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영과의 갈등
정구영과의 갈등
1965년7월12일 정부는 조인된 한일협정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같은 날 정부는 '전투사단 및 필요한 지원부대의 월남파병에 관한 동의요청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정의 큰 방향을 결정지을 두 현안을 동시에 처리함으로써 국론분열에 의한 정치 및 경제불안을 최단기간내에 마무리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문제는 절대다수 의석을 갖고 있으면서도 내부 갈등으로 해서 야당에 끌려 다니는 공화당이 박대통령의 의지를 관철시켜줄 것인가였다.
김종필 전 당의장 및 정구영 현 의장을 따르는 주류와 김성곤 의원을 필두로 하는 비주류의 싸움에서 박대통령은 서서히 비주류로 기우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고 이후락 비서실장이 반 김종필-정구영 노선을 드러내고 있을 때였다.
1964년 6·3사태 직후 두번째 외유를 떠난 김종필 당의장을 이은 정구영은 변호사협회장 출신의 깐깐한 원칙주의자였다. 박정희도 70세의 정구영에게는 항상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어려워했다. 정의장은 정부와 대통령의 권력남용을 견제하는 역할을 많이 하려고 했고 이 과정에서 대통령과도 잦은 갈등을 일으켰다.
정구영은 공화당 정치자금이 대통령 비서실장에 의하여 조성되고 배급되는 데 대하여 불만이 많았다. 그는 이후락 비서실장으로 하여금 정치자금에서 손을 떼게 하고 실장직에서도 물러나게 하려고 대통령과 담판을 벌였으나 실패했다.
정구영은 생전에 이런 증언을 남겼다(이영석편 '정구영 회고록'에서 인용).
'한일회담이 마무리 단계로 가니 청구권 자금이다, 차관이다, 교포재산 반입이다 해서 외국 자본이 도입되고 수출-증산-건설이란 이름으로 융자가 나가게 되니까 특혜라는 게 문제가 되고 그 그늘에서 정치자금이 복잡하고 미묘한 분쟁거리가 되는 거야. 그래서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낸 김유택 당무위원한테 특혜문제에 대해서 조사를 시켰어. 내가 조사를 지시했다는 말이 청와대에 들어간 모양이야. 그땐 거의 매일 대통령을 만날 때인데 하루는 대통령이 특혜 이야기를 불쑥 꺼내.'
정구영은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이렇게 이어졌다고 기억했다.
·박정희-'당에서 너무 특혜 문제에 간여하지 말아주십시오.' ·정구영-'당의 정책위원회는 그러면 뭣하는 것입니까.'
·박정희-'어느 기업에 융자를 얼마나 주고 어느 기업에 대해서 지불보증은 어떻게 하고 그런 것을 당이 검토하고 결정하려 들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정구영-'그 말씀은 옳습니다. 당은 구체적인 행정문제는 간여치 않습니다. 다만 경제정책이나 그 운용이 공화당의 정강정책에 위배되는 것이 있느냐 없느냐, 이 나라의 경제정책을 다루어 나가는 데 필요한 것이냐 아니냐 하는 원칙문제만을 파고들지 구체적인 행정사무는 파고들지 않습니다. 당정책위원회가 경제정책의 중요부문을 심의하지 말라는 말씀은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박정희-'그런 말은 아니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특혜라고 하니 하는 말입니다. 특혜가 있다 해도 그 조사를 당이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정구영-'부정부패 일소는 당의 기본공약인데…. 그렇지만 당으로서도 이 문제는 신중히 다루겠습니다.'
정구영은 '대통령과는 특혜건으로 워낙 논쟁을 많이 해서 정의장이 청와대로 들어오면 재떨이가 왔다갔다 한다는 말도 있었다'고 했다.
'대통령이 연신 담배를 피우고 일어서서 왔다갔다 하니까 재떨이가 대통령 따라 왔다갔다 했다는 얘기이지. 그렇다고 당에서 눈감고 있을 수도 없고 그런 모순 속에서 고민을 많이 했었지.'
우리 헌정사엔 집권여당이 그들의 총재가 임명한 각료를 상대로 해임안을 국회에 낸 적이 딱 한번 있었다. 1965년 3월 공화당이 박대통령을 상대로 한 일이다. 야당은 국회에서 판본 화신 그룹 등에 대한 은행권의 융자가 이후락 실장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 밝히라고 서봉균 재무차관을 불러 따졌다. 공화당 의원들도 은근히 야당에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박대통령은 공화당 간부들을 청와대로 불러 '이번 대출은 시중은행이 알아서 한 일이니 더 이상 거론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장기영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도 '거액융자도 어차피 갚아야 하는 것이다. 1년쯤 지나면 참 유치한 얘기를 떠들었구나 하고 말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공화당은 야당과 이 문제의 해결을 놓고 절충하는 과정에서 특혜융자 관계자들을 문책하고 대출금을 조속히 회수한다는 약속을 해버렸다. 박대통령이 공화당의 그런 건의를 묵살하려고 하자 신형식(뒤에 건설부 장관 역임) 의원 등 33명의 공화당 의원들이 서명하여 장기영 장관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냈다. 대통령은 신형식 의원을 불러 철회를 설득하려고 했는데 신의원이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대통령은 정구영을 불러 하소연하듯이 말했다.
'정선생님, 아니 여당의원이 장관 해임안을 내고 이것이 통과되면 내 위신은 뭐가 됩니까.'
'너무 사태를 크게 보지마십시오. 국회와 국회의원은 독자성을 갖는 것도 좋습니다. 공화당이 국민의 대변자라는 본분에 충실하려고 한다, 그리 생각하면 됩니다. 선진 민주국가에서는 흔히 있는 일입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