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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발 수출 바람
  가발 수출 바람
 
 가발 수출 바람
 
 1965년 초여름 상공부 공업1국장 오원철은 수출전선의 사령관인 박충훈 상공장관을 수행하여 상공회의소 2층 간부회의실로 향했다. 박장관은 일주일에 하루를 상공인들과 면회하는 날로 정하고 상공회의소로 나가고 있었다. 이날 면회 신청자는 5명이었다. 첫번째 면회자는 서울통상의 최준규 사장. 최사장은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이상한 물건을 내놓았다. 나일론실 같은 것을 수십 개 묶어 한다발로 한 조그마한 물건이었다.
 
 '장관님, 이것이 가발 원료입니다. 이것으로 가발을 만들어 수출하자는 건의를 올립니다.'
 
 박장관은 신기해서 만져보았다. 사람의 머리카락 같지가 않았다. 최사장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머리카락은 원래 검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선 탈색을 해서 순백색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난 다음 각종 색으로 염색을 하는 것입니다. 이 물건이 바로 염색한 우리나라 머리카락입니다.'
 
 최사장의 역설은 계속되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머리카락을 그대로 수출했습니다. 원자재로 일본에 판 것이지요. 가발을 만드는 것은 완전히 수공업적인 작업입니다. 여자가 손끝으로 머리카락 하나하나를 꿰메어야 합니다. 지금 일본이나 홍콩에서는 가발 제조 붐이 일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한발 늦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저렴한 인건비로 충분히 경쟁이 가능합니다. 수출가득액도 거의 100%입니다. 인모를 그대로 수출하는 것보다는 가발을 만들어 수출하면 2∼3배의 수출증가가 가능합니다.'
 
 흥미가 동한 박장관이 '얼마나 수출할 수 있소'하고 물었다.
 
 '가발은 과거 선진국에서는 사치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붐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생활필수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흑인여성에게도 인기입니다.'
 
 '그럼 흑인여성이 노란 가발을 쓴단 말이오?' '아닙니다. 흑인은 검은색 가발을 씁니다. 미장원에서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자는 것입니다. 수요는 얼마든지 있다고 봅니다.'
 
 박장관이 '정부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하고 물으니 최사장은 '단지 원모 수출을 금지시켜 주십시오'라고 했다. 가발 수출은 1964년에 처음 이루어졌다. 1만4000달러어치. 1965년도에는 155만달러로 늘었다. 이해 말에 행운이 찾아왔다. 미국이 월남을 지원하는 중공산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에 대해 수입금지조치를 취한 것이다. 일본이나 홍콩은 중공산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들고 있었는데 원료 공급이 막혀버리는 바람에 미국시장은 한국가발의 독차지가 되었다. 국내 가발업체도 40여개사로 늘었다.
 
 수출은 빠르게 늘어났다. 1966년엔 1062만달러, 67년엔 1978만달러, 68년엔 3055만달러, 69년엔 5336만달러, 1970년엔 9357만달러. 1970년엔 가발이 총수출량의 9.3%를 차지하면서 단일품목으로는 의류, 합판 다음의 제3위였다. 이때 맥나마라 세계은행 총재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의 부인을 오원철 당시 상공부 차관보가 안내하여 서울 구로공단에 있는 서울통상 가발공장으로 모셨다.
 
 <그 공장에는 1000여명의 여공들이 유니폼으로 단장하고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전부 20세 내외의 젊은 처녀들이다. 부인은 공장에 들어서자마자 움찔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얼굴을 보니 멍한 표정이었다. 이럴 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듯했다. 가발공장이라고 하면 10여명의 아주머니나 아저씨가 가내공업적으로 만드는 광경을 연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1000여명이나 되는 젊은 아가씨들이 만들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우리는 공장을 돌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여자들의 손끝이 어찌 그리 재주가 좋은지, 어찌 그리 손놀림이 빠른지, 머리카락 하나하나를 천에다 꿰메는 솜씨는 신기에 가까웠다. 부인은 그저 '원더풀, 원더풀'만 연발했다>(오원철 씀 '한국형 경제건설-엔지니어링 어프로치'에서 인용).
 
 1965년 1월9일 연두기자회견에서 박대통령은 국가중요시책 일곱 가지를 설명했는데 그 가운데 제6항이 중소기업의 수출전환이었다. 박대통령은 '종래의 나열식 중소기업 육성책을 지양하고 금년에는 300개 업체를 수출업체로 전환시키겠다'고 다짐했다.
 
 이해 3월2일 청와대에서는 중소기업육성책을 논의하는 최고정책회의가 열렸다. 오원철 상공부 공업1국장은 중소기업체를 수출쪽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특화산업을 지정하여 집중적으로 육성하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방안을 구체적으로 보고했다. 이 보고를 다 들은 박대통령은 두 가지 지시를 내렸다.
 
 '브리핑한 대로 중소기업육성시책을 강력히 추진하시오. 전국의 지방장관들에게도 수출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도록 지시하시오.'
 
 박대통령은 또 '지방시도의 상공행정 담당기구를 강화하라. 상공과도 없는 도가 있으니 공업발전을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1963년의 광고업 센서스에 따르면 고용인원 200명 이상의 대기업체는 229개소뿐이고 그보다 작은 중소기업체수는 1만8068개였다. 정부는 종업원이 30명∼200명 사이인 중소기업체 2000개 가운데 450개를 수출업체로 중점 육성키로 했다.
 
 한편 오원철 국장은 중소기업이 경제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대만을 방문하여 성공요인을 분석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손재주가 좋은 한국 여성들에 의해 생산된 가발이 수출전선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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