 있는 중이었다. 시나는 일본으로 돌아가 남긴 회고담에서 '장군들과의 조우는 박대통령이 회담성사에 압력을 넣기 위해서 꾸민 것이었다'고 썼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대좌한 두 장관은 배석한 사람들을 내보내고 결판에 들어갔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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