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대통령 전용기를 얻어 타고
미국대통령 전용기를 얻어 타고
1965년 5월16일 오후 박정희 대통령 부부와 수행원들은 존슨 미국대통령이 보내준 대통령 전용기 보잉 707에 몸을 실었다. 박정희는 외국대통령으로부터 비행기를 얻어 타야 하는 자신의 입장을 의식이라도 한 듯 김포공항에서의 출발인사에서 자주, 자립을 강조했다.
'다시는 빈곤과 굴욕이 없는 자주, 자립의 역량을 배양해야겠습니다. 이 기회에 한 가지 소신을 밝혀둘 것은 우리가 공짜라는 무상원조에만 지나치게 기대고 살아왔던 부끄럽고 낡은 과거로부터 크게 한 걸음 나아가 떳떳하게 빌려쓰는 장기차관도입 등의 호혜적인 국제협력에도 큰 노력과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서울을 떠난 지 한 시간이 지나 전용기가 일본 상공을 날고 있을 때 박정희-육영수 부부는 기상전화로 청와대를 불렀다. 육영수 여사와 큰딸 근혜양 사이엔 이런 대화가 오갔다.
'근혜니? 지금 무엇들 하고 있지?' '지만이와 근영이 데리고 놀고 있어요. 어머니 거기가 어디예요.'
'지금 막 일본 상공을 날고 있다. 잡음이 많은데 어머니 말이 잘 들리니?' '예, 잘 들려요. 어머니 비행기 멀미하지 않으셔요?' '괜찮아. 높이 떠서 참 편안해. 할머니께도 걱정마시라고 여쭙고,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안 계시는 동안 동생들 잘 보살펴라.'
약 8시간의 야간비행으로 북태평양을 횡단한 비행기는 16일 새벽 2시 (현지시간)에 알래스카의 엘멘도르프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여기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7시간의 비행 끝에 워싱턴 근교의 랭글리 공군기지에 도착한 것은 현지시간으로 16일 오후 5시였다. 윌리엄스버그 시장, 기지 사령관 등이 마중나왔다. 박정희 일행은 영국식민지 시대의 고도 윌리엄스버그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다음날 오전 박대통령 일행은 헬리콥터편으로 백악관으로 향했다. 존슨 대통령의 영접은 각별했다. 두 대통령은 백악관 뜰에서 환영식을 마친 뒤 큰 리무진차에 동승했다. 두 대통령의 차량행렬은 백악관을 출발, 펜실베이니어 대로를 거쳐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에 이르는 카 퍼레이드를 벌였다. 존슨 대통령은 박대통령을 숙소까지 바래다 준 셈이다. 1961년 11월의 첫 방미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깎듯한 국빈 대접이었다.
1965년 5월17일 오후 5시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한 시간 전에 백악관 안보회의는 존슨 대통령에게 회담 준비자료로 3페이지짜리 메모를 전했다. 지금은 비밀해제된 이 문건의 요지는 이러했다.
<박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을 계속 지원하고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에도 한국을 일본의 통제권 안으로 밀어넣지 않는다는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보장을 얻게 되면 그는 한일 국교정상화 협정을 비준하는 데 필요한 국민의 지지를 얻는 문제에서 유리해질 것이다. 박대통령은 농촌출신인데 부끄럼을 타면서도 아주 영리한 사람이다. 그는 키가 작은 데 대해 콤플렉스를 갖고 있어 처음 만나면 공식적이고 딱딱하다. 그러나 기분이 편해지면 상대방의 솔직한 태도에 잘 반응한다.
그의 한 가지 취미는 승마이다. 월남정부는 추가적인 한국군 파견을 요청하고 있다. 우리는 한일국교정상화와 관련하여 도전을 받고 있는 박대통령이 그 난관을 극복하기 전에는 이 월남파병 문제를 의논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측은 이번 방미기간에 추가파병의 대가로서 추가원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탐색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 시점에서는 우리가 나서서 구체적 논의를 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악관 서재에서 열린 제1차 한미정상회담에는 두 대통령이 통역만을 데리고 대좌했다. 이 대화록은 비밀분류에서 해제, 공개되어 있다. 이를 근거로 박-존슨 두 대통령의 발언들을 대화체로 재구성하면 대강 이러했다.
존슨: '우리는 한국에 대해선 가능한 모든 원조 수단을 동원할 작정입니다. 주한미군은 그대로 주둔시키겠습니다. 어떤 병력 감축안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병력을 조정해야 할 일이 생기면 각하께 먼저 알려드리고 사전에 충분히 상의하겠습니다. 한일국교정상화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다행입니다. 이는 오로지 각하의 지도력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한일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월남에서 양국이 서로 협력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박정희: '한일회담은 오는 6월초나 중순까지는 마무리 될 것입니다. 협상을 방해하려는 무책임한 세력이 있지만 우리는 적극적인 대국민 홍보 등 다각적인 방법으로써 일본과의 합의에 도달하고야 말 것입니다.'
존슨: '요사이는 외국에 대한 원조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이 더욱 어렵게 되고 있습니다. 다행히 한국이 월남에 2000명의 병력을 보낸 것이 의회를 설득하는 데 좋은 역할을 했습니다. 각하께서는 월남에 한국군을 추가로 파견할 수 있습니까.'
박정희: '그 문제는 좀 더 연구 검토해봐야 하겠습니다. 국민들 사이에는 너무 많은 병력을 월남에 파견하게 되면 휴전선 방어력이 약화되고 북한의 모험을 유발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월남에 병력을 증파할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