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슨의 선물 - KIST 설립 약속
존슨의 선물 - KIST 설립 약속
1965년 5월18일의 일정도 여덟 군데를 도는 시간표로 박정희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 대통령 직속의 국가안보회의 간부 제임스 C. 톰슨은 1차 정상회담을 분석하여 이날 존슨 대통령에게 참고용 메모를 올렸는데 재미있는 대목이 있다.
'우리측 통역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각하께서 박대통령에게 발언할 기회를 충분히 주었으나 박대통령은 극도로 부끄럼을 타는 사람이므로 오늘 회담할 때도 그에게 다시 한번 지난 회담 때 그냥 넘겨버린 어떤 의제가 있다면 기탄없이 이야기를 해보라고 격려해주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2차 정상회담은 이날 오후 5시 양쪽 장관-보좌관들이 배석한 가운데 백악관에서 열렸다. 존슨 대통령은 먼저 이날 정오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한 박대통령의 연설이 훌륭했다고 축하했다. 그는 이어서 지난 봄 중서부를 강타한 돌풍 희생자들을 돕기 위하여 한국국민들이 보내준 성금에 대해서 감사했다.
'한국 국민들에게 전해주십시오. 그 돈은 한국전에 참가했던 군인들 중 피해가족들을 위해서 쓰겠다고요.'
존슨 대통령은 전날 밤의 만찬에 대해서도 듣기 좋은 말만 했다.
'어제 만찬장은 빈 자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늘 많은 손님들이 나와 집사람에게 각하와 자리를 함께한 것을 영광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먼길을 와서 자리를 빛내준 것이 참으로 뿌듯합니다.'
존슨 대통령은 박대통령에게 '어제 우리는 양국간에 논의할 이야기를 전부 다한 것 같습니다. 각하께서 제기하시고자 하는 의제가 더 있으면 서슴없이 말씀해주십시오. 무슨 주제든지 좋습니다. 나는 러스크 장관과 함께 간밤을 거의 뜨눈으로 지새면서 도미니크 공화국의 정부군과 반란군이 무력충돌을 일으키지 않도록 제지하는 데 골몰했습니다'라고 했다.
박정희: '오늘 나는 맥나마라 국방장관과 조찬을 하면서 군원이관 문제에 대해서 의논했는데 각하께서 이를 유념해주시기 바랍니다.'
존슨: '내년에 정부가 30억 달러 규모의 군사-경제 원조예산을 확보할 수 있을지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 이처럼 불명확한 상태에서 외국의 지도자들이 방문하면 만나서 원조 문제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것이 싫어서 그들의 방미를 연기시키고 있는 실정입니다.'
박정희: '한국은 60만명의 잘 훈련된 군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병력은 공산주의와 대항해 싸우는 미군의 일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군대는 미군과 함께 공산주의와 싸울 것이며 동시에 미국의 지원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존슨: '각하의 그런 다짐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어서 아프리카에서 한미 양국이 협조하여 외교활동을 강화했으면 한다는 뜻을 말했다.
'아프리카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지만 그들도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박대통령은 이즈음 북한이 아프리카 외교를 강화하고 있는 것에 자존심이 상해 있었다. 존슨은 '연구해보겠다'고 답했다. 배석하고 있던 김성은 국방장관이 존슨에게 말했다.
'한국군 장병들의 월급이 너무 적어 사기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각하께서는 한국군이 미군의 일부란 인식하에 선처해 주시기 바랍니다.'
존슨은 '우리 의회도 미군의 월급인상을 요청하고 있으나 예산의 한계 때문에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박정희는 이어서 '공동성명에 포함될 각하의 '기술 및 응용과학 연구소 건립 제안'에 대해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했다.
존슨은 '각하나 나나 똑같이 교편을 잡은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과학교육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도움이 된다면 내 과학고문을 한국에 파견하겠습니다. 동의하신다면 이 대목을 공동성명에 넣도록 합시다'라고 했다. 이 연구소는 나중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로 결실된다.
배석하고 있던 장기영 경제기획원장관 겸 부총리는 '공동성명 5페이지에 있는 문장에서 '매년(annual)'이란 단어를 삭제하고 '애프리커블(applicable)'로 대체할 수 없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문제의 문장은 '(미국이 약속한 1억5000만 달러의) 개발차관은 매년 의회의 승인을 받아서 지급될 것이다'는 내용이었다. 장기영 부총리는 그런 제약내용이 공개되면 1억5000만 달러 차관이 조건부란 인상을 줄까봐 '매년'이란 단어를 떼버리자고 했던 것이다. 존슨은 '매년'만을 그냥 떼버리도록 양해하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의회와 언론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대외원조가 매년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옆에 있던 이후락 비서실장이 한 마디 거들었다.
'우리도 그러한 법적 절차를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이 이런 식으로 우리를 많이 도와주었으므로 우리는 이 원조를 선용하여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존슨 대통령은 '내가 가는 곳마다 오늘과 같은 공동성명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표를 많이 얻겠소'라고 하더니 배석한 브라운 주한 미국대사와 김현철 주미 한국대사에게 '덧붙일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두 사람 모두 '없다'고 하자 존슨은 박대통령에게 '오늘 저녁 7시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다른 일정 때문에 조금 늦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제2차 정상회담을 끝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