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나라 로켓인데···
남의 나라 로켓인데···
웨스트 포인트 육군사관학교 방문을 마친 박정희 대통령은 항공편으로 강철의 도시 피츠버그로 이동했다. 힐튼 호텔에 여장을 푼 대통령 일행은 걸프 석유회사에서 마련한 만찬에 참석했다. 울산정유공장과 진해비료 공장 건설에 투자한 걸프로서는 투자국의 국가원수를 깍듯이 접대할 이유가 있었다.
다음날(1965년 5월22일) 아침 일찍 대통령 일행은 피츠버그의 존스 앤드 로린 철강회사를 방문했다. 군정시절에 종합제철 공장 건설을 시도하다가 좌절한 바 있었던 박대통령은 부러운 표정으로 말없이 공장내부를 돌아보았다. 수행원들은 '단 한 개라도 좋으니 우리도 이런 공장을 가져보았으면 원이 없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피츠버그 공항을 오전 10시20분에 출발한 특별기는 약 2시간의 비행 끝에 플로리다주의 우주기지인 케이프 케네디에 도착했다. 야자수 나무들이 서 있는 상하의 평원 여기저기에는 금방 단추만 누르면 우주를 향해서 치솟을 것 같은 로켓들이 전신주처럼 여기저기에 박혀 있었다. 우주센터에서는 박대통령의 방문에 맞추어 아트라스 장거리 로켓 발사시험을 했다.
로켓이 굉음을 내면서 아프리카 남단의 한 무인도를 목표로 솟아오르자 박대통령은 뒷자리에 앉은 사람이 쓰던 쌍안경을 달라고 하여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이미 땅으로 내려왔지만 박대통령은 쌍안경의 시야에서 로켓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쌍안경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아무 말이 없었다. 옆에 앉아 있던 김성진 동양통신 기자가 '소감이 어떻습니까'하고 물었다.
박대통령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뭐, 남의 나라에서 쏘았는데 감상은 무슨 놈의 감상이야'하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었다. 풀(Pool)기자단의 대표로서 취재중이었던 김성진은 논평을 듣는 데는 실패했으나 박대통령의 표정이라고 정확하게 관찰해 놓으려고 유심히 살폈다.
'마치 좋은 장난감을 갖고 있는 옆집 아이를 시샘하는 어린아이의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아하, 이 분은 보통 양반이 아니구나'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박대통령은 뉴욕시가지를 걸을 때도 골똘히 무엇을 생각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이 분은 자수성가한 사람답게 국가도 자주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굳게 믿는 분이로구나, 미국에까지 와서도 국가경영의 지표를 설정하려고 끊임없이 명상하는 분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켓 발사 실험이 끝나고 일행이 버스에 오르자 기다리던 기자들이 '홍종철 당시 공보부 장관) 장관, 뭐 발표없어요?'라고 소리쳤다. 홍종철 장관은 김성진 기자를 쳐다보았다. 김기자는 '글쎄 말이야, 내가 대변인이라면 '우리 우방의 놀라운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류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면 안될까'라고 했다. 같은 버스에 동승했던 이후락 비서실장이 한 시간 뒤 '대통령 소감이 나왔습니다'하고 돌린 논평은 김성진 기자가 버스 안에서 말한 내용과 흡사했다.
다음날은 일요일로 박정희 대통령 일행은 모처럼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케이프 케네디의 패트릭 공군기지에 숙소를 두고 있던 박대통령은 이날 오전 수행기자들을 불러 아침식사를 함께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즉석 기자회견을 했다. 한 기자가 '육영수 여사가 도처에서 격찬을 받았습니다'라고 하자 박대통령은 싫지 않은 표정으로 '나보다도 인기가 좋았단 말이요?'라고 했다.
박대통령 부부는 근처에 사는 교포들을 초청하여 환담했다. 가수 손시향도 끼여 있었고 '박정희'란 이름을 가진 여성이 미국인 남편 사이에서 나은 아기를 안고와 자신의 성명을 밝히는 바람에 웃음이 터졌다.
박대통령은 오전에 시간이 남자 홍종철 공보부장관을 보내 혼자서 기사를 정리하고 있던 김성진 기자를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김기자, 심심한데 우리 드라이브나 합시다.'
대통령은 전화기를 들더니 수행경호관에게 지시를 했다.
'자동차 나오라고 해. 깃발은 카버를 씌워라. 이건 공식행사가 아니야.'
잠시 후 세 사람은 리무진을 타고 바다가 넘실대는 남국풍의 해안을 달렸다. 운전석에 붙은 뒷자리에는 김기자, 홍장관이 앉아 박대통령과 마주 보게 되었다. 박대통령은 워싱턴 특파원 생활을 오래 한 김성진에게 미국의 외교정책, 의회사정, 언론동향 등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었고 김기자는 방미소감을 물었다. 다음날 박대통령은 헤어지는 김기자를 부르더니 물었다.
'미스터 김, 당신은 한국에 안 돌아오시오.' '저도 임기가 있습니다.'
'언제 끝나나?' '내년이면 저도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오면 나한테 연락하시오.'
김성진은 박대통령의 이 말을 그냥 하는 이야기로 이해했다. 다음해 귀국한 김성진은 정치부장 대리로 있으면서 동남아 취재를 했다. 그 기사가 나간 뒤 청와대로부터 들어오라는 연락이 왔다. 박대통령은 김기자를 보자마자 '당신 언제 왔어?'라고 했다.
'온 지 오래됩니다.' '이 사람, 연락하라고 그랬잖아.'
김성진은 '그런 걸 다 외고 있는 이런 양반 앞에서는 허튼 소리를 했다가는 큰 일이 나겠구나'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