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하는 정치
'생산하는 정치'
1965년 5월24일 월요일 오전 9시, 박정희 대통령 일행은 케이프 케네디의 패트릭 공군기지를 출발해 방미 최종 기착지인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했다. 박대통령은 사무엘 요티 로스앤젤레스 시장의 한국말로 된 환영사를 들었다. 며칠 전부터 한국어로 번역한 연설문에 영어식 발음을 달아 연습했다는 후문이었다.
공항에는 수백 명의 교포들이 환영 피켓을 들고 마중나와 있었다. 그들 중에는 대한동지회 소속의 노인들 10여명이 영어로 '환영 박대통령 각하'라고 써놓고 한글로는 '평화선을 팔지 말라' '굴욕적인 한일회담 반대'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박정희는 이 플래카드를 눈여겨 보았지만, 정작 의전행사가 끝나자 환영나온 교포들과 손 한 번 잡지 않은 채 차에 올라 공항을 빠져 나갔다.
수행기자단장이었던 한국일보 편용호 기자는 '교포와 플래카드를 들고 나온 노인들도 섭섭한 눈치였다. 경비를 담당한 시당국의 지나친 배려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기자 역시 서운한 감이 없지 않았다'고 취재 후일담에서 쓰고 있다.
박대통령 일행은 숙소를 힐튼 호텔로 정한 뒤 이날 오후 남가주 대학교의 귤 농장을 시찰하기 위해 헬기로 이동했다. 공중에서 내려다 본 귤 농장은 광활한 사막을 개간한 미국 농업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다. 농장에 도착하자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힌델레이커 총장이 박대통령을 안내했다. 그는 '지하수가 없는 사막에 물을 대기 위해 서울부터 강릉만큼 먼 거리에서 물을 끌어온다'며 농업에 과학을 접목시킨 성과를 자랑했다. 총장이 '과학의 힘을 최고도로 이용하는 농업이지만 현재 시험중인 기계식 과실 수확방법은 나무가 많이 상하는 단점이 있다'고 말하자 박대통령은 '그것만은 아무래도 실패인 것 같은데…'라며 웃었다.
농민출신의 박대통령에게 캘리포니아 귤 농장은 퍽 인상적이었다. 박대통령은 부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힌델레이커 총장에게 재배현황과 시설규모 등을 꼬치꼬치 물어보던 중 수행하던 측근들에게 '이런 것들을 우리나라 제주도에서 재배할 수 없을까'라고 묻기도 했다. 오늘날 제주도 감귤농장의 시초는 1968년에 정부가 각 도별 농어민 소득증대 특별사업 품목으로 제주도에 감귤을 선정한 데서 비롯된다. 일본에서 묘목을 들여 와 조성하기 시작한 제주도 감귤 농사에는 1998년 현재 3만6212가구(제주도 전체가구의 21%)가 종사하고 있으며 연간 60만t 생산에 4000억∼6000억원의 소득을 올리는 업종으로 성장했다. 이날 저녁 박정희는 로스앤젤레스 산정에 자리한 요티 시장의 동양식 저택에서 베풀어진 만찬에 참석했다.
다음날인 5월25일, 미국에서 마지막 하루를 보내는 날 아침에 박대통령은 교포들을 초청한 조찬회를 가졌다.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인근 지역에 분포한 교포는 약 2만명. 초청받은 2백명의 교포들은 정장차림으로 이른 아침부터 힐튼 호텔 로비에 도착해 조찬회를 기다렸다. 초청장을 받지 못한 10여명의 교포들은 이들의 입장을 제지하는 경호원과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조찬회장에서 박대통령은 '나성은 과거 우리 독립운동의 근거지요, 우리들의 마음의 고향'이라고 연설했다.
'본시 하나의 민족이 재건되는 데는 격심한 진통과 고난을 겪어야만 한다는 것은 역사의 상식입니다. 비록 오늘의 한국에 일부의 실망이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우리의 민족적 용기와 결속과 자신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타개해 갈 수 있습니다.'
박대통령은 '다시는 가난할 수 없다는, 우리에게 부과된 근대화의 과업은 우리 세대 중에 우리의 손으로 끝내야 할 피할 수 없는 역사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부디 또 다시 가난과 빈곤과 못사는 조국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다같이 굳게 뭉쳐 일어서기 바랍니다'라며 연설을 끝냈을 땐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조찬 이후 박대통령은 공식 수행원들을 모두 불러 방미 성과를 검토하는 자리를 가졌다. 여기서 박대통령은 장기영 부총리에게 미국으로부터 얻게 된 1억5000만달러의 차관을 귀국하는 대로 신청해서 4개월 안에 끝내도록 지시했다.
1965년 5월 26일 아침 8시5분, 박대통령 일행은 10일간의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출발할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측은 대통령 전용기를 제공했다. 로스앤젤레스 공항을 이륙한 대통령 탑승기가 미국 본토를 지나 캐나다 영공에 들어설 무렵 존슨 대통령이 기상 무전기로 작별 전문을 보내기도 했다.
5월27일 오후 7시30분, 박대통령은 부슬비가 내리는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장모인 이경령 여사가 박지만군을 데리고 기내로 올라와 박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환영했다. 박대통령은 도착 성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나는 이번 방미에서 존슨 대통령과 미국정부 및 미국 국민으로부터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는 것을 먼저 국민 여러분께 알려 드리며 이러한 환대는 미국 국민이 한국 국민에게 보내는 뜨거운 우정의 표시인 것으로 나는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연설에서 박대통령은 '생산하는 정치'라는 신조어를 선보였다.
'나는 미국을 돌아보고 우리에게 '생산하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생산없는 정치'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생산', 그것이 곧 미국의 정치였습니다.'
또 '이번 방미를 통해 민주주의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권리를 찾는 시민이 되기 전에 먼저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시민, 남에게 의지하기 전에 먼저 제 힘으로 일어서 보겠다는 국민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드리는 인사의 말씀이며 선물입니다'라고 끝맺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