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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 전투사단 파월 요청
  1개 전투사단 파월 요청
 
 1개 전투사단 파월 요청
 
 1965년 3월12일 월남전선을 시찰하고 돌아온 미국 육군참모총장 존슨 장군은 '한국군 1개 사단을 포함한 3개 사단의 추가투입'을 상부에 건의했다. 3월16일엔 미국 해병대 2개 대대가 월남의 다낭에 상륙했다. 지상군 전투부대가 최초로 참전함으로써 월남전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3월부터 미국 정부는 막후에서 한국군 전투부대의 파병을 위한 정지작업을 시작한다.
 
 브라운 주한 미 대사와 이동원 외무장관 사이에서 탐색전으로 전개되던 한국군의 전투부대 파월 문제가 공식적으로 논의된 것은 3월15일. 이날 워싱턴을 방문한 이장관은 러스크 국무장관과 3시간에 걸친 오찬회담을 가졌다.
 
 회담을 마치고 나온 이장관은 기자들에게 '러스크 장관에게 월맹과의 협상에 반대한다는 한국측의 입장을 전달했다. 미국과 월남 정부가 한국 전투부대의 원조를 필요로 한다면 그런 요청을 진지하게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 회담에서 러스크 장관은 한-일간의 기본조약 가조인에 만족했으며 국교정상화 회담의 조기 타결을 희망했다. 이동원 장관은 18일엔 존슨 대통령을 만나 30분간 요담했다.
 
 '카우보이 존 웨인'을 연상시키는 거구의 존슨은 인사를 마친 뒤 긴 다리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기지가 많은 이장관은 담배를 한 개비 빼물고 '각하, 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라고 했다. 존슨은 다리를 내리고 자세를 고쳐잡은 뒤 라이터를 내밀어야 했다고 한다.
 
 이날 주된 화제는 전투부대의 월남파병이었다고 한다. 이장관은 한국군이 월남에 갈 경우 미국이 부담해 주길 바라는 여러 항목을 설명하고 존슨의 언약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회고록 '대통령을 그리며').
 
 4월 들어서 미국정부는 한국 전투부대의 파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4월1일 대통령 안보보좌관 맥조지 번디가 존슨 대통령에게 보고한 메모를 읽어보면 워싱턴 당국은 한국군 1개 전투사단의 파월을 전제로 한 월남전 확대전략을 구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메모에서 맥조지 번디는 '국무장관의 의견으로는 한국의 국내사정이 미묘하긴 하지만 한국정부와 조용하게 접촉하여 현재 월남에 주둔하고 있는 한국군 2000명을 보강하는 형식으로 전투부대를 파견하도록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1965년 4월15일 러스크 국무장관은 사이공의 주미대사 테일러에게 '월남정부와 연대규모의 한국군 전투부대를 파견하는 문제를 논의해보고 월남정부가 그런 파병제의를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한국에 하도록 만들라'고 지시했다. 테일러는 이틀 뒤 '대규모 외국군 부대를 투입하는 문제에 대해서 그들의 동의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월남정부는 한국군의 파병이 자신들을 도우려는 것이라기보다는 미국 정부가 국내여론 무마용으로 만든 것이라는 불신감을 갖고 있었다. 미국정부는 이런 월남정부에 대해서 외국군을 받아들여야 군수지원을 하겠다는 식으로 압박을 가해 한국정부 등에 전투부대의 파견을 요청하도록 만들었다.
 
 월남정부는 비전투 한국군의 파견도 반기지 않았다. 1965년 2월에 파견된 비둘기부대의 선발대장으로 월남에 미리 도착하여 복잡한 행정문제를 처리했던 이훈섭 준장은 '그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 베트남 파병 선발대장의 회고'란 책을 썼다. 이장군의 회고에 따르면 한-미-월 합동회의에서 한국군은 월남군의 작전통제하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자 월남최고사령부 작전참모부장인 탕 장군이 일어서더니 이렇게 말하더란 것이다.
 
 '한국이 우리나라를 위해 군대를 파견한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런 지원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귀국에 대해 원조를 요청하라는 설득을 미국 정부로부터 받았습니다.'
 
 한국 전투부대의 파병이 미국정책으로 공식 채택된 것은 1965년 4월20일 호놀룰루의 미 태평양 사령부에서 있었던 고위 전략회의에서였다. 이 회의에는 맥나마라 국방장관을 비롯, 존 T. 맥노턴 국방차관, 윌리엄 번디 국무차관, 합참의장 휠러 대장, 주월 미국대사 맥스웰 테일러, 미 태평양지역 사령관 샤프 제독, 주월 미군사령관 웨스트 모어랜드가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미군 수뇌부는 단기간에 호지명의 월맹과 베트콩이 굴복할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하고 미 공군에 의한 북폭의 계속과 병력의 증강을 존슨 대통령에게 건의하기로 했다.
 
 당시 월남에는 3만3500명의 미군과 2000명의 한국군(비둘기 부대)이 주둔하고 있었다. 미군 수뇌부는 미군 8만2000명과 한국, 호주, 뉴질랜드 군 7250명의 증강을 건의하면서 추가적인 증강을 위해서 한국군 1개 전투사단(1만4500명)의 파병을 추진하기로 했다. 한편 브라운 주한미국 대사는 맥조지 번디 보좌관에게 한국정부가 전투병력 파월에 적극적인 점을 지적하고 '이런 움직임에 대해서는 아주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잘못하면 한국정부의 전략에 말려들어 필요 이상의 부담을 미국이 져야 할 것이란 충고이기도 했다.
 
 정상회담 후에 발표될 공동성명서 문안은 상당기간 전부터 검토되는데, 5월1일 주한 미대사관이 작성하여 국무부에 보고한 16일 뒤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 성명서 초안에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선물을 많이 준비하고 있었다.
 
 <주한미군의 현수준을 유지한다, 군사원조를 현수준보다 늘린다, 군원이관 (한국군에 대한 군사원조를 삭감하여 한국군의 부담을 늘리는 것)을 재검토한다.>
 
 월남전의 확전을 결심한 미국측은 박정희-존슨 정상회담에서 1개 전투사단의 파월에 대한 박대통령의 확답을 받아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몰리고 있었던 것이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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