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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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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출사령탑인 상공부의 공업부서를 지휘하던 인물은 이우룡 차관보였다. 그는 해군대령 출신으로서 군수-경리 전문가였다. 몸집은 깡마른데 독주를 좋아했고 사교에도 능해 각처에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야 국회의원들과도 친해 상공부에 문제가 생기면 발벗고 나서서 해결했다. 국정감사 때 그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상공위원회 국회의원들이 지방의 국영기업체로로 감사를 나갈 때는 이차관보의 지휘하에 교통편, 숙소, 식사 준비는 물론 양말, 런닝셔츠, 팬티까지 준비했다.
 
 와이셔츠도 의원 개개인의 치수를 알아 사놓아야 했다. 심지어 화장실에 간 국회의원이 '이봐 국장, 화장지가 없어'하고 소리치면 화장지를 갖고 뛰어야 했다. 그러면 변소문에서 손이 나와 화장지를 받던 일도 있었다고 한다(오원철 당시 공업1국장 증언). 오원철은 '당시는 상공부 직원은 모두 접대부였다'고 말했다.
 
 공무원들도 국회의원들을 이용할 줄 알았다. 어느 상공부 산하 국영기업체에선 일이 잘 풀리지 않은 것이 있으면 야당국회 의원한테 부탁을 하여 국정감사장에서 상공부를 향해서 질문을 하게 해서 승인을 받아내기도 했다. 국회의원들이 석탄공사나 대한중석의 광산을 감사할 때는 일부러 깊은 막장까지 시찰하도록 하여 체력을 소진시키기도 했다. 문제는 감사 전날이었다. 광산촌에서 저녁식사를 끝내면 할 일이 없다.
 
 이런 때에 대비하여 이우룡 차관보는 모 과장으로 하여금 '전문교사'한테서 화투놀이 기술을 한 2년간 배우게 했다고 한다. 이과장은 국회의원들과 함께 하는 화투판에 끼여들어 좋은 패를 주었다가 뺐는 식으로 흥분을 고조시켜나갔다. 종장에 가서는 이우룡 차관보에게 돈이 모이도록 화투판을 조종한다. 이차관보는 딴 돈을 의원들에게 돌려주어 인심을 얻었다. 그리고 한 잔 하면 취침시간이 된다. 이 과장의 화투기술이 소문이 나는 바람에 몇 해 뒤엔 판이 끼지 못하게 되었다.
 
 한국의 수출전략을 짜고 도약시킨 지휘관들 중엔 박충훈 차관, 이우룡 차관보, 오원철 국장처럼 장교출신들이 중심적 역할을 했다. 군출신들은 조직을 몰아붙여 난관을 돌파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는 장기가 있었다. 조직의 관리보다는 조직의 생산성, 즉 조직일 일을 하도록 만들어내는 데는 군출신들이 뛰어났다. 개발연대의 정부 인사 때 신문의 인물평란에는 '과묵한 실천력'이란 말이 자주 등장했다.
 
 상공부가 섬유공업을 수출전략산업으로 설정하고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데 있어서 우선순위를 둔 것은 최신기계의 도입과 공장간의 기술장벽을 허무는 것이었다. 상공부에선 면방업계 공장장들을 불러놓고 서로 공장견학을 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그때까지는 회사비밀과 기술이 누설된다고 공장견학을 서로 금시시켜 놓고 있었다. 상공부에선 '만약 공장견학을 허용하지 않는 곳이 있으면 기계부속품을 도입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엄포를 놓아야 했다.
 
 섬유공업 중에서도 맨먼저 세계의 수출전선을 뚫고나간 것은 봉제품이었다. 봉제품이란 와이셔츠, 아동복, 원피스 등 재봉틀을 돌려서 만드는 모든 제품을 말한다. 1963년엔 10만 달러도 수출하지 못했으나 이듬해에는 403만 달러를 수출했다. 상공부에선 1971년엔 5000만 달러를 수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1965년엔 700만 달러가 수출목표였는데 1152만 달러어치의 봉제품이 수출되었다. 1968년엔 5118만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상공부는 생산현장의 문제점을 찾아 해결하는 역할을 했다.
 
 어느날 공업1국장 오원철이 서울 돈암동 근처 삼호방직 계통의 봉제공장을 찾아갔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보니 장관이었다. 수백명의 젊은 여성들이 재봉기 한 대씩을 맡아 똑 같은 자세로 일하고 있었다. 근로자들의 위치도 바둑판처럼 전후좌우로 일직선을 이루고 있었다. 사람이 와도 여공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한눈 팔 틈이 없어 보였다. 바느질 하는 손놀림이 어찌 빠른지 재봉기 소리가 꼭 소나기 소리 같았다.
 
 검사실에 가니 여성 검사원이 '금년은 작년의 배를 수출할 계획입니다'라고 자랑했다. 내가 만든 물건을 수출한다는 자부심이 서린 표정. 오원철 국장은 '아, 이게 바로 국력이구나'라고 생각하니 열심히 도와주어야겠다는 책임감을 생기는 것을 느꼈다.
 
 공장장실로 가서 물었다.
 
 '기계는 전부 일제이지요.' '예, 아직 전기식 재봉기는 국산이 안됩니다.' '천은 전부 수입합니까.' '국산천은 아직 멀었습니다. 고급 천도 안나옵니다. 외국에서는 합성섬유와 면을 혼방한 천이 나오는데 우리는 아직 생산을 못합니다. 염색도 문제가 많습니다.' '재봉기 실은 국산화되었습니까.' '국산실은 자꾸 끊어지고 꼬여서 못씁니다.'
 
 문제가 첩첩산중이었다. 오원철은 상공부로 돌아와서는 담당과장을 불러 우선 재봉실 문제라도 해결해주라고 지시했다. 2년의 세월이 흘러 동일방직에서 재봉실을 국산화할 수 있었다. 오국장은 섬유담당 과장에게는 '당신은 우리나라의 특공대장이오. 섬유과에서 수출을 늘리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파산이오. 부탁하오'라고 당부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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