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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주의 심야방황
 박흥주의 심야방황
 
 정보부장 경호책임자인 장윤수 안전과장은 해병간부후보18기출신의 예비역 대령. 그는 퇴근하여 집에서 선친의 제사를 지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밤 8시50분쯤 안전원 홍성수가 전화를 걸어왔다.
 
 '궁정동에서 총성이 났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알아봐.'.
 
 밤9시10분쯤 홍성수가 다시 전화를 걸어와 '궁정동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았는데 별일이 없다고 합니다'고 했다. 장과장은 중앙청 근방 의 부장 경호차안에 있던 1조장인 김인수 대위에게 전화를 걸어 '이상 없나'고 물었다. '별 일 없다'는 것이었다. 전화기를 놓자마자 기획관 송웅익이 전화를 걸어왔다.
 
 '과장님, 궁정동 지역에서 총성이 있었다고 하고 데모가 벌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 도큐 호텔로 좀 나와주십시오.'.
 
 정신이 번쩍 든 장 과장이 부랴부랴 집을 나서 도큐 호텔 앞에 도착 한 것은 밤10시10분쯤이었다. 송웅익이 무전기, 권총, 기관단총을 자신 에게 하나씩 건네주면서 '박흥주 비서관의 지시에 따라 도큐 호텔과 서 울역에 안전원 한 명씩을 배치하고 군 부대의 이동사항을 감시하고 있 다'고 보고했다. 그 길로 장 과장은 남산으로 가서 비서실장 김갑수준 장방에 들렀다. 김 실장은 '아무 상황이 없다'고 태평이었다. 장 과장 이 자신의 사무실로 내려와 있는데 송웅익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육 군회관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밤10시40분쯤 장 과장은 육군회관에 도착하여 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흥주를 만나서 '어떻게 된 일인가'라고 물었다. 박 과장은 '데모사항 인 것 같은데'하면서 '그 이상은 나도 모르겠다'고 얼버무렸다. 밤10시 30분쯤 정보부장 차가 국방부로 옮기는 것을 따라갔다. 장윤수 과장은 국방부 주차장에 경호차를 세우고 그 안에서 세 명의 경호요원과 함께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대기하고 있었다.
 
 박흥주대령도 이날 밤 천당과 지옥 사이를 오고갔다. 박 대령은 김 재규와 정승화 총장을 모시고 궁정동을 나와 남산으로 달릴 때 차중에 서 김부장이 '어디로 가지, 부? 육본?'이라고 했을 때 정총장의 제의에 호응하여 부장을 육본으로 이끌고 가는 데 기여했었다. 그때까지만 해 도 박 대령은 부장과 총장이 미리 이야기가 다 되어 있다고 오해하고 있었다. 육본에 와 보니 '그게 아니구나'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겁 이 덜컥 난 박 대령은 부장 경호팀을 불러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육 본벙커에서 국방부로 옮겨가 부장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려고 애썼다.
 
 장관부속실에 앉아있을 때 한 장교가 큰 소리로 '국무위원을 수행하고 온사람들은 전부 나가주십시오'라고 했다.
 
 복도에서 서성거리던 그는 총리와 국방장관 등이 국군서울지구병원 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장관실로 들어가려다가 제지당했다. 부장의 현위치를 모른 채 복도에서 한 시간쯤 왔다갔다 하던 그는 국방부 주차 장으로 내려와서 정보부장 차에 타고 무작정 기다렸다. 김재규는 이날 밤마음만 먹으면 동원할 수 있는 경호요원들이 많았으나 혼자 따로 떨 어져서 고립되어 있었다.
 
 새벽2시를 넘어 장윤수 과장과 세 경호원들이 타고 있는 도요타 크라 운쪽으로 국방부 헌병중대장 이기덕대위가 접근했다. 김재규 연행작전 에 참여했던 그는 이제 경호원 무장해제작전을 시작한 것이다.
 
 '여기 제일 선임자가 누구십니까.'.
 
 자동문이 내려오더니, '뭐야'하는 위압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이기덕 대위는 일부러 어수룩하게 나왔다.
 
 '위에서 좀 보자고 하십니다.'.
 
 차중에 있는 사람들끼리 수군수군하더니 누군가가 '너가 가 봐'라고 했다. 덩치 큰 사나이가 내렸다. 이 대위는 그를 안내하여 국방부청사 2층에 있는 보안부대장 보좌관실로 갔다. 군무원이 무장해제를 시키려 고 했더니 이 사나이는 군무원의 손을 홱 뿌리치는 것이었다. 그 바람 에 군무원이 옆으로 쓰러졌다. 힘이 장사인 이기덕 대위가 사나이의 팔 을 잡았다. 사나이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방아쇠에 손이 걸려 있었고 노리쇠가 후퇴되어 있었다. 이 대위는 재빨리 자신의 왼손 엄지 를 상대방의 권총 노리쇠 안으로 끼운 뒤에 오른손으로는 자신의 권총 을 빼 사나이의 배를 쿡 쑤셨다.
 
 그러자 사나이는 손을 번쩍 들었다.
 
 이 대위는 헌병소대장 신영익 중위를 시켜서 같은 방법으로 경호차 에 타고 있던 두 경호원들을 불러들여 무장해제를 시켰다.
 
 네번째로 유인되어 온 사람은 박흥주였다. 이기덕 대위는 박 대령을 데리고 국방부총무과장 보좌관실로 갔다. 보좌관(대령)에게 인사를 시 키니'박 대령입니다'고 했다. 이 대위는 대령을 대위가 무장해제시킨다 는 것이 뭣하게 생각되어 보안부대장 김병두 대령을 모시고 왔다. 이 대위는 김대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장을 해제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순간적으로 박흥주의 손이 가슴으로 가는 것이었다. 이 대위는 재빨리 그의 손을 잡고 가슴을 뒤졌다. 작은 25구경 베레타 권총이 잡혔다. 탄 창,무전기도 압수했다.
 
 포기한 듯한 표정을 짓던 박흥주는 '차나 한 잔 달라'고 했다. 박 대령은 '일이 틀렸다'고 판단했다. 잠시 후 그는 슬며시 방을 나왔다.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부장 차를 타고 남산의 부장 비서실장실로 갔 다. 비서실장 김갑수 준장이 말했다.
 
 '전두환 장군이 박 비서관을 육군본부벙커로 보내라더군.'.
 
 박흥주가 사라진 것을 뒤늦게 안 보안사에 비상이 걸린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부장의 행선지가 궁금하시겠지만 저도 모르겠습니다. 부장이 혹시 저를 찾으실지 모르니 나가 있겠습니다.'.
 
 박 대령은 남산 정보부 청사를 나와 다시 부장 차에 올랐다.
 
 '어디로 갑니까.'.
 
 운전사 유석문이 물었다.
 
 '남산순환도로로 가세.'.
 
 순환도로를 거쳐 한남동의 한적한 주택가로 갔다. 큰 집들 사이에 차 를 세운 뒤에 한 시간 반쯤 눈을 감고 쉬었다. '심경이 착잡하여 잠시라 도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그랬다는 것이다. 새벽4시30분쯤 그는 다시 금호동으로 차를 몰게 했다. 박흥주 대령의 집은 차가 들어갈 수도 없는 언덕배기에 있었다. 언덕 밑에 차를 세우고 눈을 감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박흥주는 한 5백m를 단숨에 뛰어올라갔다. 대문을 두드렸다. 아내 가 나왔다. 아내가 대문을 열어주었으나 그는 들어가지 않고 선 채로 말 했다.
 
 '오늘 일이 있어 못들어가니 그냥 간다.'.
 
 아내는 놀란 표정으로 '아빠 무슨 일이에요'라고 했다. 박흥주는 더 말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대답도 하지 않고 부끄럼타는 소년처럼 달아 나듯이 차 있는 데로 뛰어내려왔다. 되돌릴 수 없는 어제가 되어버린 그 운명의 날 아침에 그는 국민학교 5학년생인 큰 딸이 학급 간부로 뽑혔다 고해서 볼에 뽀뽀를 해주고 준비물을 챙기는 것을 도와주고는 출근했었 다. (계속).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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