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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8개월만의 결실-한일국교정상화
  13년8개월만의 결실-한일국교정상화
 
 13년8개월만의 결실-한일국교정상화
 
 우리나라가 석유산업에 기초한 섬유공업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을 때 북한은 이런 세계적인 대세와는 거꾸로 가고 있었다. 이승기 박사. 서울공대 교수로 있다가 6·25전쟁중 북한으로 간 그는 김일성의 신임을 받으면서 1961년 흥남에 연산 2만t짜리 비날론 공장을 지었다. 세계 최대의 비날론(이것은 북한식 명칭이고 원명은 비닐론) 공장이었다. 비날론은 카바이드에서 뽑아내는 합성섬유이다. 즉 석탄에 기초한 화학공업인 것이다.
 
 비날론은 생산성과 질에서 나일론 같은 석유화학계통의 합성섬유 제품에 크게 뒤떨어졌다. 김일성은 석유 대신 석탄이 풍부한 북한에서 비날론에 의존하여 입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인데 완전히 세계 과학 기술의 흐름에 역행하는 발상이었다.
 
 비날론 공장을 건설한 방식도 사회주의식 비능률성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15만 평에 거대한 공장을 짓는 데 1만5000개의 크고 작은 기계가 필요했다. 북한은 이 기계를 일일이 제작하여 설치했다. 설계도면이 두 트럭분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공장에 들어갈 기계와 부품 하나하나를 몽땅 설계하고 깎아만들었다. 자동차 한 대를 만든다면서 부속품을 사오지 않고 일일이 만들어 조립한 식이다. 이렇게 만들었으니 가격은 얼마나 비싸겠는가. 이승기 교수로부터 배우기도 했던 서울공대 출신 오원철(상공부 국장, 차관보, 청와대 중화학공업담당 수석비서관 역임)은 '낙후된 비날론 기술로 의복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북한은 지금도 헐벗고 있다'면서 한때 세계적인 석학으로 추앙받았던 이승기도 김일성의 이른바 주체사상 때문에 '민족반역자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승기는 나중에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창설, 핵개발에도 관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965년 6월22일 오후 일본 도쿄 수상관저 1층 대응접실. 한국측 대표 이동원 외무장관과 김동조 주일대사, 일본측 대표 시나 외상과 다카스키 수석대표는 13년8개월을 끌어온 한일회담에 종지부를 찍었다. 한 개의 조약, 4개의 협정, 2개의 의정서 등 총 29건의 문서에 네 사람이 교환서명하는 데는 1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참의원 선거 지방유세 도중 도쿄로 돌아와 국교정상화 조약 조인식에 참석한 사토 수상이 이 역사적인 순간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조인을 마친 뒤 일본측은 100명이 넘을 것 같은 양측 대표자들 및 배석자들에게 일일이 샴페인 한 잔씩을 돌렸다. 굳은 표정의 사토 수상이 일어나 '양국의 번영과 우호를 위해 건배합시다'라고 선창했다. 참석자들은 잔을 높이 들고 한 모금씩 입에 대는 데 그쳤지만 애주가인 시나 외상은 잔을 비웠다. 조인식을 끝낸 양국 대표들은 서로 악수를 나누었지만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즐거워할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역사의 무게를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텅 빈 조인식장 기자석에 마지막까지 남은 일본인 기자가 곁에 있던 한국인 기자에게 '오늘 기사는 무슨 말로 시작해야지?'하고 말을 걸었으나 실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정도로 분위기는 풀리지 않았다.
 
 김동조 대사는 '난항에 난항을 거듭한 끝에 드디어 현안을 해결했다는 감격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이제부터 한일관계를 어떻게 하면 새롭게 건설해갈 것인가 하는 책임감에 눌려서 기쁨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고 회고록에 썼다.
 
 조인식 날 아침까지 양국이 합의하지 못했던 것이 독도 영유권 문제였다. 일본측은 '독도 영유권 문제가 존재한다'고 외교각서에 기록을 남겨두자고 했다. 우리측은 '독도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양보하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일본측을 대표하여 회담을 이끌어왔던 우시바 심의관은 비공식으로 김동조 수석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한국이 다케시마(죽도-독도의 일본명)의 일본영유를 인정할 수 없듯이 우리도 국민감정상 독도를 인정할 순 없습니다. 구린내 나는 물건은 뚜껑을 덮어주자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 외무성이 독도문제와 관련한 문서를 매년 한 차례씩 한국측에 전달하면 귀측에선 이를 매번 묵살하면 되지 않습니까.'
 
 결국 독도의 명칭을 거론하지 않고 '분쟁해결에 관한 교환공문' (일반원칙을 기술한 공문)에 애매하게 이 문제를 기술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우리는 독도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지켜낸 셈이 되었다.
 
 김동조 전 대사는 1996년 6월23일 제주도에서 있었던 한일정상회담 때 하시모토 일본 총리의 발언에 김영삼 대통령이 말려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날 하시모토는 1996년 3월2일 방콕의 아시아유럽정상회담(ASEM) 때 제기되었던 신해양법에 의한 어업기선 200 해리에 독도가 포함되면 영유권 문제와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었다. 이에 대해 김대통령은 '영유권 문제와 어업협정은 별개 문제로 하여 해결하자'고 답변함으로써 '한일 양국간에 독도에 관한 영유권 문제가 현안으로 존재한다'는 일본측의 주장을 인정한 셈이 되었다는 것이다.
 
 김 전 대사는 '일본 언론까지 나서서 김대통령과 한국정부의 태도변화를 '유연한 자세' 운운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사실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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